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비행기가 하늘을 향하여 힘있게 떠올랐다. 기창 아래로 멀어져 가는 히스로 공항의 불빛들이 얼어붙은 듯이 차갑게 느껴졌다.
'이제 모든 것을 기억의 저편으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비행기는 한달음에 시가지를 벗어난 듯이 이내 칠흑같이 까만 어둠이 내려다 보였다.
'아마 숲이었을까?'
코레오는 눈을 감고 어둠 속의 공기와 대화라도 하려는 듯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때 '쿵'하고 작은 울림과 함께 기창이 다르르 떨렸다. 기창 밖으로 코레오가 다시 눈을 돌렸을 때 어두운 지상으로부터 밝은 불꽃 한 줄기가 길게 꼬리를 뿜으며 하늘을 향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마치 옛날에 할아버지가 사랑방에서 꺼져가는 화로 안의 왕 솔방울을 긴 담뱃대로 "탁"하고 내려쳤을 때 올라오던 불티처럼…….
갑자기 코레오는 어릴 때 왈에게서 들었다며 리베라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춥고 배고픈 집시가 깜깜한 검은 숲을 헤매다가 가느다란 푸른 연기가 길게 올라가는 것을 보고 찾아가면 장작불을 둘러싸고 도란도란 얘기하고 있던 집시 가족들은 낯선 방문객을 반기며 모닥불 가의 따뜻한 자리를 내어주고, 음식을 나누어 주며 밤새도록 옛날 얘기를 하곤 했었다는…….
'저 아래 검은 숲에서 집시들이 다시 옛날처럼 모닥불가에 둘러앉아 까마득한 전설이라도 들려주고 있는 것일까?'
"승객여러분, 지금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좌석 벨트를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시고 비행기가 완전히 이륙할 때까지 움직이지 마십시오."
기내방송을 하는 기장의 당황한 듯한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코레오는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기창으로 올려다본 하늘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끝 모를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코레오는 사방이 온통 어두움에 감싸여버린 채 막막한 우주를 혼자서 날고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그 때 코레오는 문득 리베라가 공원에서 들려주었던 노랫말을 떠올렸다.
아무도 날 이해할 순 없을 거야
오직 저 숲과 강물 외에는…….
내가 말했던 것들은
모두, 모두 지나가 버렸으니까
그리고 젊었던 세월들도…….
- 폴란드의 집시 시인이며 여자 가수였던 파푸자의 시 중에서 -
그 때 갑자기 머릿속으로 한줄기 빛이 흘러들어온 것처럼 느껴지며 코레오는 오랫동안 자신을 짓누르던 가슴속의 먹장구름이 사라지고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 어떤 따뜻한 것이 스며들면서 가슴을 적시며 목까지 차 올라왔던 슬픔을 밀어내며 코레오의 몸 안으로 가득히 퍼졌다.
그것은 뭐라고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는 없지만 어두움을 몰아내고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따뜻한 위로 같은 것이었다.
마치 그 때 시에나에서 부상을 입고 치료받고 있던 중, 리베라의 작고 따뜻한 손이 이마에 얹혀졌던 때처럼.
"코레오! 당신 말대로 집시들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줄달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고 집시들과 갓죠들이 어울려서 사이좋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귓전에 들려오는 듯한 리베라의 목소리를 붙잡아 두려 조용히 눈을 감았을 때 코레오는 등받이가 밀착되며 체중이 뒤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 비행기는 완전히 방향을 잡은 듯이 육중한 몸을 일으켜 어둠을 뚫고 주저 없이 곧장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이 지구를 떠나 끝없는 우주로의 여행이라도 시작할 기세로…….
코레오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처럼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민나 집시데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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