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3.12.29 11:15수정 2003.12.29 15:35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아파트를 담보로 이주비를 받을 때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무이자로 준다는 이주비가 알고 보니 우리 아파트를 담보로 내 이름으로 대출을 받고 이자만 회사에서 내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조합 명의로 넘어갔는데 대출은 내 앞으로 된 것이니 빚만 껴안고 잘못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도 많이 들었다.
우리 전 재산이 달리다시피한 것이니 그 아파트 앞을 지나다닐 때면 진전이 있나 유심히 보게 되었다. 재건축이란 것에 대하여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어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바른재건축위원회'라는 현판을 붙인 가건물이 문 옆에 있는 것도 보았다. 재건축을 반대하는 모임 같았다. 그걸 보고 개인 단위로 재건축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반대하는 모임까지 조직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과연 재건축이 어느 천년에나 될 것인지 아예 잊어버리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조합 사무실의 말은 늘 태평이었다. 하나도 진전이 없는 걸 뻔히 아는 데도 곧 될 거라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이주비를 받은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이사를 갔지만 끝내 집을 비우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조합 측에서 빈집에다 빨간 스프레이로 O, X 표시를 해놓아 제법 흉가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는데도 절대 이사를 안 갔다.
혹시 밤에 그곳을 지나가게 되면 아직 불을 켠 집이 몇 집이나 되는지 헤아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 집을 안 팔고 이사 안 가겠다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사람들은 처음에 재건축에 동의한다는 동의서를 제출한 책임이 있었다. 그것을 믿고 오랫동안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 뭐가 옳은지 그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재건축을 안 한다고 하면 거기 가서 살수도 있는데 반은 헐고 반은 사람이 살고 있어 지지부진 세월만 보내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9월에 드디어 법원의 판결이 나서 그 사람들에게 시가보다 많은 돈으로 보상을 해주고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결국 그 사람들은 몇 달을 고생하여 훨씬 많은 돈을 더 받고 나갈 수 있었다. 한 몇 달 더 버티면 많은 돈을 번다는 것을 그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이럭저럭 계획보다 1년이 늦어졌다.
분양도 미뤄져 10월이 지나 11월에 조합원들에게 아파트를 배정하고 12월이 되어서야 일반 분양을 했다. 일반 분양에 우리들이 관심을 가진 이유는 과연 우리 아파트 값이 얼마나 되나 하는 것이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1년 동안 부동산 환경도 많이 달라져 집 값은 내려가기 시작하였고 많은 아파트는 미분양이 되기 시작하였다. 조합원들로서야 값이 어떻든 집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다지만 회사측으로 보면 큰 손해일 터였다.
그 아파트를 계약하는 날이 왔다. 아이들과 함께 모델하우스로 갔다. 우리 아파트가 어떤지 보아두라는 것이기도 했지만 새 집을 분양 받는 건 어쨌든 기쁜 일이고 그 기쁨을 가족과 함께 나누어야겠기 때문이었다.

▲모델 하우스에서 신기해하는 우리 아이들 김인순
모델하우스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좋았다. 최신형 설계이니 같은 평수라도 넓어 보이고 쓸모 있는 건 물론이지만 최신형 가구가 다 장착되어 있었다. 심지어 밥하면서 보라고 액정 텔레비전까지 달아 놓았다. 보조 주방과 베란다의 너비도 2m 가까이 되어 그것만해도 커다란 공간이었다.
가구와 전자제품 값도 만만치 않을 것이었다. 그것이 다 분양가에 포함되어 있으니 집값이 비쌀 수밖에 없어 보였다. 원래는 일반 분양을 받은 사람들이 와서 계약을 하는 날이지만 대규모로 미분양 되었기 때문에 모델하우스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미분양 주택을 계약하자니 신명이 덜 나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계약을 하는 마음은 가볍기만 했다. 하도 오래 기다려 거의 불가능할 것같이 보이던 집이었는데 이제 분양 받게 되었고 3년 정도 기다리면 완공될 것이다. 아직 멀었지만 그 날을 기다리는 희망이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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