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3.08.31 17:44수정 2003.08.3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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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방학이 다 끝났습니다. 여름 내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몸에 배었는데, 갑자기 바빠졌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려면 최소한 아침 7시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잠에서 덜 깬 몸을 이리 저리 비비 틀다가 겨우 일어난 아이들을 보면 불쌍한 마음도 듬니다.
그러나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습니다. 일어나서 밥 먹고 씻고 머리 빗기고 나면 벌써 7시 50분입니다. 그때 쯤이면 옆 집 아이들이 와서 떠드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곧바로 학교 버스가 오면 타고 가지요.
모르는 사람들은 "좋겠네, 학교 버스도 타고 다니고 말이야' 하겠지만, 다 이유가 있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약 5Km 정도 됩니다. 그러니 학교 버스를 운행 안하면 날마다 학부모들이 차를 몰고 다녀야 합니다. 그나마 올 때는 학교 버스를 못타고, 각자 알아서 와야 합니다.
교동에는 교동, 난정, 지석초등학교 이렇게 세 개의 학교가 있습니다. 원래는 화동초등학교까지 네 개 였는데, 화동초등학교는 오래 전에 폐쇄되었습니다. 그나마 두 개는 40명 정도 모이는 분교 수준이고,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교동초등학교가 제일 큰 축에 낍니다. 1학년에서 6학년까지 전교생이 120명이거든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학원 차는 집까지 아이들을 데려다 주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 모두 학교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피아노 학원'으로 달려 갑니다.
아이들이 집에 들어 오는 시간은 보통 오후 5시쯤이고 늦으면 6시 입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숙제하고 일기 쓰고 또 문제지까지 풀다 보면 밤 10시가 됩니다. 시골이라고 해도 아이들과 어울려 놀 시간이 없습니다. 컴퓨터 게임을 할 시간이 없는 건 물론이고요. 겨우 초등학교 2학년, 4학년 밖에 안된 어린 것들에게는 무척 고된 나날들 입니다. 자는 걸 보면, 쪼그만 것들이 코를 골 때도 있습니다.
안스럽기는 한데 달리 도와 줄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애 엄마는 아이들 교육이 걱정되는가 봅니다. 여기서 아무리 공부를 가르쳐도, 도시 아이들에 비하면 부족한게 많거든요. 우선, 분위기가 다릅니다. 한 반 학생이 수 십명인 것하고, 학년 전체가 25, 6명인 것 하고는 차이가 있습니다. 서로 서로 경쟁하면서 공부하는 도시 아이들의 치열함을 교동 아이들이 당해낼 수 없습니다.
교육 환경도 문제입니다. 서점에 한 번 가려면 배타고, 버스타고 읍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교동 섬 안에 '보습학원' 같은 게 있을리 만무합니다. 1-2년 내에 바뀔 것도 아니고, 정말 걱정입니다.
며칠 전, 교동 인사리에 살고 있는 친구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집 아이들은 오후 내내 집에 있었습니다. 처음엔 우리 아이들 생각해서 "어떻게 이 시간에 집에 있니?"하고 물어 봤지요. 인사리에 사는 아이들은 지석 초등학교를 다니는데 집과 학교의 거리가 얼마 안됩니다. 구태여 학원에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 집 영재 엄마가 "아이들이 학원에 안 다니니까 참 좋아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거든요"라고 했습니다. 부러웠습니다. 흙을 밟으며 마음껏 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엄마,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도 못하는 우리 집 아이들이 측은하기도 했습니다.
찬구 집에서 너무 오래 있었습니다. '벌써 오후 4시인데, 혹시 아이들이 왔나' 해서 집에 전화를 했더니 모영이가 있었습니다. 언니는 아직 안왔고 자기만 혼자 집을 보고 있답니다.
어제는 토요일이라 학원이 쉬는 날입니다. 큰 딸 모영이가 읍내리에 사는 다희네 집에서 놀다 오겠다고 합니다. 학교가 멀다 보니까 친구 관계도 문제입니다. 우리 동네 상룡리에 있는 초등학생은 모두 9명입니다. 그나마 학년도 제 각각입니다.친구 집에서 놀다 오려면 친구네 아빠가 집까지 데려다 주거나, 제가 직접 가서 데려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후 3시가 넘었을 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모은이 전화였습니다. 읍내리로 데리러 갔습니다. 올 때 "재미있었어?" 하고 물었더니 신이 나서 떠들어 대더군요. "아빠, 너무 재미있었어요. 다희네 집에는 원두막이 있거든요. 다희 아빠가 혼자서 만들었데요. 우리들은 거기서 놀았어요" 하는 모은이의 수다를 들으며 집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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