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이주의 신간들] 고우영의 <임꺽정> 복원되다

<임꺽정> <내가 만난 하나님> <은빛 인연>

등록 2004.05.04 17:36수정 2004.05.06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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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식과 재미를 한 손에
- 고우영의 만화 <임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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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음과모음

문제적 인물 임꺽정. 월북작가 벽초 홍명희(1888∼1968)에 의해 그 삶이 소설화된 것은 물론 현존하는 최고의 원로시인 신경림의 시 '누구는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누구는 서림이처럼 헤헤거리는데...'라는 구절에도 등장하는 의로운 도적.


<명종대왕실록>에 등장하는 조선시대의 의적 임꺽정이 고우영의 만화로 부활했다. 이번에 자음과모음 출판사에 의해 출간된 <임꺽정(林巨正)>은 지난 1972년 일간스포츠에 연재돼 가판 신문 부수를 좌지우지하는 인기를 누렸던 초판본을 최근 6개월간의 재작업 끝에 만들어낸 책.

저자인 고우영은 작가의 말을 통해 "(당시 정권의 검열에 의해) 아예 없어진 것은 30여년 전의 기억을 되살려 주섬주섬 새로 그려 넣어야 했고, 찢어지고 뭉개진 장면은 옛날의 필치 그대로 살리기 위해 가장 예리한 펜촉을 써야 했다. 새 작품을 창작하는 것보다 힘들었다"는 말로 이번 작업에 들인 노력을 설명했다.

탐관오리의 학정과 봉건양반의 수탈 속에서 '모든 이가 평등하게 웃을 수 있는 해방된 세상'을 꿈꾸었던 꺽정이와 차돌이, 벅걸이와 껑달이의 몸부림은 <명종대왕실록>이 씌어진 지 4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신분에 관계없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가려 했던 올곧은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2001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자인 고우영 특유의 굵고 개성적인 선과 매력적인 캐릭터 창출력은 만화 <임꺽정>의 또 다른 매력이다.


말은 잃었지만 그의 글맛은 여전하다
- 김승옥 산문집 <내가 만난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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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생명연습>으로 등단한 후 <서울, 1964년 겨울> <염소는 힘이 세다> <다산성> 등의 문제적 작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60년대 문단의 총아로 주목받았던 김승옥(63).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말'을 잃은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하지만, 그의 문장은 어눌한 말투와는 달리 여전히 빛난다.

지난주 출간된 <내가 만난 하나님>(작가)은 아주 오랜만에 맛보는 김승옥 문장의 맛과 향기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책에서는 무신론자였던 작가가 창졸간에 겪은 접신(接神)체험을 통해 기독교신자가 되는 과정, 예수와 만난 개인적 경험의 서술 등과 함께 유년시절과 성장기, 문학이야기가 함께 담겼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책의 마지막 부분인 김승옥의 청년기에 특히 주목할 듯하다. 김현(사망), 최하림, 김치수, 서정인 등과 밤새 술마시고 문학토론을 벌이던 '산문시대' 이야기는 세기가 바뀐 2004년 봄날에도 문학청년들의 가슴을 술렁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김승옥이 자신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는 시인 김지하는 <내가 만난 하나님>의 출판기념회에 참석,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그의 소설은 한국문학의 빛나는 별이 될 것"이란 말로 문우(文友)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생(生), 기다림이 있어 빛나는 어떤 것
- 이행자 시집 <은빛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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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새

제3회 전태일 문학상 수상자이며, 시집 <들꽃향기 같은 사람들>을 상재한 바 있는 이행자(62) 시인이 새 시집을 독자들에 앞에 수줍게 내밀었다. 이름하여 <은빛 인연>(바보새). 책에서는 회갑을 넘긴 나이답지 않은 쑥스러움과 소녀적 감수성이 읽힌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목련 한 송이 / 겨울나무 뿌리를 흔들지 않고도 / 마음 고운 그대 숨결로 / 사월을 노래합니다 / 빛나는 사월강 건너 / 당신도 오시겠다구요.
-- 위의 책 중 '네 그림에 시를 바치리 3' 전문.


그것이 사람이건, 또 다른 어떤 존재이건 강 건너 '미지의 것'들을 결고운 마음으로 기다리며, 조용히 노래하는 이순(耳順)의 시인을 볼라치면 "생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라는 전 시대 시인의 진술이 새삼스럽다. 그렇다고 이행자가 오지 않을 것들을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인 사람은 아니다. 이 시인에게는 마땅히 찾아야할 것들은 팔 걷고 찾아가는 용기도 있다. '곡비(哭婢)'라는 시를 보자.

동해였다 / 애인의 부고를 기다리며 사는 여자 / 황량한 겨울 들판을 걸어와 / 바다를 향해 서 있다 / 나, 곡비 찾아 예까지 온 거다 / 산더미 같은 파도가 으르렁대며 / 황토빛 눈물로 통곡해주고 있다.

'기다림'과 '용기'라는 생의 진리를 자연스레 체득하고 있는 이행자의 시. 그는 스스로를 하잘 것 없는 작은 들꽃에 곧잘 비유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시집 속에 있다.

고우영 임꺽정 세트 - 전5권

고우영 지음,
자음과모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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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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