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생을 살다간 아버지

<서른 즈음에 떠난 여행24>-섬진강에서 아름다운 시절을 떠올리다

등록 2003.12.29 22:35수정 2003.12.3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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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군 덕치 초등학교에서부터 섬진강을 따라 이어진 길은 도보여행자에게 매력적인 길이다.

자동차가 빠르게 달리는 국도와 작별하고 강을 따라 걷기 시작하면 먼저, 시인 김용택의 시 <그 여자네 집>의 배경이 된 신촌 마을이 나온다. 그곳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그 여자네 집'을 찾아 헤매다보면 어느덧 '그 여자'는 먼 사람이 아닌 '내 사랑'이 되고, 시인의 마음처럼 설렘이 벅차게 밀려온다.


그런 풋풋한 설렘을 간직하고 걸음을 옮기면 시인의 마을 '진뫼'가 나온다. 그 마을 앞 느티나무 아래 앉아 조용히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 속 그리움의 강에는 작은 여울이 일어난다. 또한 강을 가로질러 놓인 징검다리는, 그 돌을 밟아 건너면 그리운 사람과 시절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행복하면서도 시린 착각을 일으킨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장면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장면 엠파스 영화
이렇게 설렘을 들게 하는 '그 여자네 집'과 착각에 빠뜨리는 '시인의 마을'을 지나면 얼마 동안은 집도 사람도 없는 고즈넉한 강 길을 걷게 된다. 그러면 지나치리만큼 고요히 흐르는 겨울 섬진강에 전염이 되어 발걸음을 소리 없이 조심스레 옮기려고 노력하는 고요한 자신을 느끼게 된다.

구담 마을의 당산나무와 그 터는 아직 그대로다.
▲구담 마을의 당산나무와 그 터는 아직 그대로다. 박상규
내가 강이 된 듯, 강이 내가 된 듯 서로 흠뻑 빠져 걷다보면 이광모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배경인 천담, 구담 마을이 나온다. 물론 영화 속에 등장한 그 서정적인 공간은 이미 많이 변해있다.

창희가 떨리는 눈으로 어머니와 미군 병사의 정사장면을 목격한 그 방앗간은 오래 전에 헐려 찾을 수 없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창희의 장례식을 치른 뒤 친구들이 상여를 들고 가던 그 늦가을의 비포장 도로에는 단단한 시멘트가 덮여 있다. 그러나, 구담마을에는 친구들이 창희의 가짜 무덤을 만들던,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커다란 아름드리 당산나무와 터는 변함 없이 남아있다.

영화 속 장면의 그 곳, 당산나무 뿌리에 걸터앉아 저물어 가는 햇살 아래 소리 없이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본다. 그리고 영화 <아름다운 시절>이 아닌, 나의 아버지와 아버지 때문에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내가 6살이던 해에 이혼을 하고 산골을 떠난 엄마는 얼마 후 형과 두 명의 누나를 데리고 갔다. 그래서 자의든 타이든 아버지 곁에는 나만 남게 되었고, 아버지와 막내아들의 서툴고 투박한 청계산 산골 생활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96년 이른 가을까지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자식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모습을 참으로 많이 보여주셨고, 난 언제나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자랐다. 어린 나에게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었고, 난 불쌍한 아버지 곁을 도저히 떠날 수 없었다. 가끔, 시내에 살던 엄마 곁에서 편안하게 며칠씩 머물기도 했지만 난 다시 불쌍한 아버지에게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청계산 밑에서 닭, 오리, 보신탕을 파는 식당을 하셨다. 여름날이면 우리 집에는 서울에서 온 손님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아버지는 장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손님들이 따라 주는 술을 거부하지 않았고, 한 잔 두 잔 마시다가 아버지는 술 취해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러면 그날 우리 집 장사는 그야말로 '개판'이 되었고, 난 쓰러진 아버지를 낑낑거리며 방에 눕히고 밤새도록 음식을 토해내는 아버지 등을 두드려야 했다.

천담 마을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미소.
▲천담 마을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미소. 박상규
우리 집은 그린벨트 지역에 있었기에 당연히 장사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래서 가끔 버스를 타고 공무원들이 몰려와 공무집행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집을 마구 부셨다. 난 그런 공무원들이 무서웠고 아버지가 어떻게든 힘을 써주길 바랐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무기력하게 그저 부서지는 집을 바라보시기만 했다.

공무원들 앞에 무기력했던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더라도 아버지는 정말이지 어린 내가 대신 싸워주고 싶을 만큼 싸움도 못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이 아버지도 자주 시비에 휘말렸고 주먹다짐까지 한 적이 많았다.

자식 앞에서 아버지의 싸우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좋지 않은 일이건만 더 비참하게도 꼭 이기길 바랐던 내 기대를 저버리며 아버지는 언제나 초라하게 패했다. 그런 밤이면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으며 나를 대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초라한 모습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화투를 치셨다. 장사를 마치면 '변함 없이' 돈을 몽땅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오늘날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로 나갔고 그 다음날 아침이면 '변함 없이' 빈털터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룻밤만 보내고 돌아오면 그나마 나은 거였다.

아버지는 어린 나를 산골 집에 홀로 남겨두고 1주일씩 집에 돌아오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러면 난 아버지 없는 산골 집에서 공포에 질려 울면서 아버지를 기다렸고 날이 밝아오면 내가 싼 도시락을 챙겨들고 학교에 가야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극에 달할 즈음 캄캄한 새벽에 아버지는 그 경쾌한 오토바이 소리를 내며 돌아오셨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가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음인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면 미움과 원망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살짝 미소지으며 돌아오는 아버지가 그렇게 사랑스럽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방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는 아버지에게서는 차갑고 알싸한 이슬 내음이 났고 아버지의 두 손엔 먹을 것이 담겨있는 검은 봉투가 어김없이 들려있었다.

가끔 아버지의 화투판을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난 지금까지 아버지처럼 화투를 못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정말이지 돈을 잃으려고 치는 사람 같았다. 아니, 돈을 잃으려고 작정하고 쳐도 그 정도까지 가겠냐 싶을 정도였고 어린 내가 화투패를 빼앗아 대신 쳐주고 싶을 수준이었다. 그런 아버지는 당연히 화투판의 최고 스타였고 도박판에 없으면 안 되는 존재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언제나 돈이 없어 가난했다.

섬진강을 따라가는 아름다운 길
▲섬진강을 따라가는 아름다운 길 박상규
아버지는 도박 '판돈'이 떨어지면 어린 나를 적극 활용하셨다. 아버지는 진지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교육했다. 교육을 다 받은 나는 동네로 내려가 집집마다 돌면서 아버지가 가르쳐 준대로 했다.

"저기요…. 우리 아버지가요…급하다구요…돈 조금만 빌려달라는데요…."

이렇게 말하면 동네 사람들은 귀신같이 내 말을 알아들었고 혀를 끌끌 차면서도 내게 얼마간 돈을 주었다. 동네를 다 돌고 나면 제법 많은 돈이 생겼고 난 그 돈을 모두 아버지에게 갖다 주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는데 난 그런 아버지의 표정이 좋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나를 '배신'하고 다시 화투를 치러 나가 얼마동안 돌아오지 않으셨다.

섬진강 구담 마을 풍경
▲섬진강 구담 마을 풍경 박상규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면'을 반복하며 지루하게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이 이어지던 국민학교 5학년 어느 날 아침 조회시간.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의 요지는 어제 학교 앞에서 3중 출동의 큰 교통사고가 났으니 어린이 여러분은 조심하라는 거였다.

문득 어젯밤 오토바이를 타고 나간 아버지가 생각났지만 나는 곧 잊어버렸다. 한동안 돌아오지 않던 아버지가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돌아왔을 때 그 3중 충돌 교통사고의 주인공이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다. 다친 아버지를 간병하며 며칠을 보내고 있는데 병원 구급차가 아버지를 '잡으러' 왔다.

난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려고 일부러 부른지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는 비싼 병원비가 없어서 몰래 병원을 탈출했던 거였다. 절룩거리며 구급차에 올라탄 아버지는 마당에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조금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시며 떠나갔는데 난 아직도 아버지의 그 '귀여운' 미소를 떠올리면 웃음이 나온다.

강에도 산이 있다
▲강에도 산이 있다 박상규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교 2학년이던 해에 딸이 많은 여자와 재혼을 했다. 난 새 엄마를 잘 따랐고 갑자기 요술처럼 생겨난 누나들과도 잘 지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역시 여자와 살 운명이 아니었나 보다. 채 1년이 되기도 전에 다시 이혼을 했고, 나의 두 번째 엄마도 생모와 마찬가지로 내 곁을 떠났다.

그날 밤 아버지는 언제나 변함 없이 당신 곁을 지키고 있던 나를 부둥켜 안고 울었다. 그날 이후 나는 너무 많은 눈물을 가진 아버지의 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내게 아버지의 우는 모습은 특별한 모습이 아닌 정말이지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아니면 나를 너무 많이 울린 아버지 덕에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어른이 된 나는 참으로 눈물이 많고 어린애처럼 훌쩍거릴 때가 많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한 때 내가 엄마라 부르며 따르던 '새엄마'는 지금쯤 어떻게 살고 계실까. 얼굴이 예쁘던 누나들은 모두 결혼해서 아이 엄마가 되었을까. '못난' 아버지 곁을 꿋꿋이 지킨 나를 가끔 생각할까. 짧은 세월이었지만 한때나마 '가족'이던 그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으면 좋겠다.

강에도 산이 있다
▲강에도 산이 있다 박상규
언제나 아버지 곁을 지킨 나는 정작 심장마비로 쓰러진 아버지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아버지의 '든든한 빽'이던 난 아버지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끝까지 곁에 있어야 했는데 대학생이 되었다고 '뻐기던' 나는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다.

아마도 내 빈자리 때문에 많이 외로워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셨을 게다. 나밖에 없던 아버지였기에 난 그렇게 믿고 있다. 그래서 많이 미안하다.

아버지의 모든 '못난' 생을 다 끌어 모아 내 앞에 들이밀어도, 도박 판돈을 위해 나를 이용했어도 난 아버지가 좋았다. 화투를 치러 나가지 않은 겨울날이면 아버지는 언제나 뒷산에서 땔나무를 구하고 계셨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해질녘에 돌아오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바로 뒷산에 대고 고래고래 아버지를 부르는 것이었다.

"아~버~지~!!" 이렇게 소리치면 산 속에서 아버지는 내게, "어, 아버지 산에 있다!!"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지게에 산더미 같이 나무를 쌓아 내려오면 난 아버지가 구해온 나무로 아궁이에 불을 지폈고, 아버지는 저녁밥을 준비했다. 이는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래서 난 겨울산을 보면 여전히 아버지를 소리쳐 부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겨울 섬진강이 소리없이 흐르고 있다.
▲겨울 섬진강이 소리없이 흐르고 있다. 박상규
그리고 지금처럼 세상을 걸어다녀도, 아버지 고물 오토바이 위에서 바라본 세상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평생을 타고 다닌 고물 오토바이 위에 나를 자주 태워주셨다. 그 오토바이를 타고 바라본 한밤중의 산등성이에 걸린 보름달은 나를 따라 오는 듯 했고 아버지의 넓은 등에 한쪽 얼굴을 묻은 채 바라본 세상은 정말이지 황홀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두 가지 추억만으로도 아버지의 '못난' 생은 가려지고도 남는다. 아버지가 있었기에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며 살고 있는 것이고 그 추억을 떠올리면 나는 행복하다. 돌아보면 나를 많이 울렸지만 끝내 아버지는 내게 돌아왔고 맛이 있건 없건 내게 가장 많은 밥상을 차려주신 분이다.

아버지는 내 인생 최고의 '짝'이었고 지금까지 내게 가장 많은 사랑을 주신 분이다. 내게 아버지는 가장 아름다운 분이고 아버지와 함께 단 둘이 살던 그 때가 내 삶에서 가장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시절이다.

오늘 그 시절과 아버지를 떠올리며 저문 섬진강에서 눈물을 떨구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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