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땅' 여수산단 중흥마을의 절규

재난 앞에 무방비...이주대책 손 놓은 정부 성토

등록 2003.10.06 04:50수정 2003.10.0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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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석유화학 바로 건너편 흥국사 입구쪽에 위치한 중흥동. 이 곳 아이들은 감기약을 먹어도 약발이 안먹혀 한달 이상이 간다고 한다. 96년 국립환경연구원이 역학조사를 한 결과 초등생 소변에서 페놀이 검출되기도 했다. ⓒ 박성태

"주민 여러분 모두 대피하십시오. 호남석유화학 공장 폭발로 2차 폭발이 우려됩니다."

10월 3일 오후 6시 45분경 여수시 중흥동 4통회관에서 안진섭 통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마을 전체에 울려 퍼졌다. 30년 이상 이 곳에 살면서 단 한번도 대피명령을 받아 보지 못한 채 폭약을 품고 살아왔던 마을 주민들은 난데없는 대피령에 당황했다. 아비규환이 시작된 것이다.

대피령은 받았지만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주민들에게 여수시청 버스가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였다. 사고 당일 바람은 북서풍으로 남수마을 쪽으로 불고 있었다. 어이없게도 여수시는 마을 주민들을 북서방향에 위치한 흥국체육관으로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결과적으로 유독가스를 그대로 마시라는 셈이었다.

3일 오후 6시 4분경 호남석유화학 폴리에틸렌 제3공장에서 터진 폭발음은 10Km 떨어진 구 여천 시내권까지 울려 퍼졌다. 불기둥이 산 정상으로 솟구쳐 오르면서 검은 연기가 공장 인근 마을을 뒤덮었다. 이 사고로 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호남석유화학 공장 앞 4차선 도로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중흥동 1007세대 주민 3300여 명은 "목구멍에 불을 삼킨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지진이 난 것처럼 집 전체가 흔들리고 창문과 지붕 슬레이트도 부서져 버렸다. 임산부들은 구토를 하고 노약자들은 심장이 멈추는 듯 정신을 잃어 일어설 수도 없었다. 그러나 사고 발생 후 1시간이 넘도록 주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재난행정 부재, 말 그대로 공황상태였다"

이를 두고 이주대책추진위원회 김권곤 사무국장은 "재난행정 부재, 공황상태"였다고 당시 상황을 함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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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도록 죽음의 땅 한복판에서 살고 있지만 단 한번도 정밀 건강검진을 받지 못한 주민들.고통을 호소하는 이순애씨(왼쪽)와 김영엽씨. ⓒ 박성태

기자는 사고 발생 이틀 후인 5일 오후 4시 중흥동을 방문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삼일동사무소 골목길 슈퍼 앞 노상에 앉아 계시는 노인분들 몇 분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상황을 묻자 앞다투듯이 말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이순애(73)씨는 "폭발 때문에 넘어져서 걸을 수도 없다"면서 왼쪽 다리 관절을 만져 보였다. 이씨는 "아직까지 목이 아프고 머리가 쑤셔 힘들다"면서 (방송사로 착각해)"우리 얘기를 방송에 꼭 좀 내주라"고 하소연하며 자신의 집 주소까지 알려 줬다.

"방독면을 쓰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들은 "갑자기 난리가 났는데 방독면 쓰라고 그러겠냐"며 "줄 때만 쓰라고 하지 몇 년 되니까 다 어디로 가버리고 방독면 쓸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김영엽(71)씨는 "30년 넘게 그러니까 정유공장(현 LG칼텍스) 지을 때부터 여기 살았는데 불났어도 대피않다가 느닷없이 이번엔 대피하라 그러는데 뭔 놈의 방독면 생각이 나겠냐"며 가족 숫자대로도 있지 않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할머니들 얘기를 듣고 있던 한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공단이나 시에서 비상 훈련도 한 번 안해봤는데 뭘 어쩌겠냐"며 "소방훈련 견학 차 공장에 가 본 것이 전부다"고 거들었다. 1996년 KIST가 여수산단을 '사람이 살기 적합하지 않은 곳'으로 판명한 이후 이들은 이제껏 아무런 보호조치 없이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살아 온 것이다.

시에서 국비를 받아 지급한 방독면은 무용지물이 된 채 어디 있는 지도 모르고 재난 훈련 한번 받아 보지 못한 마을 주민들에게 내일 또 다시 대형 참사가 터져도 전혀 달라질 게 없는 셈이다.

기자는 이주대책위원회를 방문해 더 구체적인 문제점을 들을 수 있었다. 2001년 산단 주변마을 이주가 확정됐지만 최근 감사원이 간접보상비 360억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결과를 발표해 이주 문제는 답보상태에 빠져 있다.

수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세금을 걷어 간 정부는 적극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각 부처는 부처대로 '예산타령'만 하고 있어 이주대책위원들의 대 정부 비판은 매우 거칠었다.

"30년 넘도록 비상 소방훈련 한 번 없었다"

먼저 대피령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여수산단이 생긴 이래로(1967년 2월 여천공업기지 조성) 이번에 처음 대피하신 건가요"라고 묻자 김권곤 사무국장은 "중흥마을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75-6년경 호남정유 탱크 폭발로 '적량'과 '월래' 마을 주민들이 대피한 적이 있으니까 정확히 두 번째인 셈이다"며 자신의 산 경험담을 말했다.

이주대책위 김권곤 사무국장은 호남정유 탱크 폭발 당시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며 자신의 집에 있는 대밭에 파편이 날아와 쑥대밭이 되고 이웃의 초가집과 슬레이트 지붕이 모두 불에 탔지만 보상은 엄두도 못냈고 항의를 하면 경찰이 폭행까지 했다며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김 국장은 "보상비가 적어서 안나가겠다고 하니까 불도저로 집 주변 일대를 다 밀어버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며 들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주대책위원들은 한결같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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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소방훈련 한번 받아 보지 못한 중흥주민들이 대형 참사에 대비할 수 있는 것은 동사무소의 풍향계와 싸이렌이 전부다. 사고 당일인 3일 한국산업안전공단 서남지역본부는 자동 사이렌이 울리지 않았다. ⓒ 박성태

김 국장은 이번 사고로 내린 대피령은 '있으나 마나'였다고 주장했다. 중흥마을에서 첫 대피 방송을 안진섭 통장이 한 것은 정확히 오후 6시 45분경으로, 관계기관의 지시없이 마을에서 2차 폭발에 대한 자체 판단을 한 후 취해진 조치였다며 그 시간 여수시 직원들은 호남석유화학 정문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경비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는 것. 그후 소방서에서 2차 폭발에 대한 우려를 여수시에 전달하자 동사무소를 통해 대피 방송이 나오고 8시가 다 돼서 대피차량이 마을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김 국장은 "이 곳은 일년에 270일은 북서풍이 부는 지역으로 사고 당일도 북서풍이 불어 유독가스가 남수마을로 날아갔는데 여수시는 유독가스가 날아가는 방향인 흥국체육관으로 주민들을 대피시켰다"며 재난 행정의 무지를 꼬집었다.

이들은 평상시 재난 훈련은 아예 한번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5년 전 여수시 이정남 계장이 개별적으로 반상회라도 와서 대피 요령을 알려 주기도 했지만 민방위 재난관리과마저 지금은 없어져 그나마도 없다고 지적했다. 3년 전 여수시가 설치해 놓은 3개의 풍향계도 지금은 "썩어 문드러져 온데 간데 없고 동사무소에만 하나 남아있을 뿐이다"고 말해 100여 개의 석유화학공장이 밀집한 공단 주변 마을의 실상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비상 대피 체계가 있었음에도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주대책위에 따르면 3년 전 LG석유화학 사고 당시 마을 주민의 요구로 사고 회사가 비상 대피 방송 시스템을 마련해줬다고 한다.

한국산업안전공단 서남지역본부에 설치된 비상 전화를 들고 말만 하면 마을회관에 설치된 스피커로 바로 방송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만 지금까지 "하다못해 낮에 사고가 나더라도 서남지역본부로부터 연락 한 번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도 마을회관 대피 방송 스피커는 비상시를 대기해 'ON' 상태로 있었다. 그러나 이 '자동 사이렌'은 여태껏 단 한번도 울리지 않고 있다.

김 국장은 특히 안전한 '지정 대피소'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세계박람회 유치에 사로 잡혀 온갖 혈세를 쏟아 붓기 전에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최소한의 안전 장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이번 호남석유화학 사고로 수소탱크나 VCM, BTX탱크가 터져 연쇄폭발로 이어졌을 경우 산단 주민은 물론 여수시민은 유독가스를 피해 어디로 대피해야했을까. 현재로서는 모두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이재수 이주대책위원장은 "공무원 하는 일이 뭐냐,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위해 무엇을 했냐"며 "7시 30분경 동사무소를 통해 대피 방송이 나올 때까지 불구경만 하고 있었지 않냐"고 통탄했다.

"모닥불 연기에도 기침 나오는 방독면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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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부터 년차적으로 지급된 방독면은 이미 필터 수명이 다해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 박성태

97년부터 연차적으로 3회에 걸쳐 6세 이상의 주민들에게 지급한 방독면도 "차라리 없는게 낫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모닥불을 피워 놓고 실험을 해봤다고 한다. 그 결과 모닥불 연기도 방호하지 못해 모두 기침을 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에서 지급한 방독면은 여수산단에서 누출될 수 있는 벤젠, 톨루엔, 자일렌, 포스겐, 암모니아 등 유독가스에는 아무 효과가 없다. 그래서 주민들은 시위할 때나 '소품'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기자가 직접 확인한 결과 이 방독면은 전쟁용 독가스에 한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가스 농도에 따라 6-15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암모니아와 화재시 발생하는 유독성 가스에는 정화능력이 없었다. 필터(정화통) 수명도 5년인데 마을 주민이 갖고 있는 방독면 필터 제조일자가 96년 9월로 이미 폐기물이나 다름없었다.

장종채 통장은 이것만은 꼭 기사화 해달라고 부탁했다. 장 통장은 지난 해부터 시작된 일용근로자들의 생존권보장 투쟁으로 각 공장들이 TA(turn around, 정기보수기간)를 늦춰버려 1년만에 정기보수 해야할 것을 1년 6개월로 늘리고 2년짜리를 3년으로 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 통장은 "여수산단의 설비 노후가 심한데도 정기보수를 통한 안전 점검마저 제때하지 않고 그 기간마저 늦춰버렸기 때문에 대형 안전사고 가능성이 아주 커졌다"고 주장했다.

이주대책위원들은 "일용근로자들의 집단 시위를 빌미 삼아 일거리를 주지 않으면서 길들이기를 하려다보니 TA기간이 늦춰지는 것이다"며 산단의 횡포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일용근로자들은 그동안 TA에 투입돼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고 있는 가운데 지난 해부터 근로기준법에 따른 생존권 투쟁을 벌여왔다. 당연한 권리 주장 앞에 여수산단은 안전점검을 뒤로 한 채 TA를 늦춰가며 일자리를 주지 않겠다는 '일용근로자 길들이기' 속셈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96년 죽음의 땅으로 판명 난 후 이제까지 정부는 무엇을 했나"

이재수 이주대책위원장은 호남석유화학 사고는 이주분담금 문제를 해결하는 기폭제가 됐다며 대정부 투쟁을 강도 높게 펼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이 위원장은 "여수산단 주변마을의 암 위험 발생률이 세계보건기구 기준의 230배, 미국환경청 기준의 2300배에 달하고 대기오염도는 전국에서 첫 번째다"며 "96년 KIST보고서에서 이미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판명났지만 지금까지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고 정부를 강력히 비난했다.

이에 따라 이주대책위는 여수환경운동연합과 연대해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는 일과 더불어 이번 사고를 계기로 강도 높은 대정부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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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죽음의 땅으로 판명난 후 정부가 한 일이 무엇이냐는 이재수 위원장은 하루빨리 이주대책 문제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 박성태

이 위원장은 여수산단이 '죽음의 땅'으로 불려졌던 일화도 소개했다. 96년 여천시청에서 KIST보고서를 발표하던 날 이 위원장은 당시 KIST 책임자였던 백모 교수에게 "복잡한 말 할 필요없이 한 가지만 묻겠는데 당신 같으면 여기서 살겠느냐 이것만 확실히 대답해 달라"고 하자 백 교수가 "나라면 안 살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후 공해추방운동본부 여수지회가 '죽음의 땅'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삼일동 이주대책위원회가 '죽음의 땅', '죽음의 바다', '죽음의 하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며 역사적 의미를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또한 이주는 이미 2001년도에 정부가 확정한 만큼 이주 이후의 '생계형 이주'가 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한다며 이주 장소로 시가 제시한 '송현마을'로는 이주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 위원장은 "주민 대다수 의견을 묻는 공청회나 설명회 한 번 갖지 않고 송현마을로 무조건 가라는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고 꼬집었다.

이 위원장은 "이 지역은 여수산단이 들어서기 전에는 상권의 중심지였지만 공장이 들어 선 후 우리에게 남겨 준 것은 공해와 오염뿐이다"며 "이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주 후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생계형 도시를 이주지역으로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6일 대규모 대정부 투쟁을 위한 집회 신고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인 오후 6시 30분경 호남석유화학 관계자 2명이 대책위 사무실을 찾았다. 호남석유 관계자들은 어제(4일) 주민들이 이영일 사장에게 요구한 주민 요구사항에 대해 5일 오후 6시까지 답변이 없을 경우 집단 시위에 들어가겠다는 경고에 대해 이해를 구했다.

"집회만 늦춰달라"는 사측 관계자들의 가슴에는 '근조' 리본이 달려 있었다. 자매사와 자매마을 사이인 호남석유화학과 중흥동은 한걸음씩 물러나 시간을 갖기로 미덕을 발휘했다.

마을을 빠져 나오면서 개발도상국의 성장 과정의 어두운 그림자로 그대로 남아있는 여수시 중흥동 주민의 삶은 또 한편 우리나라 재난 현실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상징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여수산단 환경안전전문가가 보낸 이메일
공장의 안전 불감증이 끝없는 사고 유발

▲ 2001년 10월 5일 탱크안의 나프타가스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아 4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던 호남석유화학 나프타 탱크
5일 오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여수산단의 한 환경안전전문가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그는 호남석유화학 사고를 계기로 "여수산단에는 왜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질까"라며 반드시 한 번 짚고 나가야할 필요성에서 편지를 쓰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 편지에서 공장의 노후화, 관리감독기관의 형식적인 점검, 회사마다 '땜방'식 안전관리, 여수산단의 사후 관리, 해결방안 등을 꼼꼼히 분석했다.

그는 "사고가 나면 야단법석을 떨고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며 관리감독기관의 형식적인 점검을 일차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여수시, 여수지방노동사무소, 여수소방서, 한국산업안전공단,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관리공단 등 점검기관이 평상시는 물론 명절, 사고시에 접대나 '떡값', 사례비 등을 요구하거나 사측이 주는 경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인근 청년회가 공단 근처의 복탕집, 꼬리곰탕집, 장어구이집, 도가니탕집 등을 철저히 감시해 나가는 일부터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발생한 사고의 대부분이 7-80년대에도 발생하지 않은 상식 이하의 사고가 대부분이었다"며 "이같은 사고 발생 후 어떠한 행정조치가 이루어졌는지 확인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밝힌 사고 발생 후 행정 조치 유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사고의 처리에는 한국산업안전공단에서 현장조사 결과를 토대로 노동부 산업안전과에서 간단한 조사만 실시(힘없는 작업 감독자, 작업 허가부서의 안전작업허가서 작성자, 부서장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있다).

둘째. 경찰서 조사에서도 마찬가지로 노동부 조사 결과를 토대로 마무리하여 검찰로 송부(노동부 산업안전과에서 조사한 대상자를 불러 재확인 등).

셋째. 검찰에서는 두 기관에서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사업주를 불러 약식 조사 등을 통해 벌금(벌금은 양벌규정에 따라 사업주 및 작업 감독자를 대상으로 많은 경우 5백만원 정도로 회사에서 각각 납부하면 사건 마무리).

그는 또 사고만 발생하면 하청업체 노동자만 죽는 이유에 대해 "작업 환경이 안좋은 작업만을 협력업체에 외주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며 "협력업체 직원들은 현장의 특성을 모르고 직원들이 시키는 작업만을 하다보니 각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잘 모르는 협력업체 직원들은 사고의 직격탄을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0년동안 그가 지켜 본 여수산단의 사고 유형은 탱크입탑작업 중 질식사가 대부분이고 크레인사고(중장비), 추락사, 탱크 내에서 용접 및 절단 작업으로 보호구 착용 없이 일했던 70년대에도 이런 재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탱크 입탑작업시 최대한 오랫동안 공기순환을 통해 잔존 유해가스가 없는 경우에만 작업에 임하도록 하고 공장운전의 노하우가 부족할 때는 반드시 외국메이커의 작업 표준에 따라 기준을 준수해 운전 및 정기보수작업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아무 것도 모르면서 많은 노하우가 쌓였다며 정기보수기간 단축 등 기본적인 작업표준을 준수하지 않고 "대충 몇 년 해보니까 이렇게 하면 되더라"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작업기간 단축이 재해를 가져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끝으로 호남석유화학의 사고 원인도 이러한 '작업표준 미준수'로 인한 재해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 박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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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창간 첫 잉걸기사를 작성한 사람으로서 한없는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는 호남매일 정치부 국회출입 기자로 활동 중입니다. 저는 광주전남지역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비평과 자치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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