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 이응노화백 출생지 홍성 아니라 '예산'"

호적에 덕산면 낙상리 출생 기록… 홍성 출생설 근거 없어

등록 2004.03.09 10:29수정 2004.03.1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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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응노 화백의 제적부에 덕산면 낙상리 24번지에서 출생했다는 기록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붉은 선안)

이응노 화백의 제적부에 덕산면 낙상리 24번지에서 출생했다는 기록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붉은 선안) ⓒ 장선애

홍성 출생으로 알려진 세계적인 거장 고암 이응노 화백의 고향이 예산군 덕산면으로 확인됐다. 이응노 화백은 수덕여관과 암각화로 예산과의 인연이 깊지만 화백의 고향은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로 알려져 있었다.

3일 덕산면사무소에 보관된 제적부를 확인한 결과 고암의 출생지가 '예산군 덕산면 낙상리 24번지'로 정확히 기재돼 있었다. 고암 생전인 1989년 이전에는 전시회 도록과 출판물들에서 고향을 예산으로 기록하다가 사후에 어떤 연유에서인지 홍성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예산군에서조차도 이런 우를 범하고 있다. 1987년에 예산군이 발간한 <예산군지> 567쪽에 "고암 이응로는 덕산에서 출생, 그 곳에서 살다 일본에 건너가 화업을 쌓은…"으로 명기했으나 2001년 발간한 <예산군지> 하권 228쪽에는 "고암 이응로는 이근상의 5남1녀 중 넷째 아들로 1904년 예산군 접경인 홍성 땅에서 출생하였다…"로 출생지를 바꿔 놓았다. 호적 기록 한번 확인해 보지 않고 내용을 바꾼 것이다. 또한 예산문화원이 1997년에 발간한 '예산의 인물'에도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에서 이근상의 넷째 아들로 출생…"이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홍성군은 지난해 고암청소년미술실기대회를 여는 등 기념사업에 박차를 가하면서 군의 홍보에도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올해 고암 탄생 100주기를 맞아 홍성군은 화백의 고향임을 내세워 대전시와 고암미술관 건립 경쟁을 벌이며 '세계적인 거장을 낳은 예향의 고장'임을 각인시켰다. 홍성에서는 고암기념사업을 한성준 춤전시관과 만해 한용운 사업, 백야 김좌진의 정신을 기리는 인물 정신 역사의 계보를 잇는 사업으로 기획하면서 깊이 있는 예향이라는 이미지를 고양시키고 있다.

a 고암 이응노 화백의 생가. 옛집은 헐리고 현대식 주택이 새로 들어서 있다.

고암 이응노 화백의 생가. 옛집은 헐리고 현대식 주택이 새로 들어서 있다. ⓒ 장선애

이에 따라 고암 이응노에 관한 언론 보도와 자료들에는 언제나 '한국을 빛낸 홍성 출신 거장 고암 이응노'라는 수식어가 따르게 된다. 결국 예산군은 추사 김정희의 맥을 잇는 걸출한 미술가를 배출해 놓고도 홍성군에 내줬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미술협회 예산군지부 회원인 노재준(예산고 교사)씨가 고암 작품 전시회 도록과 관련 책자를 살펴보다가 화백이 작고하던 해인 1989년을 기점으로 예산으로 기록되던 고향이 홍성으로 바뀐 데 의문을 품으면서 시작됐다. 노씨는 "우리 군의 무관심으로 세계적인 화가인 고암 선생님의 고향이 잘못 표기되어선 안된다"며 이에 대한 취재를 요청해 확인까지 이르렀다.

이응노 화백의 작품에 심취해 30여년 동안 작품을 수집하고 소장해 오다 2001년 희사한 홍세영(58·예산읍 예산리)씨는 "동백림 사건 당시, 선생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피해자가 되던 시절에는 홍성과 예산 모두가 "우리 고장 사람이 아니다"며 외면하다가 이제 그 가치가 높아지니까 싸우는 꼴이 될까봐 씁쓸하지만 고향을 바로잡는 작업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a 고암이 구입해 부인이었던 고 박귀희 여사가 운영하던 수덕여관. 고암이 1969년 동백림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후 요양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좌) 수덕여관 뜰에 있는 고암의 문자추상 암각화(우)

고암이 구입해 부인이었던 고 박귀희 여사가 운영하던 수덕여관. 고암이 1969년 동백림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후 요양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좌) 수덕여관 뜰에 있는 고암의 문자추상 암각화(우) ⓒ 장선애

한편 홍성군은 미술관 유치가 대전시와 이화백의 미망인 박인경(80·이응노미술관장) 여사와의 협약서 체결로 어려워지자 생가지 복원사업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꾸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고암 생전에는 "예산", 타계 후 "홍성"으로

1967년 동백림 사건 이후 고국 땅을 밟지 못하던 고암 선생이 1989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자신의 작품전시회에 맞춰 고국 방문을 계획했으나 전시회가 열리던 중 끝내 프랑스에서 타계해 안타까움을 샀던 생전 마지막 전시회 '고암 이응로전' 도록 연보에는 "1904년 1월 12일 충남 예산에서 출생"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1976년 계간 미술 창간호에도 고암의 약력을 1904년 충남 예산 생으로 싣고 있다.

그러나 고암 타계 이후 열리는 대부분의 전시회 도록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출생지가 홍성으로 기재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후인 1998년 5월 오원화랑에서 열린 고암전시회 도록은 1989년 호암갤러리전시회 도록 연보를 그대로 따오면서도 출생지만을 예산에서 홍성으로 바꿔 놓았다.

그러나 고암 작고 후 모든 기록물에 출생지가 홍성으로 통일될 때도 예산생으로 발간된 간행물이 있다. 그 중 1995년 발행된 <충남미술사> 15쪽에는 "일찌기 뛰어난 역량을 가졌던 이응노는 1904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해 수덕사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로 기록해 놓았다. 1995년 미술의 해를 맞아 '안견 이후 600년의 충청 미술-향기와 맥' 전시회 도록에는 고암을 "충남 예산 출생"으로 기록하고 있다. 1999년 일민 선생 5주기 특별전 도록에도 "이응노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으며…"로 되어 있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고암 관련 홈페이지와 문서 자료의 대부분이 홍성이 출생지로 돼 있고, 드물게 예산으로 기록해 놓았을 정도다. 이와 관련한 취재를 요청해 온 노재준(미협 회원)씨는 "고암 선생님 생전에 열렸던 전시회의 도록 연보는 직접 보셨을 터이고, 각종 미술 잡지들에서도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직접 확인했을 텐데 당시 예산으로 기록된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당신 스스로 바로잡았을 것"이라며 "우리가 너무 무관심해 미술관은 다른 지역으로 갔지만 고암 선생님의 출생지만큼은 바로잡고 지금이라도 할일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생지 혼돈, 왜 생겼을까
형인 고 이종노씨가 중계리 출생, 와전된듯

고암과 부친 고 이근상씨의 제적부를 확인하고, 고암의 생가가 있는 덕산 낙상리를 방문해 증언을 채집한 결과 월산이라는 낮은 산 하나를 두고 이웃해 있는 홍북 중계리에서 이사를 온 고암의 가족은 이 두 마을을 오가며 생활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제적부에 따르면 고암의 바로 윗 형인 고 이종노씨가 홍북 중계리 출생, 고암은 덕산 낙상리 출생으로 기록돼 있다. 중계리와 낙상리는 행정 구역은 홍성과 예산으로 나뉘지만 생활권이 같은 이웃 마을이다. 고암과 형은 10살 터울이므로 그 사이에 낙상리로 이사를 해 고암이 태어났으며 고암은 유년 시절을 이웃 마을 중계리를 오가며 지내게 된다.

형이 중계리에서 태어나고 생활권이 같았기 때문에 고암의 출생지가 중계리로 잘못 구전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암의 부친은 낙상리 24번지로 이사를 한 뒤 고암과 동생 익노씨를 낳고 이 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고암은 그 후 결혼을 한 뒤 형 종노씨로부터 분가해 사천리 17-1번지로 전적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고암의 생가에는 동생 익노씨의 부인이 기거하고 있다. 본채 가옥은 현대식 건물로 새로 지어 원형 보존에 대한 아쉬움이 있으나 뒷편 대나무 숲과 아랫채 등은 예전 모습대로 남아있다.

이 마을 인대식(67) 이장은 "안그래도 <대전일보>에 기사가 크게 났는데 홍성이 고향이라고 거기서 취재한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응노 화백의 조카 이두세가 동갑내기 친구이고 어른들로부터 그 집안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친구가 서울로 간 뒤 소식이 끊겨 안타까운데 분명히 이응노 화백은 예산 사람이다"라고 증언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에도 실려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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