등록 2003.08.29 21:25수정 2003.08.3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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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2박 3일 무료숙박권과 항공권을 부상으로 받은 것은 지난달이었습니다. 지역의 모 언론사에서 실시한 <창간 십 몇 주년 기념 독자수필 공모>에 응모한 것이 그만 덜컥 2등으로 당선된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그 상품권을 받고도 저는 전혀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바로 제가 여유자적하게 제주도로 여행을 떠날 형편이 도저히 안 되었기 때문에서였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아내와의 상의를 거쳐 필요하다는 주변 지인에게 주었습니다.
"빈한한 우리 형편에 팔자 좋게 무슨 제주도 여행이냐?"며 남에게 그 상품권을 줘도 무방하다고 했던 아내였지만 아내의 얼굴에 스치는 어두운 그림자를 놓칠 리는 만무였습니다.
그처럼 공짜인 제주도 여행을, 그것도 머리털 나고 단 한 번조차도 가보지 못한 제주도여행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 까닭은 빈한지경의 저의 집 가정환경에서 기인했습니다.
빚은 많고 먹고 살기에도 버거운 저간의 제 형편에 제주도 여행을 간다는 것은 한 마디로 사치였기 때문입니다. 카드빚을 제 때 안 갚는다며 저승사자처럼 닥달해 대는 카드사들의 진절머리 나는 형국에 무슨 가당찮은 제주도 여행이란 말입니까!
하지만 여하튼 남들은 몇 번씩이나 가 보았다는 그 환상의 땅이자 '한국의 파라다이스'라고도 회자되는 비경의 제주도를 절호의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못 가는 저의 형편은 말 그대로 낙심천만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제주도에 갈 기회는 그동안 기실 몇 차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역시도 이상하게 무슨 일이 터지곤 하여 제주도 행은 늘 불발로 그치곤 했습니다. 제주도 행의 첫 번째 기회는 십여년 전에 찾아 왔었습니다.
당시 직장동료였던 제주도 지국장이 "언제든 내려오면 한 턱 내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그래서 싱싱한 회를 안주 삼아 맘껏 통음을 하리라고 작심을 하고는 비행기 운항시간을 알아보는 등의 법석을 부렸지요. 하지만 불행히도 얼마 후에 회사가 부도라는 직격탄을 맞음으로 해서 저의 제주도 행 역시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두번째 기회는 지난 7년 전에 고향 죽마고우들과의 정기모임에서 그동안 적립해 두었던 기금으로 그해 여름에 제주도로 피서를 가기로 했었습니다. 하지만 장인 어르신의 회갑연과 그 날짜가 맞물리면서 그만 포기를 하기에 이르렀지요.
그런 와중에도 두 아이들은 성큼성큼 자랐고 그래서 공,사 교육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늘상 박봉의 샐러리맨이었던 저의 애면글면한 처지로서는 두 녀석들을 가르치고 먹고 살기에도 버거운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저의 힘든 어깨의 짐을 덜어주겠다고 지난 6년 전에 부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신용카드의 빚만 공룡처럼 키우는 단초가 되었지요. 노이무공(勞而無功)에 좌절하고 때로는 세상에 대한 분노감에 폭음의 나날을 점철한 적도 많았습니다. 아내와는 사소한 일로도 상충하고 반목하기도 했구요. 하지만 그러한 것들 모두는 우리 부부의 극심한 상흔으로만 남았을 뿐 경제적으로의 반전이라는 개선의 여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내도 익히 잘 아는 지인이 이런저런 사유로 하여 작년에 이혼을 했습니다. 그러자 지인은 술과 자학에 시나브로 함몰되었고 남겨진 자식들은 학교마저 그만둔 채 일탈과 방종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닌 동병상련의 커다란 상심으로 다가 오더군요. 그래서 '부모 때려죽인 원수'처럼 오랜 기간 반목했던 아내와 서둘러 화해의 물꼬를 텄습니다.
"이제 당신이나 나는 50줄에 가까워 오는 중년이기에 어찌 보면 우리 시대는 갔다고 나는 봐, 하지만 우리에겐 소중한 두 자녀가 있지 않소?"
고개를 끄덕이는 아내에게 "우리 이젠 어린아이처럼 말꼬리나 잡고 아웅다웅하지 말고 비록 없이 살지언정 마음만은 긍정적으로 지니며 삽시다"라고 동의를 구했습니다.
아들이 지난주에 논산훈련소에 입대했습니다. 그러나 제 형편이 그야말로 적수공권인지라 올 여름엔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계곡 한 번을 못 가고 아들을 입대시킨 것이 지금도 못내 회한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길흉화복이 점철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 했으니 현재의 제 빈한지경의 처지 역시도 언젠가는 그 암운이 확 걷힐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어봅니다. 그리되면 외국은 몰라도 엄연히 내 나라 내 땅의 일원인 제주도쯤이야 금세라도 다녀올 수 있겠지요?
유난히도 비가 잦은 올 늦여름입니다. 지금 내리는 저 비는 아마도 아들의 훈련소에도 내리고 있을 겁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 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노력하고 있을 아들 이상으로 저 역시도 가일층 생업에 분발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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