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밤 까먹으며 안톤 체호프를 읽다

단편소설의 개척자이자 완성자 안톤 체호프의 단편 모음집 2권

등록 2003.12.29 22:45수정 2003.12.3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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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사랑의 언어
▲체호프 단편선, 사랑의 언어 민음사, 중앙M&B
흔히 말하기를 한겨울에 따뜻한 아랫목에서 군밤을 까먹는다고 한다. 여기에 한겨울의 군밤과 같은 작가가 있으니 바로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이다.

좁은 골목길의 마지막 가을 낙엽을 차가운 겨울 바람이 쓸어 가는 순간 이불을 덮고 김이 나는 머그잔을 들고 읽기에 좋은 작가가 체호프이다.


44년의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인간 생활사의 세세한 부분을 주의 깊게 깨달은 듯한 그의 문장들은 지금 읽기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소설속의 주인공과 배경이 러시아임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으며 주고받는 대화는 나와 상대방의 이야기가 된다.

민음사에서 나온 '체호프 단편선'에는 그동안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았던 '관리의 죽음', '공포', '베짱이', '드라마', '베로치카', '미녀', '거울', '내기', '티푸스', '주교' 등 10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관리의 죽음'은 주인공이 오페라를 관람하다가 재채기를 한 것이 높은 관리에게 튀기게 되자 그로 인해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며 거듭 관리에게 사과를 하게 되지만 그것이 자신만의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져 결국 주인공이 죽게 된다는 내용이다.

'베짱이'는 한 부부의 생활사를 우화적인 설정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부인인 올가가 자상한 남편을 등한시 하며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지내다가 남편이 죽게 된 후에야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중앙 M&B에서 나온 '사랑의 언어'에는 사랑에 관한 단편들만을 모아놓은 책으로 '키스', '공포', '큰 볼로쟈와 작은 볼로쟈', '목에 걸린 안나 훈장', '다락방이 있는 집', '사랑이란', '이오느이치', '개를 데리고 다니느 여인', '귀여운 여인', '약혼녀' 등 10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큰 볼로쟈와 작은 볼로쟈'는 자신이 사랑한 젊은 볼로쟈에 대한 화풀이로 늙은 볼로쟈와 결혼한 여주인공이 결혼 후에 생기는 갈등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볼로쟈 모두에게 삶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주인공에 대한 번민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바람둥이 남자와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여자가 휴양지에서 만나 형식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그들이 헤어지고 나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로 두 사람이 미래를 위해 서로 고민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체호프는 대학시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의사로 할동하다가 죽을때까지 44년간을 살아가면서 쓴 소설과 드라마는 700여 편에 이른다고 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소재, 등장 인물들간의 적절한 대화, 주변 사물의 세세한 부분들을 짧은 문장을 통해 적절히 묘사하고 있는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이야기에 전혀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대 단편소설의 개척자이자 완성자인 체호프는 러시아의 문학뿐만이 아니라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어네스트 헤밍웨이 등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소설들이 억지로 결론을 이끌어 내지 않는다는 점은 과연 인간 생활사의 정확한 탐구를 이룬 체호프만의 소설쓰기 방식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론이 있는 삶이란 도대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체호프 단편선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민음사, 2002


사랑의 언어 - 체호프 소설선집, 러시아 문학 걸작선 1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김현택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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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관심있는 분야는 책동네와 사는이야기입니다. 머리와 손과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있으니 기본적인 취재 구성품은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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