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부르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

늦여름의 오대산과 월정사 여행

등록 2003.08.31 23:53수정 2003.09.0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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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전나무 숲길
▲월정사 전나무 숲길 노시경
오대산에 늦여름의 햇살이 쏟아지다가 간간히 빗줄기를 뿌린다. 이제 아침 저녁으로 오대산 주변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오대산은 듬직하고 거대한 노년의 산봉우리이다. 주봉인 비로봉(해발 1563m)을 비롯하여,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의 5개 대를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 오대산이다. 특히 비로봉에서 평창 쪽으로 이어지는 오대산은 부드러운 흙산으로서 경치가 아름답다. 승용차로 한참을 들어가는 이 길을 선인들은 어렵사리 걸어 들어갔을 것이다.


이 오대산에는 월정사와 상원사라는 이름난 명찰들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643년(선덕여왕 12년)에 신라의 고승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돌아와서, 지금의 절터에 풀로 지붕을 지은 암자를 짓고 머물렀다고 한다.

중국 산서성 청량산(별칭이 오대산임)으로 유학을 갔던 자장율사는 그곳 문수사에서 기도하던 중에 문수보살(文殊菩薩: 지혜의 좌표가 되는 보살)을 친견하였다. 그는 지금의 오대산의 형세가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지라고 생각하고,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그는 비록 문수보살을 친견하지는 못했으나, 이 때부터 월정사는 오대천 계곡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월정사의 일주문을 지나 월정사를 향해 걷다 보면, 수천 수백 년 동안 불법을 구하던 길손들을 인도한 길이 나온다. 이 길은 좌우에 아름드리 큰 전나무 숲길을 거느린 길이다. 이 길 주변에는 소나무가 거의 없고, 전나무가 유난히 많다. 전나무는 잎이 바늘 모양인 늘 푸른 큰 키 나무이다.

수목군락의 절경을 보여주는 월정사 주변의 울창한 전나무 숲은 우리나라 제일의 숲길이자 자연의 산림지대이다. 원래 전나무숲길은 월정사 진입로였으나, 현재는 아름다운 숲길을 보존하기 위하여 월정사 진입로를 우회시킨 것이다. 지금은 많은 연인들이 찾아오는 여행의 명승지가 되었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
▲월정사 전나무 숲길 노시경
800m 정도의 이 전나무 숲길에는 오대산 국립공원의 자연관찰로가 만들어져 있다. 이 곳에서의 삼림욕은 마음을 맑게 해준다. 전나무 수목이 울창한 이 산 속을 걸으면 누구나 상쾌한 기분이 되는데, 이는 전나무 수목에서 발산되는 '피톤치드'라고 하는 방향성 물질 때문이다. 이 피톤치드는 인체에도 건강한 작용을 한다. 피로하거나 감기에 걸린 사람이 숲 속에 머물러 있으면 치료되는 삼림요법도 이 피톤치드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걷는 산책길이 마냥 산뜻하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
▲월정사 전나무 숲길 노시경
시원스레 쭉쭉 뻗은 전나무는 늦여름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지만 묘하게도 햇볕이 잘 들고 있다. 전나무의 아래에서는 버섯과 이끼, 고사리, 덩굴식물, 풀꽃이 사이좋게 자라고 있다. 이 전나무 숲길은 기온이 낮아 모기도 없고, 전나무 곳곳에는 딱따구리가 자라고 있다.

이 곳의 전나무들은 평균수명 200년이 넘은 아름드리 나무들이며 키가 보통 25m를 넘는다. 이 곳의 전나무들 중에는 수령이 400년∼600년 된 아름드리 전나무들도 많다. 곧고 푸르게 뻗어있는 푸른 전나무뿐만 아니라 수백 년 만에 수명을 다한 거대한 전나무도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운치를 더 한다. 늦은 여름임에도 울창한 전나무 숲속은 외부보다 기온이 5℃정도 시원하다.

오대천
▲오대천 노시경
월정사 일원에는 오대천을 따라서 맑고 아름다운 계곡이 이어진다. 호명골, 중대골, 서대골 등의 계곡 물이 만나 흐르는 오대천은 동대천과 합류하면서 정선을 지나 남한강으로 굽이굽이 흘러든다.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오대산의 우통수(于筒水)는 한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오대천 금강연
▲오대천 금강연 노시경
오대천 중에서도 월정사 앞의 금강연은 대표적 명소이다. 주차장과 월정사를 이어주는 금강교 인근의 이 금강연에는 천연기념물인 열목어(연메기)가 서식한다. 수온이 낮고 깨끗한 곳에서만 산다는 열목어는 이 오대천 물의 건강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주변에서 자취를 찾아보기 힘든 수달과 도마뱀이 이 곳에 산다.

월정사 성황당(각)
▲월정사 성황당(각) 노시경
전나무 숲을 걷다보면 월정사 계곡 옆에 성황당(성황각)이 자리한다. 이 성황당은 이 지방의 서낭신(마을과 토지의 수호신)을 모신 당집이다. 두 평 정도의 자그마한 이 성황당은 우리나라 전통의 샤머니즘과 월정사의 불교 사상이 융합한 결과이다.

월정사 금강루
▲월정사 금강루 노시경
지금의 월정사는 꾸준히 중건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번듯하게 복원된 모습 때문에 과거의 월정사에서 느꼈던 고즈넉함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사천왕문을 지난 곳에는 1999년에 낙성된 금강루가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찰은 일주문, 사천왕문, 불이문으로 이어지는 3개의 문을 통과하게 되어 있는데, 월정사는 불이문의 자리에 금강문을 두고 있다. 금강문에 자리한 금강역사는 강한 힘과 지혜로 불법을 지키고 사찰을 수호하고 있다.

월정사 대부분의 전각들이 최근에 중건된 것은 오랜 역사를 간직해 오던 월정사가 한국전쟁 중에 전쟁의 참화를 입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에 월정사는 17동 건물이 모두 불타고, 소장 문화재와 사료들도 모두 재가 되어버렸으며 석조 유물들만 남게 되었다. 이 월정산 전각들을 낱낱이 폭격기가 폭격하였던 것이 아니고, 적군이 숨을 것을 없앤다는 이유로 일부러 불질러 버린 것이다. 한숨만이 나올 뿐이다.

월정사 보장각
▲월정사 보장각 노시경
1999년에 개관한 불교전문박물관인 월정사 성보박물관에는 국보인 상원사 중창권선문, 보물인 수타사 월인석보가 있으며, 팔각구층석탑 사리구 11점, 상원사 문수동자상 복장 유물 23점 등 약 500여 점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곳에서도 입장료를 따로 받고 있으니,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이 박물관이 절 바깥에 있다면 몰라도 스님들이 수행하는 절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불교 유물들을 보여주고 돈을 받는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월정사 적광전과 구층석탑
▲월정사 적광전과 구층석탑 노시경
다행히 아직 우리의 눈길을 잡아끄는 문화재들이 적광전(寂光殿) 마당 앞에 남아 있다.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국보 제48호, 8각 9층 석탑. 높이가 15.2m인 이 구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이 탑 남쪽의 석재 앞에서는 여러사람들이 돈을 얹어 놓고 소원을 빌고 있다. 딸, 신영이도 '밥 잘 먹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이 월정사의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는 보물 제139호인 석조 보살좌상(菩薩坐像)이다. 약병을 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약왕보살상(藥王菩薩像)은 주변의 유적지 조사 때문에 어디론가 옮겨지고 없다. 예전에 보았던 그 아름다운 보살의 미소를 볼 수 없음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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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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