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시아 빈민 여성(2)

한국의 신계층, 신빈민은 이렇게 산다.

등록 2003.12.31 18:22수정 2003.12.3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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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나는 하루 평균 1달러도 되지 않는 비용을 벌었다. 내 무능때문인가? 성실하지 못해서일까? 인간 관계 기술 부족일까? 세상이 나빠서일까?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간 하루 하루들이었다.

누구든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면 '하루 평균 수익이 1달러도 되지 않을 정도인데, 어떻게 물가 높은 한국에서 생활이 가능하였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마련이다. 의심에 가득한 눈으로 의아해 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거취나 장래가 불투명하다고 받아들이신 분들은 나의 처지를 안타까와 하시며 답답해 할 것임에 틀림없다. "돈이 그리 없으면 가까운 이웃에게 돈 좀 빌려서 쓰던가, 카드를 사용해서 돈을 빼쓰던지 하지 너무 융통성 없는 것 아니냐?"고 질책할 수도 있을 법하다.

아니면 "적절한 직장을 구할 때까지 노력해 봐야지, 참 아가씨 철딱지 없네!"라고 하시며 딱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그리 돈 없이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 며 염려하실 수도 있고 "한심하다. 한심해! 그렇게 없으면서 무슨 서울 기행이냐?"라고 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인정 많고 나누기 좋아하시는 많은 분들은 "힘든 환경에 용기잃지 말고 열심히 살으면 좋겠다"고 격려하신다든지 "적은 돈이지만, 나눠 사용하고 싶다"고 제안하며 십시일반 나눠주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말들이 오고 가든 확고 분명한 사실은 지난 한 해, 나는 하루 1달러 수익도 근근히 생길 만큼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본인의 성실과 의지, 최선을 다하는 노력과 상관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도록 만드는 온갖 사회적, 환경적 압력에 굴하지 않는 한국인의 저력이기도 하다.

하루 수익이 평균 1달러도 안되는데 어떻게 생활하였을까 궁금하실 것이다. 나는 수익이 생기지 않았던 실직 기간 나날들은 대부분 도서관에서 생활을 하였었다.

그 시간을 활용하여 오마이뉴스에 사회, 문화, 정치 등 다양한 지역 소식들을 기사화하기도 하는가 하면 밀렸던 잡지와 신문 읽기 등 독서를 하였다.

특히 해외 많은 도시와 동남아 일대 관련 정보들을 검색하기도 하였고, '이라크 전쟁' 당시, 요르단왕실, 이란국영신문, 터키데일리신문, 영국의 인디펜던트지 등 다양한 신문들을 읽고 국제적인 정세들을 파악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지역 내 의정에 참여, 특별한 일이 없으면 모니터링을 하였다. 의정 감시를 하는 동안, 정말 말도 안되는 얼토당토 않는 밀실 행정들을 자주 목격하게될 때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이걸 보고 따져야하는데'하고 아쉬워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의정 상임회의 정례회 기간, 시민들과 기자가 한 명이라도 있느냐 없느냐가 회의 과정 전반적인 분위기마저 얼마만큼 달라지게 할 수 있는가를 담박에 느낄 수 있었다.

모니터링 후에 직접 의원을 만나 궁금한 것을 물어가다 보면, 의원들이 시민들의 의정 관심과 감시를 의식할 수밖에 없기에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의정을 이끌어가는데 기여할 수 있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 부패와 부정에 찌든 정치판이라고 욕하기 쉽지만, 정작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의정에 참여하며 또 관심을 보였는가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오마이뉴스>에서 적은 원고료를 받는 날이면 그것을 가지고 산행팀과 함께 지리산과 소백산 등 여러 산에 오르기도 하였다. 회비가 1만원 선이니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고, 따스하고 욕심없는 이웃들과 사귀는 기쁨도 좋았다. 게다가 아름다운 비경들을 즐길 수 있었으니 산행에 폭 빠질 수밖에.

돈이 적으니 차비 없는 날도 정말 잦았다. 그러니 1시간 정도 걸을 수 있는 거리는 웬만하면 일찍 집을 나서서 걸어다녔다. 가로수가 큰지, 작은지, 간판 색이 어두운지 밝은지, 보도 블록은 너무 약한지, 강한지, 가게들이 어떻게 위치해 있는지. 걷지 않고는 잘 알 수 없는 것을 세세히 살펴 볼 수 있었다.

식사할 비용이 마땅 찮을 때도 많았다. 때때로 점심을 굶기도 하였는데, 꼭 중요한 행사나 만남들이 밤에 있다 보니 저녁엔 넉넉히 먹을 수 있어서 별 달리 배고픔에 깊이 상처받거나 어려워하지는 않았다. 대형 행사가 있어서 부페에 가는 날이면 남은 음식을 챙기기 바쁜가 하면, 이웃들이 음식을 만들거나 하면 일손도 도와주어서 나눠 먹기도 하였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샴푸나 비누, 기타 물건들은 재활용품 가게, 또는 가까운 이웃들과 물건들을 나눠쓰고 돌려 사용하였다. 쓰레기 문제로 골머리 앓는데, 사용하다가 싫증나서 버리려는 것들을 싸게 사서 요긴하게 사용하는 재미도 좋았다. 꼭 새 것만을 사서 사용해야만 직성이 풀리거나 사치품을 사서 허영스런 자신을 뽐내는 잘못된 풍토도 고쳐가야하지 않을까?

그러다 보니 옷은 대체로 바자회 행사에서 나온 물건이나 선배들이 물려준 옷, 친구들이 준 선물등으로 입게 되었고, 신발, 악세서리 등 여러 가지 소품은 그렇게 해서 받은 것, 또는 선물 등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하루 1달러 수익이 없다고 해서 모두 거리에서 낙엽처럼 뒹굴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옛날 말이다. 요즘은 대학 석박사 졸업하고도 한 달 50-60만원으로 생활하는 이도 많다. 졸업장 때려치우고 이꼴 저꼴도 보기 싫어서 도서관에 박혀서 사는 이들도 많다. 도서관에 드나들면 학구적 분위기에 압도되어 주눅이 들 판이다.

많은 청년들은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없는 환경에서 거리를 방황하거나 푼돈이라도 모아서 허한 마음 달랠 길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불안정한 미래를 타개할만한 자구책들을 찾기 위해서 도서관과 쉴만한 공간을 찾거나, 아예 이도저도 희망을 못보게 되니 적은 돈으로 세상 만사 구경하러 여행을 훌쩍 떠나 한국 땅에 거리를 두기도 한다.

겨울 방학 기간, "캄보디아 씨엠립에 갔더니 한국 대학생들에 떠밀려 흘러다니는 것 같더라야. 동남아시아 여행지 가면 한국 대학생들이 제일 많아 보여"라고 말하는 것도 위와 일맥 상통하는 말이다. 이왕이면 값싼 비용을 들여서 좀 더 다양한 것을 경험하자는 새로운 계층, 신빈민들의 '본전뽑기(?)'를 위한 자구책은 아닐까 싶다.

또는 만화방, PC방, 찜질방 등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약간의 돈을 벌면서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암담한 미래, '일단 먹고 살아야한다'는 생각에 이도 저도 가릴 것도 없이 '당장에 필요한 것이라도 해결되면 그것만으로 다행이다'라는 생각에 어려운 조건들을 이겨간다.

그나마 나같은 미혼 여성 가장은 당장 가족 부양에 대한 부담감이 적기 때문에 그럭저럭 생활하기 어려움을 극복하기 쉽지만, 아이 교육을 당장 해결해야하는 가장들, 장애인이나 환자를 둔 분들, 특히 억울한 부도와 부당한 아픔, 지난 여름, 태풍 '매미' 피해로 인해 수십년 수고가 물거품이 된 분들, 대구 지하철 사건등 재해로 인해서 어이없게 빈민이 된 분이야말로 얼마나 원통하고 분통 터지며 답답할까?

그들 모두 변화된 환경, 느닷없이 찾아온 빈민으로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빚을 내어서, 겨울 차가운 바닥도 마다하지 않고 불경기 구하기 힘든 직장, 어렵사리 구해서 고단한 하루 하루를 견디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또 다른 한국 사회 신주류이며 나 역시 그들 속 한 사람일뿐이다. 넉넉한 일자리, 자신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들과 인간적 품위들을 훼손당하거나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이 가능하도록 교육, 환경, 여성, 문화,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꾸려 주기를 계미년 마지막 날, 간절히 소망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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