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의 효과와 나의 착각

등록 2003.10.06 02:46수정 2003.10.0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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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직을 결심한 뒤 오랜만에 아내 그리고 딸 채윤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서울과 광주를 오가는 지난 6개월간의 주말부부 생활만큼 채윤이는 부쩍 커 있었고, 과연 돈만 버는 것이 아빠의 역할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제는 채윤이와 돗트카드 놀이를 했다. 종이에 점을 찍어 그 숫자를 적어놓고 함께 읽는 것이다. 아직 말이 서투른 19개월된 아기인 채윤이는 내게 먼저 그 놀이를 하자고 돗트를 가져왔고, 나의 아내가 채윤이에게 해준 것처럼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14를 넘지 못하고 채윤이의 흥미는 이내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말았다. 이전에 20이 넘는 숫자까지 진행하는 것을 보았기에 어찌된 일인지 아내에게 물었더니, 채윤이가 이미 알고 있는 숫자이기에 그런 것이라고 한다.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아내와 그 일로 선행학습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교육학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로 선행학습을 한 아이는 오히려 학업성취도가 떨어진다는 통계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미리 공부를 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또 배우는 것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수업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나름대로의 해석까지 덧붙인다.

전직 학원강사였던 내겐 놀라운 이야기였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대부분 6개월에서 1년 앞서 교과진도를 진행하거나 그때그때의 내신관리이고, 학부모들은 기를 쓰고 아이들을 그런 학원에 보내는 것이 현실인 까닭이다.

아내의 해석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아이들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고,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것을 받아들이는 배움의 시기에 어느 한가지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순간, 학원을 운영해볼까도 생각중인 내겐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무심코 옛 경험을 살려서 선행학습과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키는 학원을 생각했는데, 자칫 나 스스로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서 단지 돈벌이로 학부모와 아이들을 상대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럼 어떻게 교육을 시키느냐고 아내에게 다시 물었다. 아내의 답변은 참으로 훌륭했다. 아이가 전혀 모르는 것을 처음 배우면 오히려 벽이 될 수 있으니, 아이가 흥미를 가질만큼만 함께 놀이로 해주는 것이 흥미도 잃지 않고 새로운 것을 더 깊이 알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한다. 덧붙여서 하는 이야기는 그 역할은 누가 대신하는 것이 아니고 부모가 해주는 것이라는 뼈 있는 소리였다.

한편으로 채윤이의 교육을 맡은 아내가 참으로 든든했고, 아빠로서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 무심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기분이 좋아서 오랜만에 설거지도 하고, 아내의 어깨도 주물러 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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