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탕, 매춘은 없고 역사가 있다

[현지보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키랠리 온천에 가다

등록 2004.05.20 04:38수정 2004.05.2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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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는 온천, 대중목욕탕, 찜질방, 그리고 사우나를 모두 합치면 그 수가 얼마나 될까? 헝가리 여행기를 쓰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헝가리인들은 한국인들처럼 대중목욕을 즐긴다. 헝가리 전체에 걸쳐 1천 개에 달하는 온천이 있고, 수도 부다페스트만해도 크고 작은 목욕탕이 100곳이 넘는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다.

a 세체니(Széchenyi) 온천의 모습

세체니(Széchenyi) 온천의 모습 ⓒ 세체니(Széche

대부분의 서유럽인들은 관광보다는 ‘휴식’을 위해 가까운 동유럽 헝가리를 찾는다. ‘웰빙’(Well Being), 혹은 ‘웰니스’(Wellness)의 삶이 점차 보급되면서 기자가 머무는 오스트리아의 많은 여행사들도 좀더 알뜰한 가격으로 여행도 하고 휴식도 즐기는 부다페스트 온천여행상품을 갖추고 있다.

온천(Thermal Bath)의 기원은 약 2천년전 고대 로마인들이 로마식 공중목욕탕을 시작한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중유럽에 막강한 지배력을 가졌던 오스만 터어키 제국의 터키인들이 로마인들의 온천을 터키식으로 더 발전시켰고 그 명성은 지금까지 ‘터키탕’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다.

헝가리인들은 뜨거운 목욕, 즉 온천의 의학효과를 아직도 강하게 믿고 있다. 헝가리인들의 온천 사랑은 로마와 터키의 지배를 받으면서 독창적으로 가꿔온 문화라고도 감히 말할 수 있는데, 그야말로 헝가리의 온천은 매우 길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키랠리(Király), 루다스(Rudas) 등의 온천은 터키의 지배가 있었던 16세기에 만들어진 온천으로 건물 외부와 내부의 미술양식은 길고 긴 온천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19세기와 20세기에는 헝가리 온천의 ‘황금시대’로 세체니(Széchenyi), 겔레르트(Gellért)의 아르누보 양식의 세련된 온천 등이 문을 열었다. 특히 부다페스트를 대표하는 온천호텔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겔레르트 온천은 가장 오래된 헝가리의 온천호텔로 아르누보의 보석이라 불린다.


특히 이곳은 온천뿐 아니라 아웃도어 수영장, 누드 베이딩 갑판까지 갖추고 있어 늘 관광객들로 붐빈다. 한국의 많은 여행사들도 겔레르트호텔의 온천욕 상품을 대표적인 헝가리 여행상품으로 내놓고 있을 정도다.

a 키랠리(Király) 온천의 터키식 독탕 내부

키랠리(Király) 온천의 터키식 독탕 내부 ⓒ 배을선

그러나 부다페스트의 온천 관광지로 권장하고 싶은 곳은 겔레르트 호텔이 아닌 키랠리와 루다스 온천이다. 키랠리 온천과 루다스 온천은 모두 ‘부다’지역에 위치한다. 16세기의 돔 천장과 스태인드 글라스의 실내장식을 자랑하는 루다스 온천은 ‘남성전용’온천으로 여성들에게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곳이다. 하지만 온천 옆의 수영장은 여성들의 입장을 그나마 허용하고 있다. 현재 루다스 온천은 내부 수리중으로 2005년에나 문을 열 예정이다.


역시 16세기 후반에 건축된 키랠리 온천은 부다페스트의 가장 중요한 터키식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는 건물 중 한 곳으로 헝가리의 문화와 터키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융화된 곳이다. 루다스 온천과는 달리 남녀가 평등하게 입장이 가능한 키랠리 온천은 현재 월, 수, 금요일은 여성전용, 화, 목, 토요일은 남성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주기적으로 여성전용일과 남성전용일이 바뀔 수 있으므로 전화로 확인을 하는 것이 좋다. 1/202-3688).

1000 포린트의 입장료를 내고 2층으로 올라가면 안내원이 다가와 면으로 된 큰 천을 주고 개인별 탈의실로 안내해준다. 옷을 벗고 천을 둘러 복도로 나오면 안내원이 탈의실의 문을 2개의 큰 열쇠로 꼼꼼히 잠그고 하얀색 분필로 사용자가 있음을 표시하는데 디지털 카드나 조그만 열쇠로 개인용 락커를 제공하는 현대식 온천에 비교하면 정말 구식임이 분명하다. 그래도 이 전통적인 경험을 신나게 즐겨야 한다. 언젠가 이곳도 디지털 팔찌 시스템의 세계로 바뀔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안내원은 또한 온천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개인용품을 점검하는데, 수영복을 입어도 되고 안입어도 되는 키랠리 온천의 구조상 개인의 프라이버시 존중을 위해 관광객의 카메라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의실의 긴 복도를 지나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정말로 오래된 샤워시설과 사우나가 첫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햇살이 반짝이는 온탕에서 유유히 개구리 헤엄을 치는 부다페스트 할머니의 젖가슴을 봤다면 터키탕에서의 휴식은 시작된 셈이다.

a 키랠리(Király) 온천의 외부 모습

키랠리(Király) 온천의 외부 모습 ⓒ 배을선

키랠리 온천의 천장은 아주 정교한 8각형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수십 개의 조그만 원형창문이 있어 인공조명이 없어도 온천내부가 신비롭게 빛난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조그만 유리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물 위에서 반짝이는 것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조용한 휴식 그 자체다.

키랠리 온천은 6,7개의 샤워시설과 30도의 큰 온탕, 40도의 작은 온탕, 100도와 80도 두 개의 사우나와 스팀 사우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스팀 사우나는 4미터 높이의 천장과 천장에 있는 역시 조그만 원형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가히 인상적이다.

1시간 반가량 온천욕을 즐기고 2층에 올라가 팔자에 없는 맛사지를 받았다. 20유로(4000 포린트)면 사실 배낭여행객에게 꽤 큰 액수지만 한국의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도 이 가격이요, 여행 마지막날의 호사를 누리고 싶어 지갑을 열고야 말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키랠리 온천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가 지긋한 헝가리 중,노년층이 아니면 외국인 관광객이라는 점이다. 헝가리의 젊은이들은 온천시설만 갖추고 있는 전통적인 키랠리 온천보다는 수영장과 엔터테인먼트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 겔레르트 온천을 선호한다. 세계 어느 곳이나 현대적인 시설의 장소에 젊은이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가 보다.

키랠리 온천은 관광객들에게 16세기의 터키식 독탕과 온천의 역사도 전시하고 있는데 내부의 정원과 반대편에 위치한 수십 개의 조그만 독탕을 함께 둘러보는 것은 정말 흥미로웠다. 터키식 독탕은 1.5평 정도의 크기로 조그만 침대와 욕조, 탁자 하나씩이 놓여있는데 현재까지도 사용이 되고 있다. 요금을 따로 내면 독탕에서 목욕이 가능하지만 절대로 한국의 ‘터키탕’으로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이곳에는 매춘이 없다. 역사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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