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아마도 나와 타인, 동과 서, 그리고 더 나아가 보수와 진보 같은 '나름대로의 금'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은 어떤 면에서는 나를 우위에 놓거나 나를 긍정에만 두고서 생각하는 자가 당착일 수 있다.
사실 그런 경계들은 공간이나 장소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실존적인 의미를 띠기 때문에 구체적인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런 구분들은 무가치한 것일 수 있다. 이는 새가 공기 안에만 있다거나, 물고기가 공기 밖에만 있다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공간이나 장소적 규정을 통해 아무리 안과 밖을 나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어떤 부분에서 볼 때 필요조건은 될망정 충분조건은 결코 되지 못한다. 한 개인이 공간이나 장소의 제한 속에서 구체적인 행위를 가질 때에만, 그 경계가 가져다 주는 안과 밖의 구별이 비로소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들을 깊게 생각한다면 <경계인의 사색>(송두율·한겨례신문사)이란 책을 펴낸 바 있는, 현재 한국사회의 감옥 속에 갇혀 있는, 송두율씨는 결코 경계인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본래, 그 '경계인'이라는 단어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국경 지방에 출몰하는 마적을 의미했으나, 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원주민과 백인 이주민 사이를 넘나들며 두 세계를 소통시키던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 보더 라이더(border rider)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의미로 정착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명명하면서, 반세기 넘게 갈라져 사는 조국의 남과 북이라는 현실의 벽을 허물고자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경계인의 사색>, 이 책은 옳다고만 여겨왔던 나의 보수주의적인 생각들을 바로 잡아 비판적 정론을 곧추 세워줬던 참다운 경전에 견줄 만했다.
그것은 우선, "북은 실리만 챙기고 언젠가는 돌아설 게 뻔하므로 일방적으로 양보만 해야 되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는 그에 대해 "진정한 통일의 환희를 맛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누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통독 10년을 보내는 현장에서 확인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한 0과 1의 실리적 숫자에 민감한 사람들을 향해, "0과 1 사이에 무수한 가치와 답변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켜주었는데, 그 점도 저자만의 놀라운 갈파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한반도의 유로화를 꿈꾸고 있는 점이 퍽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은 통일 주화 1원의 한 면에는 백두산을, 다른 한 면에는 한라산을 양각하자는 주장이었다. 물론 저자는 그 일에 대해 "상상해 본다"라고 잘라 말했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하는 게 문화적인 면에서 통일한국을 한 발 앞당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런 점들보다 더 적극적인 남한과 북한의 경계 허물기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국가 연합'의 차이를 해소하려는 데서 엿볼 수 있었다. 저자는 그 관계에 대해 룸메이트와 연합주택에 사는 두 사람의 생활 방식에 비유해 주고 있었는데, "번지가 같은 주택에서 방만 따로 사용하는 룸메이트는 잘하면 아기자기하게 살수도 있지만, 함께 사는 데서 오는 갈등의 소지도 많다"고 하면서, 우선은 남과 북이 연합주택의 삶을 가꾸어 가는 게 급선무임을 시사해 주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현상학적 분석과 비유에 대해 저자는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의 이론에서 끌어 온 것이라고 밝히면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공간에 대해 레비나스는 "단순하게 바로 이곳을 의미하기보다는 '타자에 열린 친절함의 장소'로서 그 어떤 곳이라고 주장했다"라고 적극적인 설명까지 덧붙여 주고 있었다.
또한 "동은 동, 서는 서, 그들은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키플리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면서, 그 주장은 식민주의자의 눈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보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였다고 단정적으로 말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생각들을 국내로 끌어들이는 모습들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남한 내 보수주의적 시각에 찌든 자들을 향한 경종과도 같았다.
"해방 공간의 혼란 속에서 일제 식민주의자들의 앞잡이로 부귀영화를 누리던 친일파는 재빨리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해방자'이자 자유세계의 수호자 미국을 찬양하면서 역사교과서에서 부끄러운 그들 자신의 행적을 아예 지우거나 왜곡 날조하고 미화해서 버젓이 교과서 속에 그들 자신을 복권시켰다. … 보수 우익은 분단이라는 현실을 논거로 미국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사회적 동의를 여전히 강요하고 있다."
그렇게 분단시대의 아픔을 몸소 끌어안은 비판적 지성인 송두율씨는 마지막 장에서, 그런 말로 이 책의 마무리를 장식하는데, 그것은 남한 내의 동과 서,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 그리고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경계까지도 허물 수 있는 참다운 식견인 듯 했다.
"동과 서 그리고 남과 북(제3세계와 1세계라는 뜻으로)이 만나면 결국 둘다 변하게 마련이다. 이 때의 문화가 동서 또는 남북이라는 이원론을 완전히 전도시키지 못해도 적어도 그와 같은 단순한 분류의 이념적 근거를 재평가하는 제3의 장소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동양은 서양이 아니고 서양은 또 동양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즉相卽의 세계이며, 이 때문에 동양은 서양 속으로 들어가고 서양은 또 동양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입相入의 세계가 성립한다.… 이를 확충해 나가는 작업은 남북으로, 영호남으로 갈린 한반도, 나아가 문명충돌로, 자연과 인간의 갈등으로 부대끼는 지구촌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희망의 철학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여, 나는,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 층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이 책을 읽고서, 저자가 얼마나 남과 북의 경계를 허물고자 애를 썼는지를, 그리고 남과 북이 진정으로 상즉과 상입의 세계를 그려나갈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들여다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계인의 사색 - 재독 철학자 송두율의 분단시대 세상읽기
송두율 지음,
한겨레출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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