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사람들은 출근 준비에 바쁠 때 장사치들은 물건 정리하기에 바쁘다. 자칫 늦었다간 단속반원에게 물건을 전부 빼앗기기 때문이다. 곽진성
간간이 단속을 하던 공무원들이 퇴근을 하는 시간이 되자, 짐 보따리를 든 노점 장사치가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저녁 6시 30분부터 아침 8시까지, 낮이 아닌 밤이 그들의 세상이다. 모두가 잠든 그 시간에 그들의 삶은 시작된다.
"이 늦은 시간에 누가 오겠어? 그저 출근길 지나는 이들이 한번 눈길이라도 보아주면 다행이지!"
하나라도 팔아야 반찬값이라도 마련할 수 있기에 새벽 긴긴 밤을 하얗게 새면서 장사를 한다. 벌이가 시원찮아도, 오가는 손님조자 없어도 어쩔 수 없다. 기다리는 수밖에. 오는 손님을 기다려 벌이를 하는 게 장사치의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제 상황은 가뜩이나 넉넉지 않은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재래 시장은 죽었어. 삶도, 희망도."
추위를 이기려 연신 독한 담배를 피워 대는, 예순을 넘긴 할머니는 팔리지 않는 건어물을 만지작거리며 한탄한다.
"IMF진 뭔지, 그 이후로 장사가 안 돼, 10분의 1도 안 팔려, 경제도 어렵고, 마트가 다 잡아 먹어 버렸어. 죽었어, 재래시장은."

▲"재래시장은 죽었어, 삶도 희망도." 곽진성
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역전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시장.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시장은 생경맞게 보일 뿐이다. 이곳을 서성이는 사람들은 옛 시장의 향수를 느끼려는 노인들과 조금이라도 싸게 장을 보려는 악착같은 몇몇 아주머니들 뿐이다.
"나라는 뭐하나 몰라. 가난한 사람들을 살려야지, 부자들만 더욱 부자 되게 하고. 에이, 어느 나라가 가난한 이들이 먹고 살지도 못하게 해?"
한 장사치는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연신 주위의 눈치를 살핀다. 공연한 소리를 했다가 혹여 단속이 심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다. 사진이라도 찍히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 희망은 사라지고 삶에 대한 불안과 염려만이 자리한, 죽어버린 시장. 그곳이 한때는 대전 블루스를 흥얼거리며 삶을 노래했던, 살아 숨쉬는 삶의 터전이었다.
삶이 언제나 일요일은 아니겠지만
"대통령이 이곳(대전)에 왔을 때, 손도 잡아 주고 우리 같은 늙은이 일거리도 만들어 준다고 했는데. 지금은 기억도 못하나 봐. 하긴 우리 같은 늙은이 어디서 써주기나 하것어?"
삼삼오오 모여 불을 지피고 있던 한 장사치는, 노인들의 일거리를 마련해 주겠다던 대통령의 지키지 못한 말이 무척이나 아쉬운 모양이다. 대통령마저도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는 시대. 요즘 많은 이들이 대통령의 말을 문제 삼고 그 진의를 의심하지만, 이들 장사치들은 대통령의 말이라도 잡고 싶은 게다. 그들의 그 작은 희망을 대통령은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을까?

▲일요일은 대전 역전 근처의 재래시장, 그리고 노점 장사치들이 활기를 띄는 날이다. 대전 부르스를 흥얼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곽진성
이 추운 겨울날 새벽 장사를 그만두고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고 그들은 말한다. 하지만 장사를 그만두고 집에 편하게 들어앉으라고 말하면 이내 손 사레를 친다.
"아무리 일거리가 있다고, 시장을 어떻게 떠나? 내 삶인데."
아무리 경기가 좋지 않다지만 그래도 주말, 특히 일요일 아침 벌이는 그나마 낫다. 그 때는 노점 장사치들의 얼굴에도 활기가 띤다. 일요일에는 단속도 없다. 이른 아침부터 물건을 받고 "자~ 마른 반찬 사세요. 싸게 팔아요"라고 외치는 장사치들의 목소리가 흥겹게 들린다. 지나는 사람들도 그 기운에 감염되었는지 눈 한번 더 돌려 보고, 짧은 흥정을 부쳐 물건을 사간다.
"이런 게 진짜 삶이지. 사람이 있잖아! 재래 시장엔."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는 밤의 인생. 추운 겨울 늦은 밤에 대전 블루스를 흥얼거리며 희망을 노래하던 그들. 그곳에 재래시장이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잊지말아요. 내일은 어제보다 나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저널리스트는 오늘과 함께 뜁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