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김진석
유기농업의 메카 쿠바, 환자 수 30% 감소
여느 나라와 같이 화학비료에 대기업 농장 중심이던 쿠바가 이처럼 농업혁명을 시도한 배경에는 사회주의 경제블럭의 붕괴였다. 미국의 경제봉쇄를 소련이 더 이상 지켜줄 수 없었다. 수입에 의존했던 연간 100만톤의 화학비료와 200만톤의 사료작물, 2만톤의 농약, 석유가 없어 굴릴 수 없었던 농기계 등 당시 80%나 되던 쿠바의 무역량은 일거에 시장을 잃은 것이다.
"소리없는 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1991년 9월 카스트로는 '평화시의 특별선언'을 선포하고 농정의 대전환을 꾀했습니다. 우선 국민투표 형식을 빌어 93% 지지를 얻어낸 뒤, 아이디어를 모았지요. 전국의 과학자, 교수들에게 인센티브를 걸어 '지금부터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농사기술을 발굴해라, 그것을 최신 과학기술과 접목시켜 농민들과 실험해 보고 농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아라'라고 주문했습니다."
또한 김 교수는 쿠바 유기농업의 성공열쇠는 '여성의 참여'였다고 말한다. 카스트로는 여성들에게 다음처럼 호소했다.
'쿠바의 여성들이여, 당신들의 젖을 먹고 우리는 자라났다. 대지는 어머니의 땅과 같다. 여기서 난 농사로 우리는 먹고산다. 그런데 쿠바의 대지가 오염되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젖이 오염되었다는 것 아닌가. 그러니 쿠바의 유기농업을 당신들이 책임져라.'
그 결과 쿠바 농정의 핵심에는 여성들이 포진해 있다. 우리의 농림부에 해당하는 농림성 차관도 여성이고 유기농연구소 소장, 농업기술청장 등 모두 여성이다.
쿠바 유기농업은 단순히 '무농약, 무비료'가 아니다. 자연과 인간의 '순환'을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이었다. 구체적으로 꼽자면 ▲사적경영을 허용한 가족농 중심의 토지개혁 ▲직거래 유통중심의 시장개혁 ▲지렁이퇴비 같은 것을 이용한 흙 살리기 운동 ▲윤작·간작·휴경작 등 순환농업의 정착 ▲전통농업과 과학기술의 결합 ▲농민참여하의 현장과 지역성 중시 등이었다.
쿠바는 우선 90%에 달하던 국영농장을 개인이나 조합에게 무상·유상으로 임대해 직접 경영하게 했고, 그 결과 2002년 말 국영농장은 20%, 협동농장과 개인농장 20%, 가족농가들의 협동체인 UPBC가 60%를 차지하고 있다.
김 교수는 "유기농업의 핵심은 흙 살리기"라며 "화학비료로 황폐해진 농지를 살리기 위해 최소 3∼5년간 필요하기 때문에 토지개혁은 유기농업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한국의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현재 2천 가구)의 경우 20%가 자영농지, 80%가 임대농지로 농사를 짓고 있어 유기농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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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농약을 많이 쓰는 한국, '저농약'도 선진국의 3배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김진석
또한 흙 살리기의 기술적 요인은 퇴비. 남은 음식물, 가축의 분뇨뿐만 아니라 "쿠바 유기농의 숨은 주역은 지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렁이퇴비는 '검은 땅'을 '푸른 땅'으로 바꾸는데 일등공신이었다.
"우리는 지렁이를 '혐오동물' 취급하지만 쿠바에선 지렁이가 '도시의 농부'란 소릴 들을 정도지요. 쿠바는 도시농업이 발달해 있는데 정부가 개인에게 싼 가격으로 소규모 땅(최고 0.2ha)을 임대해 주고 개인은 '흙상자 농법'을 통해 각종 야채와 과일을 직접 길러 먹습니다.
우리네 농법은 30센티미터 가량 땅을 파서 씨앗을 뿌리지만 그네들은 토상농업이라고 해서 말구유통 같은 것에 흙을 담아 화단처럼 만듭니다. 도시의 공터나 학교 운동장, 쓰레기 매립지 등에 그런 밭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거기서 자라는 미생물이나 지렁이의 토사물이 퇴비역할을 하는 겁니다."
해충 제거도 자연이 담당한다. 인도에서 수입한 님(NIM)나무를 전국에 보급해 해충을 없애는 재료로 쓰고 있고, 농장주변에 해충이 기피하는 식물을 심어 자연방제를 하는 것은 무조건 '약을 치고 보는' 한국농업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김성훈 교수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국적' 상황으로 이어졌다. 단적으로 "전국의 모든 농과대에는 농약화학과가 있지만 유기농학과는 단국대 한 곳에만 있다"는 점이 한국의 유기농 수준을 대변한다.
"제가 장관 재임시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농업법 시행령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 기준으론 안됩니다. 당시는 '친환경' 농업이 출발할 단계라 '저농약' 사용까지 친환경의 범주에 넣었지만 이젠 친환경이라고 말 못합니다. 보통 쓰는 농약의 절반을 쓰는 걸 저농약으로 분류하는데 선진국에 비하면 3배나 많은 양입니다. 현재 2만여 농가가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는데 이중 70%가 저농약 농사를 짓고 있어요."
현재 친환경 농업에는 저농약, 무농약, 전환기 유기농업, 유기농업 등 4가지 단계가 있다. 여기에서 "저농약을 빼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한국의 친환경 농산물, 전체 생산량의 1%도 안돼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김진석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화학비료와 농약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로 꼽힌다. 세계 2위라는 일본에 비교해도 월등히 높다. 김 교수는 이렇게 된 데는 농약과 비료값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싸다는 점이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농약과 비료의 허가·관리권을 쥐고 있는 농촌진흥청이 바뀌어야 한국 유기농의 미래가 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왔다. 화학비료의 생산과 연구에 지원되는 정부보조금을 줄여 유기농에 투자하라는 얘기다. 현재 정부의 유기농 직불금은 1ha당 52만원∼79만4000원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친환경 농가는 1만1900호로 전체의 1%도 안됩니다. 유기농은 더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요. 반면 대규모 기업농 위주인 미국도 2010년까지 순유기농업 비중을 10% 수준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할 정도로 유기농업은 21세기 사조(思潮)중의 하나입니다."
덧붙여 김 교수는 "우리가 언제부터 농약을 썼냐"고 반문한다. 이어 "우리 농업의 역사가 5천년"이라며 "농약의 역사는 40~50년 역사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농업의 '농'자만 들어가도 전근대적인 것이라며 천시하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일반 농산물 보다 2~3배 가격이 높아도 사람들은 유기농이 좋다는 사실을 알고 사려고 합니다. 이러한 소비자 인식이 유기농의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농민들도 여기서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유기농이 좋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우리 농업경제구조에 맞을까? 더욱이 대부분의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유기농은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지 않나?
"유기농법인 생태보존과 생산성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생태보전형 농업은 일반적으로 생산성이 낮다고 알려져 있고, 생산성 향상이 높은 농업은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은 세계적인 상식이었지요. 하지만 쿠바의 농업 10년은 그러한 인식이 오류였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1992년 미국의 스탠포드 조사단이 쿠바의 유기농 시도를 두고 "인류 역사의 최대의 실험"이라 지적하며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쿠바 유기농업 생산성은 초기 2년간은 일반농업에 비해 뒤떨어졌으나 4년 이후 부터는 계속 증가해 일반농업의 30%가 넘는 생산성을 보였다.
또한 '유기농은 결국 돈많은 사람들이나 먹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인식도 유기농 생산물이 많아지고, 또 농민들이 가공과 유통에 참여하는 구조가 되었을 때 해결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제안한다. 생산보다 이윤이 훨씬 많이 남는 가공과 유통은 대기업이 차지하고 농민들은 생산만 하라는 식으론 농민들이 살아 남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2시간여에 걸친 인터뷰 말미, 김성훈 교수는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가지를 조언한다.
"벌레 먹고 못 생긴 게 더 맛있고 안전합니다."
| | [연재후기] '한국농업에 관한 오해와 진실 11가지'를 마치며 | | | 이경해씨의 자결이 여기까지 이끌었다 | | | | 기자가 <오마이뉴스>의 한국농업특별기획을 담당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지난 9월 추석날 사회부 당직이었던 기자는, 멕시코 칸쿤에서 농민 이경해씨가 'WTO가 농민 다 죽인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형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추석연휴 연이틀 출근을 해야 했던 것이 농업문제와의 첫인연이었다.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데스크는 '전기자 필독'이라는 긴급공지를 올렸다. "우리가 농민시위 등 현장기사에서는 강세를 보여왔으나 농업개방 문제 등에 대한 제대로 된 기획기사가 없었다는 자성을 한다"며 "이경해씨 사건을 계기로 농업개방에 대한 특별기획을 하나 준비하고 이 기획기사는 조회수에 상관없이 주요기사로 배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조회수와 상관없이'라는 대목이었다. 농업은 언론에서 잘 '안팔리는' 분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농림부 출입기자는 경제부처나 외통부 출입기자들이 겸하는 경우가 많다. 인력면에서 일간지와 '게임이 안되는' <오마이뉴스>로선 농업분야에 기자 한 명을 배치한다는 것은 대단히 큰 투자였다.
기자는 취재를 하면 할수록 더욱 답답해졌다. 도무지 한국농업의 해법이 보이지 않았다. 수십년 동안 농업분야에 잔뼈가 굵은 농민이나 학자도 시원스레 답을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기자의 그런 조급증은 '경쟁력 강화'라는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농업의 경쟁력이란 무엇인가. 그건 다름아닌 가격경쟁력이었다. 하지만 농업은 일찍이 다산 정약용조차 "무릇 농업이란 상업보다 이익이 박하고, 공업에 비해 힘이 더 들며, 선비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세 가지 불리한 점이 있다"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농업의 드러나지 않는 가치, 즉 생명산업이고 안보산업이라는 자체의 논리를 알려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농업에 관한 11가지 오해와 진실'이라는 <오마이뉴스>의 접근법은 옳았다고 생각된다. 물론 평가는 독자들에게 맡긴다. 어쨋든 <오마이뉴스>로서는 조회수와 상관없이 주 1회 톱기사로 배치한다는 원칙을 지난 3개월간 지켜왔다.
이번 연재에서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수입농산물에 대한 한국의 허술한 검역체계, 농산물 생산량보다 13∼20배에 이르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 등을 미처 심도 있게 다루지 못했다. 이 모두는 지식과 준비가 부족했던 탓이다. 남은 과제는 다음 기회를 약속키로 한다. / 박형숙 기자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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