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 외교, 삼학사의 절개를 기억하라

삼학사의 혼 서린 '현절사'를 찾은 남사모

등록 2004.01.07 16:41수정 2004.01.0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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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으로 파병 현지 장소에 무장세력이 모인다는 소식이 들린다. 한국 청년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파병외교. 지금으로부터 360여 년 전 병자호란 당시 삼학사(三學士)에게 파병 찬반 여부를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a 현절사의 유래를 듣는 남사모 회원들

현절사의 유래를 듣는 남사모 회원들 ⓒ 김정삼

지난해 12월 28일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 '현절사(顯節祠)' 앞마당. 30여 명의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모임'(이하 남사모) 회원들이 전보삼(만해기념관 관장) 회장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남한산성에서 45일간의 항전을 끝으로, 인조 임금은 1637년 1월 지금의 서울시 송파구 삼전동에서 청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이마를 땅에 찧는 치욕적인 항복을 했지요.

당시 청태종은 조선에 굴욕적인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명나라와의 모든 외교 관계를 끊고 청나라와 군신 관계를 맺어라, 성을 개축하거나 신축하지 말고 군비 증강을 일체 하지 말아라, 청나라와 끝까지 항전을 주장한 삼학사 홍익한, 윤집, 오달제를 청나라에 보낼 것 등입니다. 이 굴욕적인 조약에 따라 삼학사는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 끌려가 안타까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남한산성에 있는 현절사는 이들 삼학사의 위패를 모신 사당. 사당 한복판에는 삼학사의 절개를 상징하듯 10여m 곧게 자란 한 그루 소나무가 남사모 회원들에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힘없는 민족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습니다. 인조는 타국에서 충신들이 죽임을 당하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청에 한국이 지금 아무런 말도 못하며 파병을 수락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 회장은 또 "병자호란이 끝난 뒤에도 청나라의 눈치를 보느라 삼학사를 기리는 사당조차 짓지 못했다. 인조, 효종, 현종을 거쳐 거의 반 백년이 지난 숙종 14년 1688년에 가서야 이곳 현절사를 지었다"라며 "이것조차도 청나라와의 한판 싸움을 각오하고 남한산성의 본성과 외성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마친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a 현절사 마당에 곧게 솟은 소나무

현절사 마당에 곧게 솟은 소나무 ⓒ 김정삼

당시 숙종은 우암 송시열이 쓴 삼학사 전기(三學士專) 서문을 직접 쓰며 삼학사의 절개를 기렸다고 한다. 전기 서문에는 "조선 선비들이여, 현절사에 와서 삼학사의 기개를 배우고 큰절하지 않겠는가?"라고 친필이 적혀 있다.

남사모 회원들은 "당시 이곳은 선비정신의 메카였고 실제로 조선 팔도에 많은 선비들이 현절사를 참배했다. 선비정신은 '옳은 일을 위해서 대쪽같은 절개를 지키는 것 아니냐'며 미국의 이라크 무력 침공의 대리전 역할을 수행할 현재 정부의 파병 방침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직도 삼학사의 결사 항전 주장에 '실리와 명분 사이의 어떤 선택이 옳았느냐'는 역사가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하지만 이때부터 청과 맺은 군신관계로 인한 굴욕외교의 상처는 깊었다. '조선에 대한 종주국 권한을 포기하라'는 주장이 제기된 1894년 청·일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250여년간 계속됐기 때문이다.


수양산에서 내린 물이 이제의 피눈물 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여흘여흘 우는 뜻은,
이대도록 나라 위한 충절을 못내 슬퍼함이라.
주욕신사니 내 먼저 죽어져서,
혼백이 되어 고국에 돌아감이 나의 원이러니,
어허! 오랑캐의 티끌이 해를 가림을 차마 어이 보리요.


삼학사 중 한 분인 홍익한이 처형을 앞두고 쓴, 자주정신을 엿볼 수 있는 시이다. 민족의 자주성이 유린당한 지난 역사를 돌이켜, 정부는 삼학사 선비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주외교를 펼친다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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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취미활동으로 등산, 명상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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