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냥으로 아들·손주 책임지는 반신마비 할머니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8평 남짓한 집, 64세 가장 이순덕 할머니

등록 2004.06.12 18:19수정 2004.06.1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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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그러나 어머니보다 몇 배나 강한 할머니가 우리 주위에 있다.

오른손에 쥔 작은 지팡이가 없으면 단 1초라도 서 있을 수 없는 할머니. 150cm 가량의 작은 체구에 마비된지 20여 년이 지난 왼팔과 왼쪽 다리, 여기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간질환마저 겹쳐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올해 64세의 이순덕 할머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마비된 다리 질질 끌며 '찍쇠', '구걸','식모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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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구걸을 마치고 집에 도착할 시간이면 손주녀석은 어김없이 마중을 나간다. ⓒ 김호경

마산시 회원2동 366-33번지의 8평 남짓한 낡은 집에서 투병 중인 아들과 손주녀석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올해 64세의 이순덕 할머니. 파출부로 생활하던 지난 83년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가봤다는 이 할머니. 그 때부터 할머니는 왼쪽 다리와 손을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그런 몸을 이끌고 할머니는 매일 아침 10시면 택시를 타고 마산 어시장으로 향한다. 남들처럼 번듯한 좌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반기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들 귀찮게 여길 뿐. 그래도 할머니는 꼭 그곳을 찾는다. 할머니의 직업이 '동냥꾼'이기 때문이다. 하루 내내 마비된 한쪽 다리와 팔을 질질 끌다시피 하고 동냥해봤자, 손에 쥐는 것은 고작 7천 원. 그마저도 왕복 택시비를 제하면 3천원밖에 남지 않는다.

할머니가 어시장을 생계 터전으로 삼은 이유는 근 15년 동안 이곳에서 속칭 '찍쇠(구두를 걷어 오고 갖다 주는 일)'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 당시엔 그래도 한 달에 10만원 가량 고정 수입이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이가 들고, 교통사고 후유증이 악화되면서 일자리에서 내몰리고 말았다. 그 때부터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동냥'이다.

혹자들은 "동냥하러 다니면서 택시를 타고 다닌다"고 의문을 제기할 지 모르지만, 10m 거리를 이동하는데만 3분 넘게 걸리는 할머니가 장애의 몸으로 20리는 족히 넘을 거리를 걸어다니기란 사실 불가능한 일. 한 푼이 아깝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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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에 시달리다 지쳐 쓰러진 아빠와 응석을 부리는 손주녀석. ⓒ 김호경

8살배기 손주, 병든 아들 수발

이처럼 할머니가 사선을 넘나들면서 구차한 삶을 연명하는 데에는 기구하고 눈물겨운 사연이 있다.

올해 34살된 아들은 허리디스크 3기, 퇴행성 관절염, 위궤양, 화상으로 얼룩진 몸 때문에 경제 능력을 상실한지 오래다. 설상가상으로 며느리마저 이처럼 구차한 삶이 지겨웠던지 3살난 갓난 애기를 버려둔 채 가출해 여지껏 소식도 없다.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손주녀석은 벌써 8살.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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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인데도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1평짜리 할머니 방. ⓒ 김호경

할머니에겐 작은 소망이 있다. 남들처럼 손주녀석이 돈에 구애하지 않고 지금 다니는 학원을 계속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정부 생활보조금 25만 원에 동냥으로 번 돈은 아들과 손주녀석 입으로 들어가면 남는 게 거의 없다. 그래서 월 4만 원이나 하는 학원비를 넉달째 못내고 있다고 한다.

"할매가 돈이 없어 학원비를 못낼 형편이니 학원 댕기지 마라."
"할매 바보가, 학원 다니니까 100점 맞고 공부 잘한다 아이가…."

할머니의 눈에 금세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남이 볼새라 시장통에서 주워 쓴 모자를 벗어 얼른 눈물을 훔치는 모습에 기자도 감정에 북받친다.

대낮에도 깜깜한 1평도 안 되는 방

할머니와 아들, 손주가 살고 있는 집의 실평수는 대략 8평. 할머니가 기거하는 방은 교도소 독방마냥 1평도 채 되지 않아, 갸냘픈 할머니가 눕기에도 빠듯했다. 방안은 한낮인데도 깜깜해 물건을 식별할 수 없을 정도다.

이곳에는 할머니가 주워 모은 그릇이며, 자선단체에서 갖다준 싸구려 비누가 가득 담긴 바구니,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냄비, 몸만 넣었다 뺐음직한 누더기 같은 이불과 함께 알 수 없는 악취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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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녀석이 누워도 빠듯한 할머니 방. ⓒ 김호경

손주녀석과 아들이 기거하는 방 역시 할머니 방보다 조금 넓다뿐, 역시 초라하고 궁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젊은 아낙이 없는 집이라 그런지 방안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여기저기 뜯겨져 나간 벽지며 장판이 가난에 찌든 이 집의 삶을 적나라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방 바닥에는 고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아들이 식물인간처럼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누워 있었고, 철없는 손주녀석은 제 아빠의 등을 두드리며 뭔가를 조르고 있었다.

돈이 없어 상속절차 못 밟아

세 식구가 살고 있는 이 집은 할머니가 옛날 신마산 역 근처의 송포 여관에서 식모살이를 하며 한푼 두푼 계를 들어 모은 돈으로 마련한 것이다. 현재 이 집의 소유는 26년 전에 사망한 할아버지의 명의로 되어 있으나, 상속세를 낼 돈마저 없어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저는 커서 군인이 될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 안마해 드릴꺼예요."
아마도 하루종일 시장통 거리를 헤매며 동냥을 하다 지친 할머니의 모습을 늘상 봐왔던 탓이리라. 어린 마음에 할머니의 피곤함을 풀어주는 것에는 안마가 제일 좋다고 여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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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니 때문에 모진 목숨 포기 못한다" 구걸에 지친 할머니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는 손주녀석. ⓒ 김호경

평생을 가난에 찌들린 삶

MBC-TV 일요일 일요일 밤의 '러브하우스'에서 어려운 이웃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우리신문>에 해왔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를 추천한 마산시 회원2동 조현순 사회복지사는 "어린 손주녀석이 쾌적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꼭 도와달라"고 기자에게 신신당부했다. 조 복지사와 할머니와의 인연은 17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처녀시절 첫 발령을 받은 곳이 회원2동이고, 당시에도 할머니의 가난한 삶은 지금과 다름없었다고.

"얼마전 한 매스컴에서 서울 강남에서 10만원짜리 지우개, 50만원짜리 연필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한심함을 떠나 분노가 일어 며칠밤을 뜬눈으로 꼬박 새웠습니다."

조현순 복지사의 바람은 단 한가지다. 할머니 가족들이 좁고 낡은, 비가 새고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컴컴한 방과 발을 헛디뎌 빠질까봐 이용할 수 없는 화장실에서 벗어나, 단 하루라도 쾌적한 환경에서 화사한 웃음꽃을 피우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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