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카르멘, 5월의 화려한 유혹

올림픽주경기장에서 펼쳐진 야외오페라 '카르멘' 관람기

등록 2004.05.18 02:33수정 2004.05.1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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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15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오페라 공연 (가로 100m, 세로 20m 초대형 스크린 속에 펼쳐진 오페라 '카르멘')
▲2004년 5월 15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오페라 공연 (가로 100m, 세로 20m 초대형 스크린 속에 펼쳐진 오페라 '카르멘') 이장우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을 추구한 한 병사와 자유와 사랑의 화신인 한 집시의 뜨거운 정열이 5월의 잠실 밤을 한껏 달궜다. 108m에 달하는 초대형 무대는 3시간 반 내내 이들의 욕망과 열정적인 사랑으로 꽉 메워졌다.

투란도트, 아이다, 그리고 카르멘


야외 오페라 '카르멘'이 지난 15일 오후 8시,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막을 올렸다. 19일까지 계속 무대에 오를 이 공연은 지난 해 '투란도트', '아이다' 이후 국내에서 세 번째 올리는 야외 오페라 공연이다. 이 공연은 19세기 스페인을 배경으로 집시 '카르멘'과 병사 '돈 호세'간의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위험한 사랑을 표현한 작품이다.

프랑스 극작가 메리메의 소설을 조르주 비제가 1875년 오페라로 초연한 이후, 오페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된 이 작품은 귀에 익은 웅장한 전주곡과 함께 스페인 '세비야 광장'과 그 앞의 담배공장이 화려한 조명 속에 드러나며 공연이 시작된다.

'카르멘'의 매력, 뮤지컬에서 오페라로

오페라에 전혀 문외한이었던 기자에게 이런 발걸음을 하도록 한 것은 솔직히 '오페라'가 아니라 '카르멘'이었다. 뜨거웠던 지난 해 여름, 리틀엔젤스에서 공연된 '뮤지컬 카르멘'에서 정열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카르멘'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이후 10개월이 지나고서도 그 감정의 여운을 잊지 못해, 이 공연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다.

화려한 조명, 격정적인 아리아


주경기장에 들어서자 바로 눈 앞에 다가온 무대 위 가로 100m, 세로 20m의 대형스크린은 이전의 야외 오페라의 한계-무대와 객석과의 꽤 먼 거리-를 보완하고자 설치된 듯했다. 그 스크린 속에서 펼쳐진 출연진의 섬세하고 풍부한 표정연기와 손짓은 극적인 분위기를 한층 돋워 주었으며, 밝게 비추는 조명은 무대를 더욱 화려하게 수놓았다.

특히 러시아 출신의 카르멘 전문 메조소프라노 '엘레나 자렘바'와 세계적인 차세대 테너 '호세 쿠라'의 격정적이고 관능적인 아리아와 연기는 공연 내내 수만 관객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대도 나는 좋아해, 한번 내가 좋아하게 되면 조심해야 할 거야!"
- '카르멘'의 하바네라 중에서 -


가사에서처럼 카르멘은 솔직하다. 그리고 당당하다. 19세기 유럽사회에서 이런 마음을 소리높여 부르는 카르멘은 오페라의 주고객이었던 귀족층 입장에서는 봐주기가 불편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작곡가 비제가 "카르멘에 대한 관객들의 냉담한 반응을 이기지 못해 병이 들어 36살에 요절했다"라는 근거 없는 설이 설득력을 가질 만한 것도 바로 파격적인 카르멘의 인물설정에서 연유한다.

그로부터 세기가 두 번이나 지난 지금, 당시 외로이 불렀던 집시의 노래는 이제 솔직하고 당당한 현대 여성의 대표적 상이 됐다.

"그대가 내게 던진 이 꽃은 감옥에서 나와 함께 지냈어요. 비록 시들고 말라 버렸지만 언제나 달콤한 향기를 잃지 않았죠." -'돈 호세'의 꽃 노래 중에서-

카르멘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하고 나온 직후, 예전에 카르멘에게 받았던 시든 꽃을 들고 구애하는 돈 호세의 애절한 노래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 순수했지만, 여리고 여린 돈 호세의 사랑이 후반부에 집착으로 변해가며, 비극적 종국으로 치닫게 된다. 이런 극단적 결말은 언뜻 너무나 매끄럽고 자연스런 인과관계라, 더욱 비장미를 느끼게 했다.

황량한 무대장치, 옥의 티

시종 장엄한 감동을 전했던 이 공연은 중간 중간 그 감동을 방해하는 요소들도 있었다. 봄날이라 별 준비 없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객석에 앉은 건 실수였다. 차가운 밤공기는 공연관람 집중력을 한층 떨어뜨렸다.

대형스타디움 오페라의 한계 또한 군데군데서 드러났다. 빛나는 연출과 연기, 그리고 화려한 조명에 비해 다소 단조로운 무대장치와 어수선한 출연진의 동선은 이 공연의 명성에 걸맞지 않는 풍경이었다.

라디오나 CD를 통해서만 접했던 '하바네라',‘집시의 노래', '투우사의 노래'를 세계적인 성악가의 라이브로 듣는 것만으로도 감동과 흥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사랑의 과잉' 시대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부재' 시대에 살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 가슴 속에 두 주인공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의 에너지'를 맘껏 충전할 수 있는 시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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