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고 10분이 지옥같이 길어요"

아줌마의 자녀 동반 유학 일기(5)

등록 2004.03.05 05:43수정 2004.03.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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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처음 등교하던 날의 예근이의 그 낭패스러웠던 얼굴은 지금도 생생하다. 미국에 왔을 때 큰 아이 예근이는 중학교 2학년 나이였다.

"엄마, 오늘만 엄마 차로 데려다 주세요. 내일부터 스쿨버스타고 다닐 테니까. 오늘은 첫날이고 학교에 도착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엄마, 오늘만.”

예근이가 약해지고 사정하는 말투가 될수록 나는 냉정해졌다.

예근이가 다니던 학교에는 2년 전에 한국 학생이 한명이 다닌 적이 있었지만 당시는(2001년) 예근이가 유일한 한국 학생이라고 했다. 허허벌판으로 내던져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미국학교생활을 시작했던 예근이는 다행히도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습관적으로 아이들 얼굴표정부터 살폈고 아이들이 말하는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에도 귀를 곤두세웠다.

그러나 그런 관심도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들의 입학수속을 무사히 마치고나니 나의 학교생활이 시작이 되었고, 그 때부터는 고백컨대 아이들의 내면의 어려움까지 들여다 볼 여유가 나에게 없었다.

언어장벽, 그리고 친구장벽


a 예근이가 다녔던 중학교

예근이가 다녔던 중학교 ⓒ 송현근

예근이가 학교 생활을 시작한 지 한달 조금 넘었을 무렵이었다. 공부방에서 책을 보다가 하도 주변이 조용해서 거실과 부엌을 들여다보았다. 예근이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둘째 현근이가 학교에서 오려면 한 시간 정도는 더 있어야 되고, 스쿨버스 배차 간격 때문에 예근이가 먼저 집에 늘 와 있곤 했다.

보통 예근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엌에서 냉장고 여닫는 소리, 무언가 열심히 부스럭거리면서 먹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오늘은 완전히 정적이다. 침대 있는 방을 (방이 두개가 있었는데 방하나는 책상으로 방을 빙 돌려서 공부방으로 만들고 다른 방하나는 침대 매트리스만을 들여 놓아서 잠을 잘 때는 같은 공간에서 세 식구가 잠을 잘 수 있도록 배치해 놓았었다) 슬며시 열어 보았더니 예근이가 손을 이마에 올려놓고 매트리스 위에 누워서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누워 있다. 가려진 눈가 쪽으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이가 문을 꽉 닫고 혼자 울고 있다니 가슴이 철렁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엄마, 학교생활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 언제인줄 아세요. 공부 시간도 아니고 바로 다른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고 좋아하는 점심시간이에요. 점심을 먹고 난 이후 10분 정도의 시간이 저에게는 지옥과도 같이 길고 긴 시간이에요. 공부시간은 선생님을 향해 앉아서 공부하면 되는데 점심시간이 돼서 서로 가까운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웃고 말하고 즐겁게 지낼 때 정작 저는 소속해 있을 공간이 없어요.

설령 도우미(같이 수업을 듣는 아이들 중에서 세 명의 학생들이 예근이의 학교생활을 돕도록 되어 있었다) 역할을 맡은 아이들이 같이 카페테리아에 가서 점심을 먹자고 해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고 어쩌다 용기를 내서 말 한마디 하면 상대방이 알아듣지를 못하고 그럴 때면 다시 위축 되고.

그래서 점심을 먹고 나면 저는 ESL 선생님이 있는 교실에 가서 선생님하고 이야기해요. 선생님은 멕시칸 선생님이신데도 원어민들과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세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 와서 사셨대요. 그분은 제가 왜 점심시간마다 이 교실을 찾아오는지 잘 아시는 것 같았어요. 말도 많이 걸어 주시고 용기도 북돋아 주시고 하루가 다르게 영어 실력이 좋아지고 있다고 위로해 주시고요."

그러면서 예근이가 또 운다.

가슴이 쿡쿡 쑤셔오면서 아팠다. 아이의 외로움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져왔다. 아이가 이 정도로 힘든 줄 몰랐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결과만을 가지고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으려니 했었다. 아, 얼마나 무심한 엄마인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내 몫 챙기느라 늘 허우적거리면서 산 세월이었다. 예근이는 항상 바쁘다는 엄마의 생활 속에서 비켜서 있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속엣말을 나한테 털어 놓으면서 자란 아이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초경을 시작했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유별나게 성숙하다는 말을 많이 듣던 아이라 한국에서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언니처럼 늘 들어주는 역할을 해왔지, 자기의 아픔을 드러내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던 아이였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친구들이 늘 곁에 있었고 내 나라 말로 표현하니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달랐다. 검정머리, 누런 피부, 아시아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에서 온 아이, 게다가 언어 소통도 되지 않는 아이를 누가 딱히 알뜰살뜰 이해하고 챙겨서 친구하겠다고 하겠는가. 자기네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혹은 어쩌다 호기심으로 관심을 갖고 말을 시켜보면 이상한 액센트로 겨우 몇 마디 하는 이 아이에게 주변의 아이들은 더 이상 시선이 머무르지 않았다.

당시 예근이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고,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억을 갖고 있었던 것이 그래도 나에게 다행이었다. 오래전의 이야기다.

크레파스로 그린 태극기

1996년도에 미국의 필라델피아 쪽으로 배낭여행을 했었을 때 미국의 한 교포의 집에 초대 받아서 들른 적이 있었다. 그분은 미국에 와서 정착한지가 30년도 훨씬 넘었다. 이미 대학생이 된 두 아들을 두고 있었다. 그들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미국에서 대학생이 되었으니 한국이라는 나라는 부모님의 나라 그 이상의 의미가 그들에게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기대하지 않았었다.

음악을 한다는 아들중의 한명의 방을 구경하게 되었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악기들 틈 사이에 크레파스로 서투르게 그려진 태극기가 벽에 걸려 있는 모습을 보았었다. 지금도 그 당시의 신선한 충격과 감격을 잊지 못한다.

더듬거리는 아들들의 한국어 솜씨를 대견스럽게 바라보던 아버지가 간간히 옆에서 보충해주던 말이 떠올랐다.

"유치원,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해도 흑인아이, 백인아이, 동양계 아이 할 것 없이 두루두루 잘 어울려서 논다. 백인친구도 내 친구, 흑인 친구도 내 친구, 모두가 내 친구다. 중학교 올라가면 백인친구의 절반가량 정도가 떨어져 나간다. 고등학교 올라가면 삼분의 일정도가 남고 대학교 올라가면 주변에 가까운 친구의 이름으로 남아 있는 백인 친구는 거의 없다."

결국 아시아권 학생들은 아시아권 학생들끼리, 백인은 백인들끼리 모이게 되고 각자의 그룹 속에 소속 되어있을 때 편하다는 말을 듣고 묘한 슬픔과 분노를 느낀 적이 있었다.

부모의 모국어를 구사 하지 못하는 교포 2세, 3세들은 미국 아이들로부터는 자기 모국어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라고 은근히 경멸을 받고 동시에 한국계 학생들끼리 모일 때는 한국어를 알지 못해서 의사소통이 안 되고 따라서 이쪽저쪽도 확실하게 소속 되지 못하는 도깨비 같은 인생을 살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토요일이면 미국 아이들은 가족시간을 즐기며 한가하게 보낼 때 매주 토요일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토요학교에 나가서 한글을 익히라는 부모님을 두 명의 아들은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감사하다고 그들은 고백했다.

그렇다. 영어 습득이론에도 있다. 퓨버티(puberty: 사춘기: 남자13~14세, 여자 11~12세)가 지나고 나면 영어(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한다. 퓨버티 이후가 되면 상대적으로 퓨버티 이전에 비해서 영어를 습득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론적인 배경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미국인과 외국어를 대하는 태도(attitude)와 그룹 사이의 벽(in-group vs out-group)을 들 수 있다.

어렸을 때는 강하게 의식하지 않던 인종(races), 문화, 사람들 간의 계층, 민족 집단 (ethnic group), 언어 그 자체에 관하여 갖고 있는 태도 (attitude)의 표출 방법이 커 갈수록 부정적으로 단단하게 굳어져 가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퓨버티 이후에는 자기 그룹 속(in-group)에 소속하려는 욕구가 강해지고 다른 문화권과 언어를 갖고 있는 사람들(out-group)과의 벽이 높아진다. 에고(ego, 자아)가 높아지면서 상대의 그룹에게 폐쇄적으로 되어진다. 당연히 언어습득 환경에 노출되어 질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12세-14세 이후에는 언어를 익히는 속도가 어렸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론이다.

예근이가 한국에서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왔으니 퓨버티를 살짝 넘은 경계에 와 있다고 볼 수가 있었다. 이때까지 예근이, 현근이, 나 세 사람 중에서 예근이가 가장 힘들고 어두운 통로를 통과하고 있다는 것을 크게 생각하지 못했었다.

영어 학습의 이론과 미국학교에서의 현장의 경험을 얻으러 이 먼 곳까지 유학 온 내가 그 이론의 실제의 예가 현실 속에서 그것도 나의 딸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었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예근이는 언어장벽과 친구의 장벽을 혼자서 넘고 있었다. 어른인 나는 일부분 포기하고 접고 들어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편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생활에 적응해 들어가는 것이 정신적으로 늘 불안하고 쫒기는 생활이었는데 그 예민한 나이에 예근이는 오죽하랴 싶었다.

예근이는 안간힘으로 돛대를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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