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집에 돌아온 이후 동섭은 진공 속에 놓인 우주인처럼 불안정했다. 그는 바닥에 똑바로 서서 안정되게 걷고, 먹고 싶었지만 몸 전체가 둥둥 떠다니고 있어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해를 넘기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동섭은 한번씩 전주댁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바늘로 콕콕 찔러대는 것처럼 머리가 아팠고 수시로 얼굴이 뜨거웠을 뿐 아니라 아래 눈꺼풀은 고무줄을 퉁겼다가 놓은 것처럼 지속적으로 떨렸다.
어느 날 전화 연락도 할 수 없는 곳에 갇혀 울부짖는 동규가 동섭에게 나타났다. 나는 미치지 않았어, 멀쩡하다고! 울부짖으며 동규는 창살을 잡고 뒤흔들었다. 그러자 그것이 주문이나 되듯 뒤로 황야가 펼쳐졌다. 어미 이리로부터 버려진 새끼 이리 한 마리가 꼬리를 내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황야에는 먹이가 많지 않았다. 햇빛에 타버려 누렇게 뜬 풀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초식동물들은 이미 황야를 떠나고 없었다. 밤이 되자 새끼 이리는 처음으로 외로움을 알게 되었다. 새끼 이리는 몸 속에 얼굴을 파묻고 누워 있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지면 달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 소리가 황야를 울리고 지나가는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갔다.
얼마 후 새끼 이리는 자신이 버려졌으며 이제 부모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해가 뜨자, 새끼 이리는 스스로 들쥐를 잡아먹었고 이슬을 맞으며 잠이 들었다. 이후 순박했던 새끼이리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구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리는 간혹 만나는 동료들의 농담에 화를 냈고, 나이 많은 이리의 낡은 충고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새끼 이리가 믿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자신뿐이었다. 새끼 이리는 자신의 후각, 튼튼한 이빨과 다리만 믿었다.
얼마가 지났다. 메마른 흙바람이 일던 황량한 초원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풀들이 자라나면서 황야를 떠났던 동물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속에는 새끼 이리를 버린 부모와 형도 섞여 있었다. 한편 황야의 어떤 동물과 싸워도 지지 않을 정도로 강해진 이리는 가족들을 보자 물어뜯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하지만 부모나 형이 없는 상태에 다시 떨어지고 싶지 않았던 이리는 가족들을 맞아들이기로 했다. 이리는 가족들을 위해 좋은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먹이를 가져다주었다.
얼마 후 이리는 자신의 능력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사시사철 풀이 자라고, 많은 동물들이 사는 무성한 숲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짝을 찾은 후 새끼들도 낳게 되었다. 이후 별다른 걱정이 없는 생활이 지속되었다. 날씨는 늘 따사롭고 촉촉했으며, 눈을 뜨면 코앞에 먹잇감이 있었다. 그러면서 이리는 한 번씩 과거를 돌아 보게되었다. 황야에 홀로 버려졌을 때의 기분이 어떤지를 생각했고, 배고픔에 몸을 떨고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달을 보며 울던 때를 떠올렸다. 이슬을 맞아 체온이 내려간 몸을 데우기 위해 황야를 달리고, 몇 일 만에 들쥐를 잡아 게걸스럽게 먹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 땐 참 먹고 싶은 것도 입고 싶은 것도 많았어. 이리는 자신이 정말 대단한 동물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정말 나처럼 용감하고 자신감 있는 이리가 있었을까. 아마 없었을 거야. 어느 날이었다. 누군가 이리에게 이런 말을 속삭였다.
너는 지금 왜 이렇게 한가한 거야? 다른 이리들이 움직이기 전에 일어나 어서 들판을 달려야 해. 먹을 것도 찾고. 그래야만 살 수 있다고. 그러는 동안 이리는 예전처럼 부지런하고 활기차게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리는 예전처럼 자신의 뜻대로 몸을 통제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이리는 다시 달려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드넓은 초원, 거대해진 먹잇감이 눈앞에서 오가고 있었다. 마침내 이리는 자리에 눕고 말았다. 그 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이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리는 과거 자신이 필요해서 불러내었던 주문, 이를테면 자신감이나 환상이 괴물이 되어 조금씩 자신을 먹어치우는 줄 모르고 있었다.
동섭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럼에도 환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동섭을 절망으로 몰아 넣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유전적인 소질이 없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아. 이제 내 차례가 온 거야.
동섭은 매일 막걸리를 마시며 불길한 예감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했다. 한 차례의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심장병의 지배 아래 있는 여동생 숙자를 생각지 않으려 했고, 미친 끝에 산에서 발을 헛디뎌 죽은 동휘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 또한 정신병원에서 날뛰고 있을 동규를 잊으려 했다.
그러나 그런 망상은 술로 인해 잊을 수도 잠으로 극복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얼굴을 쳐들고 금방 달려들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사라지지 않았다. 가상할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는 동섭을 측은하다는 듯, 아니면 조롱하고 싶다는 듯 지켜보고만 있었다. 주인이 한 눈 파는 틈을 타서 고깃덩어리를 훔쳐내려는 개처럼 동섭을 노리고 있었다.
어느 날 동섭은 또 한 차례 영수와 다투었다. 늘상 보는 일이었지만 웬일인지 그 날 동섭은 영수가 아랫방으로 밥상을 들고 가는 것에 화를 벌컥냈다.
"지랄을 하고 자빠졌네."
발끈한 영수가 휙 돌아보더니 마당에 밥상을 내동댕이쳤다.
"이제는 우리가 먹는 밥도 아깝다는 말이군요."
뜻하지 않은 반격에 동섭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서 깨진 그릇조각과 하얀 밥, 반찬들을 쳐다본다. 영수는 아랫방 문을 꽝 닫고 들어가 버린다. 그 모습을 보며 동섭은 이제 태풍이 시작되고 있는 대양에 선 기분이다. 이제 자식에게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모르겠어. 어쩌면 저 놈이 나와 아내를 집안에 가두어 둘 수도, 아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지도 몰라.
그 후 동섭의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는 불덩어리는 복합된 형태를 띠게 되었다. 형제의 불상사, 장차 다가올지 모를 죽음에다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자식 내외가 뒤섞였다. 그래서 지속적인 형태로 머릿속을 떠다니는 죽음의 망상이나 미칠 것 같은 불안 위에 영수 내외의 얼굴이 교대로 나타났다. 이 때 나타난 영수는 동섭이 전혀 본 적이 없는 괴물의 모습을 띠었다. 공룡처럼 생긴 괴물은 동섭을 삼키기 위해 거대한 입을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괴물 옆에는 길고 창처럼 큰 바늘을 든 며느리가 서 있었다. 며느리는 동섭의 몸을 바늘로 찌르며 어서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라고 목탁을 치며, 괴상한 주문을 외웠다.
이런 상상이 밤낮으로 자신을 따라다니자, 동섭은 전주댁에게 제발 어서 이 곳을 떠나자고 애원하게끔 되었다.
"사람이 마음이 약하면 별 생각이 다 드는 거여. 좀 시간이 지나먼 좋아질 텐께 지다려 봅시다."
전주댁도 이제 벼랑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행여나 하고 기다린 세월이, 좀 기다려 보면 좋아지겠지 생각한 시간이 벌써 달을 넘기고 해를 넘기고 있었다.
"그러다 나 죽고 난 뒤에 나갈 거여?"
"애들겉이 왜 이래, 이 남자가!"
전주댁의 신경질에 하는 수 없이 동섭은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다음 날 저녁 무렵이다. 명자 내외가 탄 트럭이 한씨가의 마당에 멎었다.
"그래, 어서들 오게. 이번에도 쌀 실러 왔는가?"
두 사람을 본 동섭은 원군을 만난 계백처럼 반가웠다.
"예, 쌀은 차에 다 실었고 가기만 하면 됩니다."
사위의 말에 동섭은 몇 가마니나 되느냐, 가게에 가져가면 얼마에 파느냐고 물었다. 사위는 즉시 스물 다섯 가마니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런 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동섭은 사위에게 이사를 가도록 도와달라고 어떻게 말해야 하나 망설였다. 과연 말을 해도 될까, 나중에 흉이 되는 것은 아닐까. 동섭이 우물거리는 동안 명자와 전주댁이 심각한 표정으로 마루에 걸터앉았다.
"인자 영수는 집을 떠날 가망이 없어요. 저번 일도 있고요."
흥분한 명자의 말에 전주댁의 힘없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도 부모가 되어 가지고 차마 자식을 두고 떠날 수가 없어서 안 그러냐?"
"그런 놈은 자식도 아이라. 부모 애 먹이러 난 자식이, 자식이요?"
"그래, 느그 아부지도 영 심(힘)이든가 그런 소리를 헌다. 집이고 논이고 뭐고 그냥 놔두고 떠나자고 말이여."
"그래요. 나가서 살다가 또 돌아와서 농사지으면 되잖아요."
"근디 여기를 떠나서 어떻게 산다냐?"
"경수 학교 졸업하면 같이 살든지요."
경수라는 말에 전주댁이 크게 눈을 뜬다. 그녀는 잠시 경수를 잊고 있었던 듯했다.
"그래, 가자! 이 놈의 데 잊어 부리고."
이제 결심이 섰다는 듯 전주댁이 말했다.
"그럼, 언제 오실라고요?"
"울산에 내려가 있으먼 날짜를 잡아서 연락을 내가 하제."
그 때까지 듣고 있던 동섭이 말했다.
이로써 두 사람의 이사는 거의 확실해졌다. 그런데 명자 내외가 돌아간 그 날 밤 동섭은 갈등에 싸였다. 나이 오십이 넘어 새로운 도시에 나가서 살려니 걱정이 되었다. 일자리를 구해야 하고, 어느 곳엔가 구속되어야 했다. 농사지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쉬고 싶으면 쉴 수 있었다. 눕고 싶으면 눕고 마시고 싶으면 마실 수 있었다. 밤새 고민하던 동섭은 다음 날 태도를 바꾸어 이사를 가지 않겠다고 버티었다.
"우리가 살먼 얼매나 산다고 타관에 나가. 그냥저냥 살아보지 뭐."
갑자기 돌변한 남편으로 인해 전주댁은 애를 먹었다. 어린아이에게 하듯 밖에 나가면 내가 돈을 벌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달래기도 하고, 여기 있다가 죽으나 나가서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거기가 낫지 않겠느냐, 고 비장한 목소리로 설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동섭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침내 전주댁 자신도 하고 싶지 않은 말을 꺼냈다.
"자식한테 받는 수모를 생각해!"
이 말은 효과가 있었다. 동섭은 고향을 떠나고 싶었던 애초의 기분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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