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많은 자동차는 몽땅 내게로 오라"

'때묻은 차 닦던 세차꾼'에서 '사람의 마음을 씻는 글꾼'으로

등록 2003.12.31 18:46수정 2003.12.3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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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나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때로 찌든 마음의 일부를 씻어 내었다. 그리고 동트기 전, 세상이 어둠에 묻힌 시간에는‘때 낀 자동차’를 열심히 닦았다. 세상의 일부를 씻는 마음으로‘죄 많은 자동차들’에 매달려 비지땀을 쏟았다.

내가 닦았던 차 중에‘차떼기’에 가담한 흉악범은 없었겠지만, 대부분 주인들과 손을 잡고, 오염한 세상을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온갖 때를 묻혀 온다. 그래서 보통은 걸레와 털이게만 사용하다가 아주 지저분한 차들을 만나면, 물 칠까지 하는 수고가 따랐다. 좀 더 심각한 차들은 겉을 지나 내부까지 손을 대 청소를 해야 했다.

하지만 때묻은 차들이‘삐까번쩍’한 모습으로 탈바꿈될 때, 나름대로 보람이 있었다. 가끔씩은 기막히게 잘 닦인 차들을 보며 스스로 도취되어 감탄하기도 했다.

“파리도 미끄러지겠네. 좋았어”

차 한 대가 말끔한 모습으로 바뀔 때마다 조그만 성취감도 맛보았다. 경비 아저씨들과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은 안쓰러운 눈빛으로“빨리 취직해야지”하고 걱정해 주셨지만, 나는 “이게 제 직업인데요” 했다. 그리고 어느 곳에 직업을 소개할 때도 거리낌없이‘세차 맨’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솔직히 아침에 말쑥한 차림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없진 않았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서, 차가 잘 닦이지 않아 애를 먹는다. 그래서 요즘에는 새벽에 한번 나갔다가 기온이 올라간 오후에 다시 가서 마무리를 지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탓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왕이면 깨끗하게 해 놔야 마음이 편해서다.

새벽에 혼자서 차를 닦는 일은 고독한 작업이다. 하지만, 그 고독 속에서 가끔씩 좋은 생각이나 영감을 얻곤 한다. 자신과 대화하며, 또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하며 그 고독한 시간을 풍성하게 채울 수 있게 되었다. 고독이 고통스러운 단계를 지나, 그것을 잘 요리하는 비결을 터득하게 된 게다.

올 1월부터 마음에 쌓인 생각들을 <오마이뉴스>에 기록하는 작업은, 내 마음을 쓸고 닦고 조이는 기회가 되었다. 무엇보다 무질서해진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산만해진 마음에 교통 정리를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다른 사람처럼 되려고 안간힘을 쓰려던 내가 조금씩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가게 된 게다.

마음에 쌓인 생각들을 끌어내 기록하면서, ‘글’에도 에너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진실한 글’에서 오그라지고 패인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만났다.‘글’과 친해지기 전까지 기록하는 일은 머리에서 쩍쩍 소리가 나게 했지만, 이제는 ‘글쓰기’가 즐거워지고 있다. 올해, 나는 ‘글쓰기’를 사랑하게 되었다.

‘기사’로, ‘글’로 말을 대신하는 글잡이 고수가 되려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사람을 살리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꿈을 갖는다. 2003년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2004년은 차를 닦는 ‘세차 꾼’에서 때묻은 사람의 마음과 세상을 닦아내는 ‘글 꾼’으로 자라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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