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과 우려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는 대통령과 국회여야

등록 2003.10.11 14:02수정 2003.10.1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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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과 11일 연이은 대통령의 재신임 관련 기자회견은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 깊은 파장을 주고 있다.

그 파장의 중심에는 재신임 여부보다 재신임 이후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 재신임 가결시와 부결시의 각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노무현 정권의 정국운영을 살펴보면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역사 속에서 왕이 임금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할 때는 역성혁명이나 권신의 겁박에 의한 비자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신하들에게 강력한 충성심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차기 대권주자인 왕세자는 석고대죄를 해야되는 것이었다. 태종임금의 선위파동을 비롯한 무수한 파동들이 그러했다. 그리고 그것을 신하들이 받아들인 것은 곧 반역이었고 죽음이었다.

그런 선위 파동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물론 강력한 군주국가이던 역사 속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을 단순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표명으로 보여진다.

그러면 지금의 상황이 어떻길래 이런 파장까지 간 것일까? 노 대통령이 표명한대로 단순히 측근히 비리와 도덕성의 훼손 때문만은 아니다. 또 단순히 대통령이 신임하는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통과나 감사원장 임명 동의안 부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소수정파가 집권한 결과이다.

노 대통령은 국회 제2당인 민주당 소속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민주당 내에서도 비주류에 속한 소수정파였다. 그 결과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각종 정책 현안에서 소신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는 중에 그의 추종자들은 민주당을 탈당하여 통합신당을 구성했고, 그 역시 탈당을 했다. 하지만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통합신당에 그가 몸 담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지 소수 정파의 대통령이 아닌 까닭이다.

그런데 통합신당의 지지율은 오를 줄 모르고 내년 총선일정은 점점 가까워지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선택은 국민의 절대적 지지 혹은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는 국민의 정당에 몸을 담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총선 결과와는 무관하게 그의 소신에 따른 정책을 강력히 수행하기 위한 결단인 것이다.

지역감정의 골이 깊은 상황에서 총선의 결과는 너무나 자명하다. 하지만 그런 비합리적인 선정성으로 얼룩진 총선의 결과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부당한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재신임을 얻는다면, 총선의 결과와 무관하게 국민의 이름으로 그의 소신을 펼쳐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정당이 다수인 국회에 대한 재신임 문제도 제기될 소지가 있다.

일개 지역의 지지를 받는 국회의원과 전 국민의 다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과는 정치적인 파워면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물론이요, 그동안 한나라당과 민주당 구주류에 의해 끌려다니던 정국도 역전되는 것이다. 한편 그의 오랜 주장인 재벌개혁을 비롯한 우리 경제의 투명화에 대한 진전도 권력의 원천인 국민의 이름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이 그 시점인 것인가? 취임한지 8개월만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왜일까? 적어도 취임 후 1년 내지 1년6개월 이내에 개혁의 청사진을 가지고 강력한 사정으로 국정의 주도권을 틀어쥐면서 발전의 저해요인들을 제거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임기 5년짜리 대통령의 이상적인 상황인데, 지금 그에게는 그런 구상을 펼쳐도 보기 전에 민주당 구주류의 배신자 논쟁, 한나라당의 사상논쟁, 여기에 마지막 보루인 도덕성에서까지 밀릴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더이상 지체하다가는 5년 내내 끌려다니며 개혁은 커녕 무능한 정권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모험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한나라당에게 시달려 가면서 함부로 하지 못했던 초강수를 두는 것은 분명 모험이다. 그러나 승산없는 싸움은 아니다. 과거 독재자라는 비난 속에서 정권의 위기 상황이 왔을 때, 박정희 전대통령은 헌법을 개정하면서 일종의 재신임을 물어왔고, 이승만 전대통령도 국회에서 승산이 없자 국민투표식 대통령 선거를 치루었던 경우가 있었다.

국민투표는 정파의 이해관계에 의한 결론보다는 국가의 장래를 위한 국민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훨씬 지지를 획득할 확률이 높다. 또한, 경쟁상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부 투표인 까닭에 국민에게 큰 범죄를 저지르거나 특별한 문제가 아니면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쟁자인 각 정당들의 반응이다. 선거 직후부터 시비를 걸던 한나라당이 오히려 당혹해하며 혼란스러워 한다. 당론은 국민투표이지만, 경제단체 등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세력들이 반대하는 상황이다. 민주당의 경우도 대통령의 감성호소라며 비난하고 재신임 하자는 당론이지만, 그 파장에 대해 아직 확고한 입장을 세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통합신당의 경우는 형식적으로는 재신임 투표를 반대하지만, 역시 신중론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오히려 깜짝 놀란 것은 재계의 반응이다. 비록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과반수를 간신히 넘는 득표율인데다가 소수정파의 대통령인 까닭에 한나라당을 비롯한 각 정당들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이권을 보장받던 재계의 경우, 국민의 과반수가 지지하는 결과가 나타날 경우 대통령은 굳이 통합신당에 들어가지 않아도 국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정당이 되는 것이고, 그의 평소 소신인 재벌개혁과 투명한 경제로의 진전이 급속히 진행 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칼자루를 대통령과 정부가 쥐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반대성명을 발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한나라당의 미국내에서의 활발한 활동들을 포함하여 외교적으로 그리 대접을 받지 못하는 소수정파의 대통령에서 대한민국 국민과반수의 지지를 받는 국회보다 힘있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그 결과는 강력한 대통령으로서의 입지를 가져올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런 대통령으로서의 소신을 관철시킬 수 있는 여건이 아니면 제대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 결단인 것이다. 또, 결과가 어떻게 나올런지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자칫 한나라당과 민주당 구주류 모두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초강수의 정치행위이며, 그동안 국회와 각 정당들이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서 당하는 자승자박인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발표는 상당히 우려할만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대통령이건 누구건 어느 한 세력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과 공존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어찌되었건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가 상호간에 조화를 이루면서 국가를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원칙을 국회가 지키지 못했고, 이를 능숙하게 대응하지 못한 대통령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그러나 북핵문제, 이라크 파병문제, 송두율 교수 등의 일로 소모적인 보혁논쟁이 국가의 발목을 붙잡고 있고, 경제 사정이 어려운 가운데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요구들도 무시할 수 없으며, 3김씨의 사실상의 퇴진이후, 정치적 리더십이 부재한 과도기적인 성격의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 역시 가치있는 일로 보여진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번 재신임투표 발표는 무능한 국회와 각종 이익집단들의 구호, 국민들의 양분된 논란들 속에서 국정운영의 소신을 펼치지 못하는 표류 상황을 맞아 고뇌하던 대통령의 결단인 것으로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그 시기는 총선과 동시에 진행되거나 그 이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옳은 가치인 것만은 아니다. 여러가지 과정을 겪으면서 옳은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적 정치이념이다. 따라서 국민들의 대통령 재신임이 국회해산의 문제까지 야기될 정도로 대통령에게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국회가 지금까지는 국민들의 의사나 국가발전과는 무관한 행보를 보였지만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존중해야하고, 대통령도 재신임 이후 국민이 구성한 국회를 존중하여 국정을 운영해야 민주주의의 원칙에 합당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여 시기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정치적인 소신과 민주주의의 가치, 국정운영의 창사진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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