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그 리포트, 그들만의 리그

졸업특집 포토 에세이(1)

등록 2004.02.10 11:49수정 2004.02.1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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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긴 방학의 끝인 개학식. 장롱 속에서 교복을 찾아 입고 학교에 간다. 이제 교복 입을 날은 오늘을 제하고는 하루뿐이다. 수능 시험날도 교복을 입고 시험을 보러 갔을 만큼 내겐 너무도 편한 교복. 방학 동안 매일 사복을 입어서인지 교복이 어색할지언정 오늘은 입어본다.

우리 학교 교복은 너무 촌스러워, 마음 설레게 하는 여학생이라도 지나갈 때면 나는 절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익숙한 그대와 이별을 선언해야 할 때이므로 참고 입어준다. 미운 정 고운 정의 산물이 아니더냐.

명색이 개학식이라고 교실에 갔더니, 웬걸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나마 온 아이들 중에서 보면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적었다. 그네들에게 다시 교복을 찾아 입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일까.

아이들도 많이 나타나지 않았고, 그들 중 교복 입은 아이들이 적다는 점은 분명 아쉬운 점이다. 지나간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이 절로 통탄할 노릇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 추억 운운하며 지나간 재미를 추구하기보단 새롭게 펼쳐질 세상의 재미에 매료되는 계절이라는 것을 나 역시도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우리의 즐거웠을 때를 추억해야하며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명색이 우리 반 전문 기자(?)로서, 그 허접한 화질의 카메라 폰 사진으로 우리네의 추억을 담아왔던 내가 침묵한다면 나 스스로도 아쉬운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메라 폰에 담았던 학창시절의 모습들을 파일을 열 듯 다시 열어보고 싶다.

치열했던 여름부터 수능시험을 치르던 냉혹한 겨울까지, 어떨 때는 청량감을 주었고 어떤 때는 따스함을 주었던 우리의 모습, 우리네의 사진을 이제 다시 한번 보듬어 본다(졸업특집 기사는 기획 측면에서 사진과 스토리는 있었으되 당시의 사정상 기사화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위주로, 2부작으로 구성됩니다).


축구에 죽고 살았던 철없는 치들, 그들만의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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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훈

남자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있어 축구는 대단히 인기가 높은 스포츠였다.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축구 이야기로 가까워 질 때가 많았다. 또한 먼지투성이인 운동장에서 공과 함께 뒹굴다 보면 쉽게 농을 던질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축구에 대한 관심사는 우리가 일상에서 나누던 대화 속에서 꼭 축구이야기 한 두 개쯤은 있었다는 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야 어제 지단이 쏜 슛 봤어? 와! 이건 정말 예술이야.”
“당연히 봤지. 어떻게 코너킥 올린 것을 그대로 슛으로 꽂아 넣는지 역시 지단이 최고야.”
“근데 지단 인제 얼마 안 있으면 은퇴한다더라. 아쉬워라.”
“너무 아쉬워만 하지 마. 이따가 체육시간에 내가 지단이가 한 거 그대로 해 줄게. 난 서단.”
“웃기고 있네. 그러다 다리 부러질라.”

그런데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우리에게도 눈과 발이 묶여야(?)했던 때가 있었다. 수능시험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중계해 주던 한일전도 보지 못했으며, 비록 황무지에 가까운 운동장에서였지만 즐겁기만 했던 이른바 ‘동네축구’도 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바른말로 공식 석상에서 밝히는 우리네의 축구 수난사일 뿐이지, 축구의 재미를 생각할 때 아주 가끔‘몰래 축구’를 우리식대로 즐기곤 했다(이것은 최초 공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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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훈

무더웠던 여름방학, 아주 가끔 우리는 몰래 전화를 해서 엄마의 눈을 피해, 학원과 과외를 잠시 피해, 독서실을 피해 아파트 촌 위에 있던 풋살 장에서 만났다.

그것은 말 그대로 일탈 그 자체였다. 얼굴이 새카맣게 타버려도 즐겁기만 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몰래 축구’를 할 때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오히려 정교히 플레이를 연마했기 때문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의 축구실력과 단합은 좋아졌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웠던 것은 땀을 뻘뻘 흘리고, 다리에 쥐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독서실에 와서 공부를 해야 했다는 점이었다.

참으로 미련한 짓임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매력이 있던 일이었다. 그러므로 감내할 수 있었다. 축구만 할 수 있었다면 상관없었다. 이제 와서야 밝히지만 부모님께서 당시 아셨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방학 때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고, 그 다음부터 우리는 교실 밖을 아예 나갈 수가 없었다. 개학과 더불어 담임선생님께서 야간 자율학습(이하 야자)시간의 전면 확대와 더불어 반 전체 인원이 야자시간에 참여할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축구를 할 수 있는 경로는 모두 차단된 상태였다. 체육시간마저도 수험생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자율학습이라는 명목으로.

그러나 운동장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어떤 아이의 제안에 의해서 기묘한 스포츠가 탄생하게 된다. 그것은 이른바 ‘교실 뒤 족구’ 이 스포츠의 특색은 아주 좁은 공간에서도 여럿이서(최대 인원 4명)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점이다. 점심시간, 쉬는 시간, 야자 저녁시간 그렇게 우리는 틈이 날 때마다 교실 뒤 좁은 공간에서 걸상 두개를 붙여 네트 삼아서 족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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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훈

공간과 시간의 한계가 명확했지만 그 재미는 탁월했다. 빨리빨리 게임을 해야 여럿이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박진감은 엄청났으며, 그 작은 공간을 벗어나는 경우 실점에 해당되었기 때문에 공을 다루는 솜씨는 섬세함이 스며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 게임의 규칙 중 하나는 ‘이기는 팀은 남고 지는 팀은 나가기’였기 때문에 잘하는 아이들만 계속 남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곤 했다. 이에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나누자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왔다. 우리에겐, 분명 보잘 것 없을 교실 뒤 족구가 ‘리그’라 부를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실컷 즐겁기는 했건만 그 대가는 매우 쓰라린 것이었다. 가끔 유리창을 깼기 때문에 학생부 선생님들께 단체로 얻어맞기도 했고, 교실공기를 악화시켜 자주 환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감기유행을 자초하기도 했다.

챔피언스 리그보다 재밌던 그들만의 리그는 어디로 갔나

생각해 보건데 우리의 리그는 챔피언스 리그보다 재미가 있었다. 보는 것과 직접 해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듯이 우리네의 리그는 적어도 당사자들에게 있어 챔피언스 리그보다 분명 한수 위였다.

그런데 그토록 재미가 있었던 리그가 이제는 없는 듯하다. 이제는 시간도 많고 별다른 제약이 없었기에 그때의 분위기를 쇄신해 보려고 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좀더 넓은 공간에서 보다 많은, 새로운 인원이 공을 찬다고 해도, 무언가 허전한 감이 없잖아 있는 것이다.

이에 가끔 아쉬운 감이 들 때가 있어 친구들에게 학교에 숨어들어가 족구를 하자는 제안을 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친구들은 바쁘다. 제각기 할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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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훈

‘수능 쇼크(?)’로 인해서 재수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은 우리 반. 서로서로 학원 시험을 보러, 2005학년도 수능 맞이 공부를 하느라고 바쁘다. 게다가 학교는 이제 개학을 했으니 어린 치들을 보아서라도 숨어들어 족구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졸업을 할 것이고 우리는 학교를 떠날 것이다.

챔피언스 리그보다 재미가 있었던 우리의 리그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추억이 소중하다고 많은 이들이 읊조리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도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터넷신문 하니리포터와 아크로넷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인터넷신문 하니리포터와 아크로넷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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