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복지관의 주인은 장애인이어야

[주장] 장애인 복지관 '이용대상'에서 직원으로 일해보니

등록 2003.08.31 19:11수정 2003.08.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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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복지관을 처음 이용했던 것은 1992년, 벌써 11년이 흘렀다. 지장협의 회원 발굴에 힘입어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 중퇴의 학력을 가진 22살에 중증장애여성이 사회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세상 안에서 살 수 있다는 것,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 이 즐거움은 마냥 순수하고 신나는 것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인간의 욕구가 그러하듯 나 또한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면, 사랑 받고, 인정받고자하고, 자아실현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꿈틀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은 인간에게 중요한 삶의 과정이다. 현실적으로 장애인 스스로가 원하는 노동을 할 수 있기에는 사회는 매우 좁고, 냉정하며 차별적이다. 경력, 높은 학력, 강인한 체력 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사회에서 취업을 할 수 있는 길은 단순노동 등에 불과하다. 모든 정신·육체적 노동은 다 나름의 소중한 가치가 있는 거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바탕을 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제한 안에서 선택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인 것이다.


사회적 배제와 차별로 인하여 순환적으로 능력과 경력에 차이를 가져오는 장애인의 삶은 결과적으로 직업의 종류를 선택하는데도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짧은 가방끈의 이력과 중증의 몸은 사회는 흔쾌히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장애인 복지관이라는 곳조차 장애를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심각하게 느끼고,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게 하는 기관일 뿐이었다.

처음 이용할 때는 직업재활을 통해 나만의 일터를 만드는 꿈을 갖고 찾아갔었다. 복지관이란 게 처음 찾아가니, 상담이란 코드로 무슨 검사들을 해댔다. 출발부터 심한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과정이었다. 손이 멀쩡한 나를 보고, 상담심리검사를 한다고, 크기가 다양한 추와 그에 맞는 판에다 옮기는 것을 해보라는 것이다.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척수장애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이런 절차 자체가 굴욕적이었다.

얼굴을 환하게 웃고 있는 이 비장애인 상담사의 친절하려는 모습도 나에게는 위계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하기사 그들도 지시 받고, 내려진 순서로 진행하는 것이니, 무슨 죄가 있을라만은 어쨌든 매우 굴욕적이 느낌이 드는 출발이었다.

다음은 배워야할 과목을 선택해야 하는데, 복지관에서 배울 수 있는 직업재활 과목은 목공예, 한복, 컴퓨터, 이게 다였다. 그 중에서 옷에 관심이 많은 나는 어쩔 수 없이 한복을 배우는 것을 선택하였다. 1년여를 배우면서, 나름대로 내 가게를 가져야지 하는 꿈도 키웠지만, 적성과 건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컴퓨터로 전향하게 되었다.


한복교육은 단순하게 반복되는 과정으로 쪼그리고 하는 다림질과 바느질은 건강에 매우 안 좋았고, 지적 호기심을 채울 수 없는 일상이 나의 흥미를 쉽게 식게 만들었다. 곰곰이 고민한 끝에 신체적 장애가 있는 나는 정신노동능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들겠구나하는 직업전략을 세우게 되었고, 과목을 바꿔서 컴퓨터에서 최고의 자격을 취득하려 하였다.

지금은 인터넷이 활성화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정보처리기사가 최고의 자격이었다. 근데 이 자격을 따려면, 대졸 이상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학력의 장애를 더 겪게 되었다. 나의 중학교 중퇴는 학교에서 거부당해 발생한 것임을 나이 들어서 알게 되었지만, 이미 나에게는 중학교 2학년의 중퇴 딱지가 전부인 중증장애인일 뿐이었다.


장애인 복지관을 들락거리면서 느끼는 것은 이곳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다. 장애인 복지관임에도 직원 대부분은 비장애인들이고, 장애인이 있다고 해도, 경증 수준이었다. 직원이 장애인이면 주인이고 아니고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이 반영된 내용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상담은 위화감을 느끼고, 직업재활과정으로 배울 수 있는 과목은 한정되어 있고, 복지관 서비스의 선택도 자유롭지 못했다. 또한 서비스의 질도 좋지 않았다.

그렇게 이용 대상자로 복지관을 이용하다가 얼마전 복지관 직원이 되었다. 남다른 감회와 지난날 굴욕적인 기억들이 뇌리에 떠오르면서, 나라면 이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 서비스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진행해 보았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서비스 이용대상에서 서비스 제공자가 된다는 위치 변화는 나름대로의 자신감과 자부심을 주었다.

6개월간의 경험이었지만, 나에게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장애인 복지관은 장애인 직원들이 많이 있어야 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프로그램 하나 하나가, 장애인의 삶에 필요한 서비스들이 주어져야 하는데 그것을 기획하고 실천하는데 장애인 당사자만큼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에 대한 기본예의를 갖춘 장애인이어야 하는 것은 기본전제이다. 장애인 복지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중요한 것은 장애인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장애인의 감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 서비스 프로그램을 개발,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복지관의 서비스 틀은 복지부 지침에 따라 복지관마다, 비슷하지만, 그 안에서도 장애인 당사자가 개발한 서비스 프로그램과 진행은 달라진다. 그래서 사회복지 현장에 서비스뿐만 아니라, 정책결정에도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가 절실한 것이다.

장애인 복지관! 그곳은 장애인의 주인이어야 한다. 그 말은 소유가 장애인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용함에 있어서 자신의 집처럼 입맛에 맞고,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서비스가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장애인 복지관에 장애인 직원이 한 명도 없는 기관들이 있다. 장애인이 주인이려고 한다면, 장애인 직원들이 중요 의사결정과정에서 전문가로 활동해야 한다. 그들만큼 장애인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 복지관 그 곳이 아주 편한 나의 안방이 되는 그 독립의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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