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하고 청소는 그럭저럭 할 만한데 도무지 하기 싫은 건 다림질이예요. 그것만 좀 어떻게 안 하고 살 수 있음 좋겠는데….”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아이들의 하교시간에 맞춰 학교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삼삼오오 수다를 떨고 있는 중에 가사의 푸념을 늘어놓으며 느닷없이 끼어드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아이를 데리러 온 어느 아버지의 것이 아닌가.
여자도 아닌 남자가 천연덕스럽게도 자잘구레한 살림사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건만 유독 나혼자만 호기심과 민망함을 느낄 뿐 주위에 있던 주부들은 어느새 그 ‘남자 주부’의 넋두리를 들어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가사정보도 나누어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나 또한 지금은 가사일을 나누어 하거나 심지어 전담하는 남자들을 두고 기이하게 여기는 일이 없지만 호주 남자들, 아버지들의 현위상을 말할라치면 무슨 상징처럼 다림질이 유독 하기 싫다던 '그 때 그 사람'이 생각나곤 한다.
어느 민족, 어느 문화권이나 양친 가운데 ‘아버지’라는 존재보다 ‘어머니’에 대해 보다 근원적이며 넓고 깊은 사랑의 정의가 애틋하기 마련이다. 생명을 잉태하고 세상에 내어놓은 모성이라는 본능 외에도 어머니가 감당하는 표없는 희생에 대한 연민,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탓에 '어머니’라는 말의 외연을 동심원처럼 무한대로 확장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서양이라곤 하나 호주의 ‘어머니상’도 우리들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호주 사람들 대부분이 ‘가족들을 위해 1년 365일을 값없이 희생할 뿐 자신은 항상 뒷전에서 한평생을 묻혀사는 존재가 곧 어머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한국과 달리 어머니 날과 아버지 날이 별도로 있는 호주에서는 5월 첫째 일요일, 즉 어머니 날이 되면 그날 하루만이라도 가족들의 주인공이 되어보라는 배려로 모든 주부들은 침대에 누운 채 아이들과 남편이 차려준 아침 밥상을 받는 것이 하나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어머니 상은 이러할진대 이 나라의 아버지들, 부성의 위치는 어느 정도일까. 엄부자모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버지는 일하러 밖에 나가고 어머니는 집에서 살림하는, 옳든 그르든 오랜 세월 동안 이분화된 양친의 역할 고정관념을 이 나라 아이들도 가지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돈도 벌어오지만 밥짓고 빨래하고 시장도 보는 아빠, 자녀들의 등하교길에 동행하며 학예회나 학부모 회의에도 얼굴을 내밀고 주말이면 가족을 위해 바베큐와 공놀이를 함께 하는 대다수 호주 아버지들의 자상한 이미지를 구태여 역할 고정적인 과거의 틀 속으로 구겨넣지 못해 부려보는 심술이 아니다.
호주 땅의 아버지들은 밥벌이라는 본연의 임무 외에도 예전에는 아내들의 영역이요, 의무로 인식되던 가사노동과 자녀양육까지 넉넉히 감당하고 묵묵히 감내하고 있다. 하지만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고 존중받기보다 그저 당연시여기거나 어머니들의 그것을 보조하거나 대신한 것처럼 기껏해야 2류 취급을 받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흔히 직장을 가진 기혼 여성들이 ‘수퍼우먼’에 비유되듯이 호주땅의 아버지들은 ‘수퍼맨’으로 살아간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않든, 아내가 전업주부이든 아니든 호주 남자들은 묵묵히 직장과 가사를 병행해 나간다.
불공평한 것은 남편들의 가사와 양육의 분담 내지는 전담이라는 막강한 지원이 있음에도 여전히 아내들은 굳건하게 전통적인 어머니 상을 지키고 있고 대조적으로 남편들은 경계가 불투명한 역할 테두리를 감당함으로써 가정과 사회내의 설자리를 군색하고 비좁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9월 7일 (매년 9월 첫째 일요일)이면 5월의 어머니 날에 이어 올해의 아버지 날을 맞는다. 선물이니 감사축제니 하는 것이야 어차피 상혼일 터이지만 상혼조차도 어머니 날에 비해 아버지 날을 부채질하는 것에 신을 내지 않는 느낌이다.
우리들의 아버지들을 침대 머리맡에서 아침을 들게 하자는 상징적 부추김도 없고 마음으로나마 부정의 따스함을 나누고자 솔선하는 가족적 분위기도 없는, 훈훈한 어머니 날보다는 어쩔 수없이 썰렁한 아버지 날을 맞으면서 호주 아버지들의 현위상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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