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의 초점, 이라크 혼란 해결에 있어야"

주한 외국인들 로렌스 P. 제임스씨가 바라보는 이라크 파병문제(1)

등록 2003.09.30 10:49수정 2003.09.3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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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외국인들은 이라크 파병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어떤 방식으로든지 한국과 인연을 맺으면서, 그들 또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목소리를 내고 싶을 것이다.

본 기사는 각자가 처한 개인적인 사정이나 국적, 인종 등에 따라서 매우 다양할 법한 그들의 의견을 여과 없이 소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 연재물을 시작하고자 한다.

사실상 여과 없는 의견을 담아내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한국의 역사나 사회적 정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의 의견이 기사화 되는 것이 편하지는 않았는지, 막상 기사를 내도 되겠냐는 질문에, 종전까지의 의견을 철회하는 이들도 있었다.

미국인 로렌스 P. 제임스씨는, 9·11 직후 이라크 침공계획이 불거져 나올 때부터 이에 대한 강한 반대의사를 표현하던 사람이었다. 따라서 이번 파병 요청에 대한 그의 의견 또한 당연히 반대일 것이라고 짐작했으나, 막상 그의 의견은 예상과 달랐다.

이태원의 한 독일음식점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2002년 8월 해양 탐사 작업중인 제임스교수
▲2002년 8월 해양 탐사 작업중인 제임스교수 정경미
다음은 제임스씨와의 대담내용이다.

-먼저 한국에서 하시는 일에 관해 말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지질학자로서,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지역에 묻혀 있는 지질 자원에 대해 탐사하고, 한국정부가 이것들을 개발할 만한 실익이 있는지를 연구, 보고하는 일을 하는 거지요."


-이번에 부시 대통령이 요청한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파병에 동의하시는지요?
"제가 그 방면에 전문가도 아니고, 또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 질문인 것 같군요.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신문 등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고민은 해 보았지만, 역시 참 고민스럽군요. 그래도 한 개인으로서 의견을 내야 한다면 아무래도 파병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번 부시 미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계획에 대해서는 매우 분노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랬습니다. 미국인으로서 부시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을 후회할 정도였지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것은 크나큰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담 후세인이 말썽꾼일지라도, 그건 이라크 내에서 해결할 일이지, 미국이 개입할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증거는 그 당시에도 없었고, 결국 발견을 못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번의 한국군 파병에는 찬성하신다고요.
"글쎄,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했고, 그 결과 현재 이라크는 무시무시한 혼돈(chaos)의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잘잘못을 논하기 전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입니다. 이라크에서 하루 속히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한국을 포함한 다국적군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즉, ‘술 취한 운전사가 행인을 친 것은 나쁘지만, 이미 치어서 쓰러뜨린 이상, 음주 운전의 잘못을 비판하는 일보다는 그 차로 빨리 병원에 실어주는 게 급선무이다’와 같은 논리일까요?
"매우 정확한 비유가 되겠군요. 사람이 죽어 가는데, 음주운전의 잘잘못을 논할 여유가 어디 있습니까? 지금 이라크의 혼란은 이라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난 폭도들이 군대를 공격할 뿐 아니라, 이라크인들끼리도 서로 죽이고 약탈하고 있습니다. 몇 주 전에는 유엔 건물과 유엔 스태프까지 공격당하지 않았습니까?"

로렌스 P. 제임스
▲로렌스 P. 제임스 정경미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누군들 살생을 지지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이라크가 지금처럼 무정부상태로 있게 되면, 더욱 무서운 살생이 이루어질 것이 예상됩니다. 전쟁을 하기 위해서도 군대가 필요하지만, 전쟁을 막기 위해서도 군대가 필요합니다. 평화를 위한 견제라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우리에게는 살생을 피하기 위해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군 입대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필요하고, 파병을 반대하는 양심적인 시민운동가들도 필요합니다. 제 동생도 절대적인 평화를 외치는 시민운동가 중의 한 사람입니다만…. 결국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여러 가지 현실적인 고려를 안 할 수는 없겠지요."

-어떤 현실적인 고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한국인들에게 중동의 석유는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여기에는 원활한 공급뿐 아니라 안정되고 적절한 가격도 포함됩니다. 한국이 다국적 군대의 일원으로서 이라크에 파병된다면 이런 현실적인 상황에서 유리한 고삐를 하나 쥐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렇다면 군대대신 의료진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안 보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잘 훈련된 직업군인들을 보내는 것이 대외적인 입지에서는 물론 한국군 자체를 위해서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건 또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지금의 이라크 상황이 위험하지만, 사실 군사적인 면에서 극단적으로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실제상황인 것은 맞지요. 그러니, 만약 사관학교졸업자나 ROTC 같이 장래 한국군대를 이끌어 갈 만한 엘리트 군인들을 보낸다면, 지금이야말로, 한국군이 매우 큰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서도 다국적 군대의 일원으로서 다른 나라 군사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국제적인 감각과 훈련을 익힐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제 부시 미국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글쎄, 팀을 위해 뛰는 운동선수 같다고나 할까요? 클린턴은 보다 독립적인 사고를 했던 것 같은데, 부시는 독립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생각이 단순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not an independent thinker. just a simple thinker), 그저 공화당의 지시에 잘 따르고 있을 뿐이지요."

-끝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해 주십시오.
"한국전쟁 당시 다수의 UN군들이 한국에 왔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은 한국이 뭔가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한국이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살수는 없지 않습니까?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잘못이지만, 지금은 이에 대한 분노보다 현재 이라크가 겪고 있는 극심한 혼란을 해결하는 데에 문제의 초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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