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이 넘어 아픈 다리로 젖먹이를 엎고 달려 거센 바람과 폭풍속에서 구한 할머니 김상현
지붕, 벽 없어진 집조차 ‘반파’ 인정 안돼
최균주(66) 연화리 이장은 “가옥 수십채가 지붕도 없어지고 벽이 무너져 앉았는데 피해 조사 나온 공무원이 ‘가옥 반파’조차 인정해 주질 않는다”며 “재해 지원을 받기는 다 틀렸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고립무원의 섬에도 다행히 복구의 손길이 서서히 닿고 있었다. 우선 오늘부터 투입된 한전 복구팀이 넘어진 전신주를 바로 세우고 전선을 연결하느라 분주했다. 옆에선 욕지도 소재 해군 266전탐감시대 장병 10여명이 해일로 지붕 위에 얹혀진 배를 끌어내리고 있었다.
섬사람들은 ‘내일이면 빛을 볼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떠있었다. 구판장 앞을 지나자 “이 외딴섬까지 와줘서 고맙다”며 음료수를 건네는 인심 역시 태풍 속에서 여전히 남아있었다.
양식시설 깨져 물고기 달아나... 50억원 피해
배를 돌려 ‘섬사람들의 명줄이 달린’ 가두리 어장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노대도로 향했다.
섬 앞쪽에 위치한 4ha 80조(가로 세로 5m)의 해상가두리 가운데 70∼80%는 절서정연했던 대오를 이탈, 일부는 방파제에 부딪혀 깨져있었고 마을 도로 위에 거꾸로 서 있기도 했다.
일부 멀쩡해 보이는 가두리 역시 그물이 거센 파도에 시달리면서 터져, 양식활어 대부분이 도망가 버리고 텅 비어 있었다. 이곳의 양식활어 출하 손실만 50억원이 넘는단다.

▲남은 양식장을 보수하기 위해 칼과 로프를 들고 나서는 할아버지 김상현
전기공급 중단...사료 썩어 악취
전기공급이 중단됐던 마을 선착장에는 넘어지고 부서진 사료 컨테이너 30곳에서 1천상자가 넘는 까나리, 청어 등 물고기 사료가 썩어 문드러지면서 고약한 약취가 코를 찔렀다.
집이 지붕 채 갈라지고 도로가 파괴되긴 이 섬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해일로 배가 안방까지 들이친 피해를 입은 차성용(47) 이장만이 기자를 맞을 뿐 40가구 160여명의 주민이 산다는 탄항마을은 텅 비어있었다.
차 이장은 “이미 무너진 집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모두 당장 질긴 목숨, 생계를 잇기 위해 가두리로 나갔다”며 손가락을 길건너 반대편 바다쪽을 향해 뻗었다.
태풍 시달린 섬사람들, 이젠 적조와 사투
눈길을 돌린 바다에서는 또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섬사람들은 생존이 걸린 적조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겨우 태풍을 이겨낸 가두리어장 주변에는 푸른 바다 색깔을 검붉게 물들인 엄청난 고밀도 유해성 적조가 덩어리로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그나마 남은 고기를 살리고자 섬사람들은 1톤도 채 안되는 작은 배로 물 소용돌이를 일으켜 어장에 산소를 공급하고 적조를 분산시키는 한편 배에 달린 펌프로 바닷물을 분사해 황토를 바다에 뿌려댔다.

▲태풍에 이어 또다시 적조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섬사람들 김상현
“양식활어 지켜내 꼭 재기할 테야”
정철영(47)씨는 “추석이고 뭐고 어찌 보냈는데 모르겠다. 활어 품귀현상으로 가격이 2배로 올랐다는데 태풍 뒷수습에 적조 방제까지, 출하는 엄두도 못 내겠다”며 바닷물이 뿜어져 나오는 호스를 꽉 붙잡았다.
하지만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리고 손발에 흉터 자국까지 남겨가며 태풍에서 살려낸 감성돔, 돌돔 등 양식활어를 끝까지 지켜낼 것”이라며 재기의 의지를 굳게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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