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구입한 자동차 박지주
휠체어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되었다면,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이 바로 자가용이다.
22살의 가을! 제주도에 장애인을 위한 운전면허연습장도 없던 시절, 아는 장애인분께 운전을 배우고 배운 차로 시험을 보던 시절이었다. 어설픈 운전솜씨로 합격한 나는 들뜬 기분에 운전면허증을 받아들고, 신나게 즐거워하였다. 처음 받아본 운전면허증은 내가 이 사회의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증명서'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아직 차는 없었다. 집안 사정이 어려운 편이니, 쉽게 말도 못 꺼내고 시간만 보내다 용기를 내어 어머니에게 차를 사달라는 이야기를 해보았다. 어머니도 예전부터 마음에 품고 계셨는지, 흔쾌히 차를 사주셨다. 다달이 막노동을 하면서, 차 할부를 그렇게 3년간 갚아갔다. 어머니의 몸을 팔아 내 차를 사는 기분이었다.
차가 있으니, 집에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그동안 집에만 있던 시간들에 설욕이라도 하는 것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밖으로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차가 있어도 갈 곳이 없어 집안식구들 운전수로 열심히 뛰었다. 그러면서 장애인 친구들과 사귀게 되고, 직업교육도 받고, 여행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휠체어를 옮겨 타고 얻을 수 있는 자유는 몸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었고, 자가용을 사게 되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더 멀리, 빠르게, 여러 군데를 갈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뭐! 물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돌아다녔다.
그렇다고 마냥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늘 트렁크에서 삐져나온 무거운 휠체어를 꺼내줄 사람이 있어야 했다. 그것은 또 다른 속박이었다. 직업교육을 받기 위해 복지관으로 향하고, 그 다음에는 휄체어를 차에서 내려야 하는데, 내려줄 사람이 주위에 없을 때는 늘 두리번거리며 한참 기다려야 했다.
휠체어를 꺼낼 줄 사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아야겠다는 결심으로 복지관 사무실 앞에서 창문 너머로 사람이 보이면 소리도 지르고, 상향등도 켜보았다. 그러나 그나마 창문이 닫혀 있으면 소리를 질러도 소용이 없고, 불빛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늘 기다려야 했다.
때로는 이런 기다림이 몹시 불쾌하게 다가오곤 한다.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 짜증스러웠다. 자유롭지 못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알았다고 신호를 보내는 직원이 한참만에 나오면 더 더욱 화가 났다. 내 시간이 이렇게 허비되고 있구나! 그 직원이야 무슨 일이 있어서 늦었지만 복지관 앞에서 이렇게 기다리는 기분은 때로는 서럽기까지 했다.
비오는 날은 더 더욱 심했다. 우산을 쓰고 멀찌감치 사라지는 사람들에게 말 걸기도 힘들고,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때도 많기 때문이다. 어쩌다 잘 아는 직원이 농담 삼아 거절을 하고, 들어가 버리는 태도에 상처를 받은 적도 있다. 그렇게 그는 가버리면 되지만, 난 지금 차 안에서 또 누군가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저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꺼낼 수 없다는 약점을 이용하는 태도들은 몹시 모욕감을 느끼게 하였다. 그래서 도움을 잘 받으려면 늘 웃고, 친절하게, 화가 안 난 척하며,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이 도와주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휄체어에 빨리 옮겨 타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휠체어를 받치고 차에서 내릴 때는 내 속도가 아닌 도움을 주는 사람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 또 다른 족쇄로 다가왔다. 말 그대로 자유롭지 못한 순간들이었다. 난 이런 점이 싫었다. 장애인이 처한 상황 때문에 비굴해지는 것이 용납하기 싫었다.
그런 내게도 혁명이 일어났다. 누군가 늘 차에서 휠체어를 꺼내주고 그것을 다시 담아줄 사람을 기다리는, 멈춰 있는 시간들이 사라지는 그 순간이 왔다. 움직임의 혁명! 이동의 혁명! 드디어 경량 휠체어를 사게 된 것이다.
혼자서는 차 안에 넣을 수 없었던 휠체어를 혼자서 가뿐하게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흥분으로, 쉽게 오를 수 없는 높은 산 정상을 정복한 것처럼 행복하고, 마비된 다리에 신경이 회생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랬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 맘대로 차에서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아! 자유가 이런 것인가! 새롭게 맛보는 자유!
이젠 사람을 찾아서 헤매지 않아도 되고, 여유를 가지고 차에서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내 속도에 맞춰서 내 맘대로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빛나는 해방감에 '으하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것이야말로 혁명이 아니고 무엇이라! 쉽게 움직이고 이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 무슨 소리 하나 하겠지만, 제대로 움직일 수도 이동할 수도 없던 중증장애인에게 작고 가벼운 휠체어 한 대와 자가용은 삶의 대변혁, 그 자체이다. 아쉬운 소리하며 도움 받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리듬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 주체성을 담보하는 기본이 되는 걸음인 것이다.
늘 움직임과 이동을 구속하고 제한하고 억압해온 고리들이 일순간에 풀리는 듯한 자유와 해방감이 온 몸을 짜릿하게 흘러내렸다. 자유를 선택할 수 있는 대변혁의 지진이 막힌 억압을 뚫어버리고, 살아있는 굉음으로 우렁차게 용트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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