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민나 집시데스 134

민나 집시데스 (8)

등록 2003.11.07 06:02수정 2003.11.0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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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자꾸만 기수를 오른쪽으로 향하는 거야. 저기 멀리 보이는 높은 빌딩을 목표로 가라고 했잖아."

"예.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 오른쪽에서 강하게 바람이 불고 있어서 이렇게 저속에서는 직진으로 똑바로 갈 수가 없습니다."


"알았어. 게걸음 비행이라는 말이지? 하지만 조금이라도 허튼 수작을 하면 바로 권총의 총구로부터 불이 쏟아질 줄 알아, 알겠어?"

잘라는 권총으로 조종사의 뒤통수를 쿡쿡 찌르며 손동작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
다.

'아니, 그렇다면 잘라가 비행기 조종술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는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리베라는 마음속으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 저 앞쪽으로 아까 지나왔던 하이드 파크가 보이지? 기수를 멀리 보이는 높은 빌딩으로 향하고 공원위로 착륙할 듯이 내려가!"


"안 됩니다. 저 공원에는 내릴 수 없는데요. 그러지 마시고 히스로 공항으로 일단 가시지요. 거기서……."

조종사가 겁에 질려서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어서!"

'안돼, 이 미친 짓을 막아야만 해!'

잘라의 말을 들으면서 리베라는 절망감과 공포로 인하여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만 같았다.

잘라가 권총의 총구로 조종사의 머리를 또다시 꾹꾹 질러대며 윽박지르자, 조종사는 체념한 듯이 어릴 때 나뭇가지로 만들었던 새총처럼 생긴 Y자형의 핸들(조종간)을 앞으로 밀었다.

그러자 비행기는 마치 동체착륙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밑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조종사의 얼굴에는 이미 아까부터 핏기가 걷혀 있고 이제는 밀랍인형처럼 하얗다 못해 푸른빛까지 띠고 있었다.

"공원을 스치듯이 위로 지나서 저기로 착륙해. 저기 큰 도로를 활주로 삼아서 말이야"

"그건 안 됩니다. 미친 짓이요. 비행기가 폭발합니다!"

"이 머저리야, 나도 그쯤은 알아!"

잘라의 말의 여운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탕"하는 소리와 함께 조종사의 머리가 옆으로 숙여졌다.

"갓죠들아 기다려라, 내가 너희들에게 밀레니엄 선물을 듬뿍 안겨 줄 테니까. 으 하하하."

잘라는 권총을 자신의 허리춤에 꽂고 조종사를 뒤에서 안는 듯한 자세로 핸들(조종간)을 움켜쥐고는 미친 듯이 웃어댔다.

잘라의 얼굴은 마치 악마의 그것과도 같이 일그러져 있었다. 희열, 공포, 분노, 고통, 슬픔…….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도저히 말로는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리베라는 권총을 뺏으러 달려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서 힘이 빠지고 말았다.

그 때 밖에서 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딩가일까 아니면 기르글일까? 리베라는 가슴을 졸이며 제발 딩가이기를 바랐다.

"뭐야!"

잘라는 핸들(조종간)을 움켜쥐고 여전히 앞을 바라본 채 긴장한 목소리로 신경적으로 소리 질렀다. 그의 어깨는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는 듯이 보였다.

"기르글인가 봐요."

리베라는 밖에서 들리도록 일부러 큰소리로 외치면서 문 쪽으로 뒷걸음질쳤다.

"그냥 내버려 둬! 밖에서 망이나 보지 않고 왜 지랄이야!"

잘라가 뒤로 몸을 돌리며 소리친 것과 리베라가 문을 열어제낀 것은 거의 동시였다.

"탕!"

"탕, 탕!"

총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지고 리베라는 폭풍에 휩쓸린 듯한 격렬한 충격에 손으로 벽을 훑어 내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누구 조종할 수 있는 사람 없나!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 없어!"

딩가의 목소리와 뛰어나가는 발자국 소리를 귓전에 들으며 리베라는 가물가물 사라져 가는 의식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자신의 왼쪽 어깨 부분에서 피가 솟구쳐 나오고 있었다. 바닥에는 잘라가 가슴과 머리에서 피를 쏟으며 벌렁 나자빠져 있었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조종사 머리에서 흘러내린 리시버에서 관제탑으로부터의 교신음인지 숨 가쁜 목소리가 벌 떼처럼 윙윙거리고 있었다.

리베라는 조종석으로 가려고 일어서려다 숨이 막히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어깨가 아니고 가슴의 윗부분을 맞은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면서 리베라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핸들(조종간)을 향하여 기어갔다.

가까스로 기어올라 앞창으로 내다보자 발밑으로 스포트라이트에 비쳐진 마블아치가 점점 눈앞으로 곤두박질 할 듯이 다가들면서 그 뒤로 길게 뻗은 일직선의 큰 도로에는 빛의 실타래 같은 것이 길게 뻗어있었다.

옥스포드 스트리트였다!

평상시에도 수많은 인파와 차량으로 늘 붐비는 저 곳은 주말인 금요일 밤인 오늘, 더 많은 인파로 북적대고 있을 것이다!

"안돼!"

절규와 함께 리베라는 아까부터 조종사의 조작을 눈여겨보며 확인해 두었던 대로 핸들(조종간)을 하강할 때와는 반대로 힘껏 몸쪽으로 끌어당겼다.

리베라의 눈앞으로 높다란 빌딩 하나가 정면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 어떡하지! 저 빌딩을 피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비행기의 방향을 돌릴 수 있는 거지?

리베라는 겨우 기수를 상승시킬 수 있었지만 방향을 바꾸는 방법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기적과도 같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리베라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여전히 핸들(조종간)만 결사적으로 붙들고 매달렸음에도 비행기는 서서히 왼쪽으로 방향이 틀어지면서 아슬아슬하게 건물을 비껴서 지나갔다(비행기는 출력이 떨어진 저속으로 운항시에 급격한 상승조작을 하게 되면 프로펠러 도는 방향의 관성에 의하여 오른쪽으로 방향타를 조정해주는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저절로 왼쪽으로 방향이 쏠리게 되어 있음. 게다가 바람까지 오른쪽에서 강하게 불고 있어서 측풍을 받고 있었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리베라는 앞창으로 하늘이 가득히 차오르는 것을 보며 뒤로 벌렁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누구, 비행기를……. 사람 없어? 빌어먹을……. 이젠 끝장이야!"

마디마디 끊어지는 딩가의 절규소리가 꿈속에서처럼 멀리 들렸다.

리베라는 가슴의 통증이 점점 사라져가며 심신이 종잇장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라니마! 승객들의 무고한 영혼을 구원해 주세요! 저는 그들에게 너무나 큰 죄를 짓고 말았어요.

아! 용서를 구할 수조차 없는 나의 불행한 운명에 동정을 베풀어 주세요."

그리고 자신들이 행한 죄악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조차 모르는 이 흉포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들은 소외되고 핍박받으며 살아온……. 자신들의 존재마저 부인하는 저주받은 인생들이에요.

남을 부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불태워도 좋다고 생각하는, 오직 증오와 복수심에 사로잡힌 미치광이들이죠.

코레오, 저는 마지막 순간에 당신의 말을 기억했어요! 세상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당신이 세메오를 구출해 주실 거라고 믿어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반지의 고리들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거예요.

세메오! 엄마가 너의 첫 번째 생일을 멋지게 해주려고 생각했는데, 미안해. 너를 엄마 얼굴도 모르고 살아가게 만들어서…….

리베라는 세메오를 지켜주어 코레오에게로 인도해 줄 것을 라니마에게 기도했다.
아, 코레오! 사랑해요. 그 날 처음 당신의 품안에 안겨 맹세한 것처럼 불이 되어 당신 곁으로 갈게요. 왈 이제 저를 프라티 파체로 데려가세요.

리베라의 입술이 마지막으로 가늘게 떨렸다.

거대한 쇳덩어리가 중심을 잃고 밑으로 밑으로 한없이 떨어져 가는 것과는 반대로 리베라의 영혼은 라니마에게로의 여행을 시작하려는 듯 하늘로 점점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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