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3.12.30 19:49수정 2003.12.30 20:24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연일 피곤한 하루의 연속 이었다. 여유있게 시간을 기다리며 살았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 돈에 대해 약간을 강박관념을 갖고 있기에 개미처럼 종일 돌다 버스에 오르면 졸음이 밀려 온다.
어설프게 의자에 기대어 있는데 한무리의 중학생이 올라탄다.
내 앞 몸을 비스듬이 기대어 서서 추위에 압축된 시퍼런 허벅지를 다들어 내놓고, 무엇이 그리 좋은지 웃음소리가 맑기도 했다.
'참 좋은 나이다'
그러나 난 잠시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주디?"
"15만원!"
"얼마 안줬구만"
"하루가 아니고 2시간 놀았다니까"
낄낄 거리며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어둠이 깔린 창문을 통해 바라보며, 갑자기 답답함에 피곤함이 달아났다.
언제나 TV에서나 보았던 일들이 지금 옆에 있는 아이들과도 해당사항이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길이 더 간다.
'참 예쁘게도 생겼구만..'
머리속이 흐트러지며 어지럼증까지 느끼며, 가르치는 아이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눈에 신경이 꽉 찼는지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앞에 앉은 친구도 뭔가 불안한 듯 계속 집중을 못하고, 두리번 거리며 힘들어 했다.
요즘 사춘기를 맞는지 약간은 반항적 이었지만, 그래도 수업은 충실히 하는 모범생이다.
조심히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선생님 눈은 속일 수 없어"
"..."
"말해 괜찮아. 뭔 일인데..오늘 선생님도 수업이 안된다"
"..저기 선생님..저 요즘 힘들어요!"
"왜?"
"학교에서..학교에서.."
"마음 맞지 않는 친구 있어?"
"아뇨..저... 자꾸 딴 생각만 나고..그리고.."
심리적으로 불안한지 계속 손과 몸을 가만 두지 못했다.
그리고 동공마저 흔들리는 것이 무엇인가에 확실히 놀란 것이었다.
"손 줘봐"
맥을 짚어 보았다. 콩콩 뛰는 것이 거칠었다.
"선생님 학교에서 친구가.."
"말하기 힘들면 하지마..엄마도 아셔?"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알았어. 엄마랑 이야기 조금 해도 되지?"
"..."
온전한 수업을 다 끝내지 못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엄마는 약간 상기된 상태로 내 앞에 앉았다.
수업 분위기가 아니었으며, 한의원에가 놀란 가슴을 좀 달래주는 약을 먹어야겠다고 덧붙혀 주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으이구 담대하지 못하고 말이야.."
"무슨..?"
"같은 반 친구가 포르노 테입을 보고 똑 같이 해봤데요"
"..어머...상대는..."
"같은 학년 여학생인데. 갠 막 걸레라니까요"
"13살인데."
"갠 중학생, 고등학생 웬만한 애는 다 걷쳐갔데요"
...
우리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오늘은 왜 이렇게 세상이 이상한지 자꾸 머리가 욱죄이며, 두통까지 이르켰다.
서로 스킨쉽을 했던거까지 리얼하게 본인의 입으로 들었으니..사춘기를 맞은 이 친구는 당연히 혼란스럽고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자세하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단다. 식생활이 건강하니 당연히 몸의 성장은 정상 괘도 보다 높지만, 정신적 성장은 아직 초등학생이란 걸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맞벌이를 하는 여학생의 집 부모는 무조건 학원을 뱅글뱅글 돌리면 되는 줄 알고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만, 점점 곪아가는 아이는 웬만한 사람들도 다 아는 걸레로 낙인 찍힌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며 나도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 숙연해졌다. 돈 번다는 명목하에 내가 정말 귀하게 여겨야 할 것에 대해 소홀치 않았는지.
그리고 버스에서 본 여학생의 모습들이 지금 청소년 문화의 한부분인지. 그럴리 없겠지만.... 도미노처럼 전파되는 음난물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없을지!
정리되는 않는 생각은 수위를 계속 넘으며 답답해졌고, 난 그 학생을 만날 수 있냐고 물었다.
"만나도 소용 없어요. 학부모회 간부회 다 찾아가도 소용 없어요"
거대한 조직도 아닌 간여린 그 여학생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렇게 수선스럽게 다가서는지 그 또한 우스웠다.
내 아이에게 불이익이니 당연히 말 먼저 앞섰을 것이며, 험담부터 늘어 놓았을 것이다. 본인의 입장은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은채.
무겁게 찬 바람을 맞으며 걸어 들어오는 길에 그 여학생을 생각한다.
어쩌다 피지도 못하고 걸레로 낙인 찍혔는지.
꼭 인연이 되어 만나면 덫에 걸린 거 뿐 넌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참 겨울은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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