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도 다시 한번...큰 인물 키우자"
"TV에만 나오는 '거물'은 필요 없어"

[4·15 총선 격전지-19 서울 광진을] 생사 갈림길에 선 추다르크

등록 2004.04.12 16:25수정 2004.04.1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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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TV에 나오던데... 추미애가 인물은 인물인가 봐!"
"추미애가 동네에 해놓은 게 있나? 나중에 대통령이 되면 뭐하누?"
"그나저나 열린당 사람은 도통 얼굴을 모르겠대."


4월1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편의점 앞에 세워진 파라솔. '여름 같은 봄' 날씨를 이겨내려는 듯 40대 남자 세 명이 둘러앉아 캔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세 사람은 지역구 판세를 안주 삼아 대화를 이어나갔다. (기자가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들은 모두 지난 총선에서 '2번'을 찍은 사람들이었다.)

"탄핵을 사과한다면 이 동네에서 삼보일배를 해야지... 광주에는 왜 내려갔는데?"
"남정네들이 못나서 아녀자가 고생하는 당에서 추미애는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어?"
"추미애는 떨어져도 변호사 해먹으면 되잖아? 이번에는 한번 혼을 내놔야 정신차려!"


a 8일 자신의 지역구(광진을)를 방문한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자양동 사거리 유세에 앞서 유권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04 김기

8일 자신의 지역구(광진을)를 방문한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자양동 사거리 유세에 앞서 유권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04 김기

스코어는 2 대 1.

"추미애를 '탄핵'해야 한다"는 두 사람의 지칠 줄 모르는 압박에 '추미애 인물론'을 주장하던 남자는 "정치 얘기는 이제 그만 하자"며 화제를 돌렸다.

찬거리를 사려는 주민들로 항상 북새통을 이루는 자양시장. 상인들중에 총선 얘기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얘기가 나왔다하면 화두는 한 가지다. 8년간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낸 추미애 후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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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한 켠에서 콩나물을 다듬고 있는 김선옥(46)씨는 "못돼 먹었지. 대통령이 아무리 밉다해도 사람을 그렇게 망가뜨려 놓고.... 두고보소! 이 동네에서는 한나라당에 이로운 일 하는 사람치고 좋은 대접받을 일은 없을 테니까"라고 잘라 말했다.


서울 광진을은 수도권에서는 드물게 한나라당과 민주당, 열린우리당의 3파전이 팽팽하게 벌어지는 곳이다. 사실 우리당은 3월 초순까지도 이곳에서 후보를 내는 것을 확정하지 못했다. 민주당 쇄신파를 대표하는 추 후보가 혹시나 마음을 돌릴까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어지간히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보내도 추 후보의 3선을 막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부담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역 분위기가 바뀐 결정적 계기는 물론 탄핵안 가결이었다. 탄핵역풍은 광진을에도 어김없이 불어닥쳤고, 우리당 김형주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후 지지율이 한때 39.2%(3월25일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조사)까지 치솟았다.


a 11일 김형주 열린우리당 후보(가운데)가 지원유세를 나온 박영선 선대위 대변인의 손을 맞잡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04 김형주 선대본

11일 김형주 열린우리당 후보(가운데)가 지원유세를 나온 박영선 선대위 대변인의 손을 맞잡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04 김형주 선대본

이름을 제대로 알릴 새도 없이 지지율 1위로 뛰어오르자 김 후보도 조바심을 냈다. "갑작스럽게 뛰어오른 지지율이니 어떤 식으로든 조정국면을 거칠 것"이라던 그의 예상처럼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가며 큰 변수가 두 가지 나타났다.

하나는 정동영 의장의 노풍(老風) 발언. 탄핵 역풍이 불 때 침묵을 지키던 '반노(反盧)' 표들이 정 의장의 발언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명분을 찾게된 것이다.

김 후보 자신도 "선거 초반 노년층을 만날 때 '투표하지 말라더니 왜 왔냐'는 항의가 쏟아져 죄송하다는 말만 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노풍'이 전통적인 한나라당, 민주당 지지자들의 결집을 촉발시키면서 선거초반의 '우리당 압승' 전망은 사라졌다.

추 후보의 '망월동 삼보일배'도 이 지역 유권자들이 추미애에게 가지는, 애증의 감정을 증폭시켰다.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동정여론이 "인지도가 떨어지는 우리당 후보보다는 추 후보가 낫지 않겠냐?"는 인물론과 함께 고개를 든 것이다.

그러나 추 후보의 잦은 매스컴 노출은 거꾸로 그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분위기다. "원내 2당을 호령하는 추 후보를 지역구에서도 압도적으로 밀어주지 않겠냐"는 외부인들의 예상과 달리 기자가 만나본 지역구 주민들은 "추 후보가 언론에 자주 나오면서 주민들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노유동의 자영업자 안충렬(49)씨는 "(추 후보가) 초선 때는 동네에도 곧잘 찾아와 '뭐, 불편한 게 없냐'고 하더니 재선이 된 다음에는 TV와 신문에만 뻔질나게 얼굴을 비친다"고 쏘아붙였다. 안씨는 "노무현이를 지지했다가 어느 순간에는 탄핵해버렸다. 그런데, 또 이제 와서는 그거 잘못했다고 사과하러 다니고... 국회의원 8년 해먹는 동안 이 동네는 개선된 게 하나도 없다"고 불평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추 후보는 지역구를 거의 돌아보지 못하고 전국 유세에 주력해야 하는 실정이다. 추 후보는 8일 저녁 자양동∼노유동∼화양동으로 지역구 순회를 한 차례 했을 뿐, 선거운동 기간동안 지역주민들과의 접촉 기회를 거의 잃고 있다.

추미애 캠프의 한 관계자는 "추 의원의 몸이 추 의원 것이 아니라서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다. 다만, 추 의원이 없는 상황에서도 분위기는 좋아지고 있으니 결국 우리가 아슬아슬하게 이기지 않겠냐"고 조심스런 낙관론을 피력했다.

a 민주노동당 이해삼 후보가 3일 광진구청앞 유세에서 공무원노조에대한 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2004 이해삼 홈페이지

민주노동당 이해삼 후보가 3일 광진구청앞 유세에서 공무원노조에대한 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2004 이해삼 홈페이지

한나라당 유준상 후보와 민주노동당 이해삼 후보도 부지런히 표밭을 다지고 있다.

4선 경력의 유 후보는 지난 2000년 총선에서 추 후보에게 1만5천여표 차이로 패배의 쓴잔을 마신 적이 있다.

설욕전 성격의 이번 선거에서도 추미애 대 김형주의 양강 구도에 밀려 3위로 처지지 않겠냐는 예상이 나오고 있지만 유 후보는 "여론조사 같은 건 믿지 말아라. 내가 이긴다"고 기염을 토했다.

지난 8일 자양동 사거리 유세장에서 기자와 만난 유 후보는 "나만큼 깨끗하고, 지역을 위해 헌신한 후보가 있나? 98년부터 지역을 위해 봉사한 결실이 이번에는 나타난다"고 승리를 자신했다. "박근혜 대표의 지원유세를 보러 유세장에 나왔다"는 중년의 한 주부유권자는 "후보들 경력을 찬찬히 보니 경제 하나는 똑 소리나게 풀어갈 사람이 유 후보인 것 같다"며 지지를 표명했다.

민주노동당 이해삼 후보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민노당 지지율이 높아지자 한층 고무된 분위기. 이 후보측은 "유권자들이 15년 이상 야학과 주부교실, 지역현안 해결을 위해 헌신해온 이 후보가 적임자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며 "아직 낮은 후보 지지도를 최고 15%까지 나오는 정당 지지도 수준으로 올리는 게 숙제"라고 말했다.

지역민심 취재를 마칠 무렵, 기자는 자양동의 한 모텔 앞 담벼락에 붙어있는 총선후보 포스터를 훑어보는 20대 초반의 대학생 한 명을 만났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흠... 제가 사진 촬영에 관심이 많아서 선거 포스터는 관심 있게 보거든요. 근데, 우리 지역구에 나온 분들의 '인물'이 제일 나은 것 같아요. 이 정도면 어느 분이 당선돼도 특별히 빠질 외모는 아닌데, 제가 누굴 찍을 지는 생각해보지 않아서.... 외모를 보고 투표하면 아무래도 욕먹겠죠? (웃음)"

a 서울 광진을에 출마한 17대총선 출마자들의 포스터.

서울 광진을에 출마한 17대총선 출마자들의 포스터. ⓒ 오마이뉴스 손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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