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부와 큰언니의 결혼사진은 가운데고, 왼쪽 끝은 나의 사진이다. 김순희
살을 파고드는 듯한 추운 겨울 오후입니다. 며칠째 바람도 거세지고 꼼짝하기 싫은 날씨였습니다. 그런 오후, 모처럼 한가한 마음으로 창가에 섰습니다.
지난 달, 외사촌 결혼식 때 친정을 다녀간 뒤로 소식이 없는 큰언니가 궁금한 나머지 전화를 했습니다. 그것도 큰언니가 아닌 큰형부에게 말입니다.
가끔씩 보는 큰형부의 얼굴이 무척이나 야위었고, 주야근무인 회사일로 무척 상기된 얼굴을 보니, 안쓰럽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고 했습니다.
그런 제게 큰형부는 처제나 밥 잘 챙겨 먹고 씩씩하라고 충고를 합니다. 늘 어렵게 고생한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오히려 저의 전화가 무척 애처롭게 들렸던가봅니다.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고 수화기를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큰형부와 제가 인연을 맺은 건 참으로 멀리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큰언니와 저는 12살 차이로 띠 동갑입니다. 어린 시절 잠깐이지만 어머니로부터 들어보면 큰언니의 심정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큰언니 또래의 친구들은 다들 맏이이거나 아니면 둘째에서 그 위치가 정해져 있지만 큰언니는 밑으로 동생이 넷이나 있었습니다. 큰언니도 집안일도 손수하면서 동생들을 챙기기도 하고 그랬다고 합니다.
학창시절, 간혹 가족관계를 물어올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큰언니는 창피하고 부끄러워 제대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뭐 그리 창피할 일인가 싶지만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도 그럴것 같습니다.
그런 큰언니와의 생활은 나이차이만큼이나 멀었습니다. 제가 자라는 동안 큰언니 역시 이미 학교를 졸업하고 큰오빠의 학업을 위해 타 지역에서 공장에 취직을 해 다녔던 것입니다.
큰오빠가 군대 다녀와서 복학을 하고 공부를 할 때에도 큰언니는 타지에서 오빠의 뒷바라지를 했었습니다. 그때 딱 한 번 큰언니와 큰오빠의 자취방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첫날을 잊지 못합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는데 정확히 몇 학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백 원하는 뻥튀기를 모처럼 놀러온 저를 위해 큰언니는 자투리 비상금을 털어 사주었습니다.
늦은 밤, 큰언니와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 잠이 들었는데 밤새 차들이 달리고 달리던 소리가 그땐 참으로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적막하기만한 시골의 밤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해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 후, 큰언니는 건강이 악화돼 시골집으로 왔습니다. 결혼 적령기의 나이가 되었지만 결혼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형편 때문이었는지 생각보다 조금 뒤늦게 큰언니는 선을 보게 되었고, 선을 본 뒤 몇 달 후에 결혼식을 했습니다. 그때가 저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졸업식을 마치고 결혼식장으로 갔습니다. 버스도 제대로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이웃집 동생과 그 먼 길을 걸어서 식장에 도착했을 때, 큰언니는 예뻐 보였습니다. 결혼식이 뭔지 자세히는 몰랐지만 그냥 여자는 나이가 되면 시집을 가는데 멀리 떠나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큰언니와 함께 나란히 서 있던 큰형부의 모습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보통 키의 식구들만 보다가 정말 배구선수 같은 키의 소유자인 큰형부가 너무나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런 큰형부와 큰언니가 신혼여행을 다녀와 친정에 오는 날이었습니다. 마침 졸업을 해 집에서 방학을 맞고 있었던 전, 신혼부부가 온다고 분주해 하던 어머니와 주위 분들과는 달리 한가한 시간을 보내며 있었습니다.
둘째언니는 어린동생이 있으면 창피하다고 저더러 어디가 숨어있으라 했습니다. 저 역시 큰형부의 존재가 두렵기도 했었습니다. 곧 도착할 시간이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전 무척이나 겁이 났습니다. 생각 없이 허둥지둥 집을 나서 이웃 친구 집에 가버렸습니다.
해가 질 무렵, 찾아온 저를 보고 친구가 의아해하긴 했지만 전 큰형부와 언니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캄캄한 밤이 되어서도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의 부모님은 걱정이 되었는지 왜 안가냐고 물으셨지만 대답하지 않고 친구의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밤이 깊어갈 무렵, 둘째언니가 찾아왔습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젖어 모르고 있었는데 제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지금에야 알았다는 것입니다. 얘기를 전해들은 친구 부모님은 저를 타일렀습니다. 가서 축하해주고 반겨줘야 옳다고 하셨지요.
둘째언니는 그렇게 말했다고 진짜 사라져버리는 아이가 어딨냐며, 어머니께 혼난 얘기를 했습니다. 둘째언니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들어서는 저에게 큰형부는 다가와서 악수를 청했습니다. 조그마한 키의 어린 막내처제가 안쓰러운지 씩 웃어보였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늦은 시간동안 두 사람을 축하하며 사촌오빠들과 언니들이 흥겹게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가끔 친정에서 큰언니와 형부를 만나면 전 얘기합니다. 옛날 그 때 왜 친구 집에 가 있었는지를…. 큰형부가 너무 무서웠다고 말입니다.
그런 큰형부가 이젠 친정아버지 같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의 큰형부는 마치 친정아버지를 그대로 닮아갑니다. 큰언니는 그것이 좋기도 하고 조금 걱정도 된다고 말을 합니다.
어릴 적, 아버지 옆에서 잔소리하던 어머니나 지금 큰형부의 앉은 모습을 보며 잔소리를 하고 있는 큰언니 자신을 보면 정말 닮아가는 것 같다고 푸념처럼 말을 합니다.
너무 크게만 너무 멀게만 느껴졌던 큰형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깝습니다. 스스럼없이 전화해서 애인이라고 연기를 해도 모르는 척 대꾸를 합니다. 만나면 제가 먼저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짓궂게 농담도 먼저 건네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만히 받아줍니다.
큰형부가 있어 친정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줍니다. 아마도 큰형부도 그런 심정일겁니다. 건강이 나빠져 걱정을 하던 언니가 큰형부의 눈치를 많이 봅니다. 그것 역시 닮아갑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큰형부의 건강이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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