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난장의 판이 끝났다. 299개의 의자를 놓고 벌인 게임이 엄중하고도 신중한 국민의 선택으로 종료된 것이다. 이제 각 당은 이번 결과에 그저 '환호'와 '침울'에만 그칠 게 아니라, 선거를 통해 나온 국민의 뜻을 겸허히 분석하고 차분히 반성해야 할 때다.
턱걸이 '여대야소', 여야 모두 '윈-윈'
17대 총선에서 국민이 선택한 결과는 '수치적으로' 공평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엔 '과반수'라는 선물을, 제1야당 한나라당엔 '개헌 저지선'이라는 선물을,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엔 '원내 진출'이라는 선물을 골고루 나눠줬다. 실제 이들 당의 공식 반응도 대체로 '만족'이었다.
반면, 탄핵이라는 무리수 이후에도 내부 혁신에 실패하며 갈지 자 행보를 했던 민주당과 이미 역사적 유통 기한이 다해 버려 그 존재의미마저 희미해져버린 자민련에는 역사의 뒤안길로의 퇴장을 명했다.
어느 때보다 비이성적 정쟁 요소가 많아 판단에 혼란이 많았던 선거였지만, 국민은 중심을 잡고 황금률에 가까운 의석수 분배를 실현한 것이다. 여당의 과반수 확보를 통해 보다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보장한 것과 동시에, '턱걸이' 과반수로 제한함으로써 정책 제휴나 합의를 통한 의회 운영의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지역주의 청산 '실패', 진보정당 진출 '성공'
그러나 여전히 한계를 보인 선택의 결과도 보인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 극복엔 국민의 뒷심이 달린 듯한 모습이다. 선거 막판 몰아친 박풍의 여파는 TK를 넘어 결국 PK까지 영향을 끼쳤으며, 호남 지역의 '블루(한나라당) 혐오증'도 여전했다. 따라서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정치 혁명은 18대를 기약해야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다만, 투표율에 있어서 부분적으로는 지역주의 극복에 대한 작은 희망을 보여줬다는 점이 위안거리다.
17대 총선에서의 최대 이슈 중 하나가 한국 정치 사상 진보 정당의 최초 원내 진출 여부였다. 탄핵 정국으로 말미암아 그나마 상승세를 타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한시적으로 위기를 겪었던 민주노동당은 예의 선명한 정책과 노회찬이라는 스타를 앞세운 적극적인 미디어 선거로 두 자리 수의 국회의원을 배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비례대표에서의 선전으로 노회찬 선대본부장까지 막차로 당선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비례대표 개표 초반, 10~12%를 오가는 득표율로 비례대표 8번인 노회찬의 당선이 힘든 듯 보였으나 새벽 0시를 넘기며 자민련 득표율이 낮아지고 민주노동당 득표율도 13%에 다다르면서 극적으로 당선권에 들었다. 이로써 민주노동당은 퇴락해 버린 민주당을 제치고 제2야당으로 발돋움했으며 향후 '정신적' 제1야당의 역할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정쟁 국회서 민생 국회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7대 총선은 막을 내렸다. 지난 1년간의 국회가 비정상적 구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정쟁에 휘말렸었다고 위안한다면, 국민이 신중하게 고민해 선택한 17대 국회는 실제로 국민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민생국회로 거듭나야 할 사명을 띠고 있다.
'의회권력 교체'라는 절대절명의 정치적 과업은 어느 정도 달성됐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보수-개혁-진보'의 의회 구도 속에서 '전략적 정책제휴'나 '타협과 합의' 등의 한층 진일보된 정치 퍼포먼스가 필요할 때다. 이를 통해 299명의 의원들이 진정으로 국민의 심부름꾼이 되어 '민생국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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