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가판업자 '무제한 판매거부' 돌입

[현장진단] 판매량 절반 이하 급락... "생계도 어렵다"

등록 2004.06.21 21:06수정 2004.06.2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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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판대에 나붙은 무료신문 규탄 대자보. 가판업자들은 무료신문 범람으로 생계조차 위협받고 있다며 신문판매 거부에 돌입했다.

가판대에 나붙은 무료신문 규탄 대자보. 가판업자들은 무료신문 범람으로 생계조차 위협받고 있다며 신문판매 거부에 돌입했다. ⓒ 오마이뉴스 신미희


서울시내 300여 지하철 가판대의 신문이 사라졌다. 신문 가판업자들은 21일 다섯번째 무료신문으로 창간된 만화신문 <데일리줌>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이날 오전부터 신문판매대를 아예 열지 않았다.

오후 5시 현재 서울 시내 주요 지하철 가판대에는 가판업자들이 철수한 채 문을 닫은 상태이다. 가판대 곳곳에는 '장애인을 두 번 죽이지 마세요' '임대료 너무 비싸 신문장사 못해먹겠다" 등의 대자보와 함께 대시민 호소문이 붙어 있다.

가판업자 200여명은 이보다 앞서 20일 오후 5시께 <데일리줌> 인쇄대행사인 세계일보 본사(서울 용산구 한강로)를 찾아가 무차별적인 무료신문 창간과 지하철공사측의 과대한 임대료 책정에 반대하는 항의시위를 벌였다. 또 21일 오전에는 <데일리줌>의 최대 주주인 (사)군인공제회를 항의 방문했다.

이들은 "2002년부터 계속 늘어난 무료신문으로 가판 판매율이 급락, 더 이상 신문 판매대를 운영할 수 없게 됐다"며 무료신문 폐지와 함께 지하철역 근처 배포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공기업격인 군인공제회가 만화가협회와 손잡고 공익적 동기로 만화신문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결국 수익을 위한 것 아니냐"며 군인공제회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을 비판했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과 모자가정, 장애인, 독립유공자 등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자가 대부분인 가판업자들은 "한평 남짓한 공간에서 하루 18∼20시간씩 팔아봐야 인건비는커녕 임대료조차 내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또 "정부가 무료신문을 무조건 등록해주면 신문난립으로 부수경쟁만 심화돼 기존 신문사는 물론 무료신문사도 자생하기 어렵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하철공사측의 높은 임대료 책정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지하철공사와 도시지하철공사측은 지난해부터 신문판매대 임대료를 30%까지 일괄 인상했으나 오히려 신문판매율은 급락, 가판업자의 생계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이들은 "계약을 취소하고 싶어도 몇 백만원씩 되는 위약금이 무서워 취소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새 신문 창간 때마다 가판업자-무료신문업자 충돌


지난해 두 번째 무료신문 <더 데일리포커스> 창간 때부터 불거진 신문 판매업계와 무료신문업계의 충돌은 새로운 무료신문이 나올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a 가판업자들이 쓴 대시민 호소문.

가판업자들이 쓴 대시민 호소문. ⓒ 오마이뉴스 신미희

<더 데일리포커스> 창간 당시에도 배포대행권과 배포방식을 둘러싼 판매업계 반발로 <더 데일리포커스> 인쇄대행사인 <매일경제>가 1주일 정도 가판대에 오르지 못했다.


당시 가판업자들은 '수도권신문 판매인 생계대책협의회'(판매인대책협의회)를 결성해 무료신문 배포로 인한 피해 대책을 요구하며 조직적인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결국 보름간의 협상 끝에 <더 데일리포커스>와 <메트로신문>이 무료배포 방식을 병행하기로 합의하면서 정면충돌을 면하게 됐다.

특히 세 번째 무료신문이자 기존 유료신문사의 첫 무료신문 진출 사례인 문화일보 < AM7 >도 창간 초기 신문판매업계와 대립했으나 배포대행권을 공유하면서 일단락됐다. 스포츠서울 <굿모닝서울>도 문화일보 < AM7 >과 마찬가지로 배포대행권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상호 공존하는 해법을 찾았다.

그러나 안정적인 배포망 구축이 관건인 후발주자일수록 기존 신문판매업계와의 동반이 그리 유리하지만은 않다. 특히 가판이나 가정배달 없이 지하철 등 가두배포가 전부인 무료신문에게는 배포망 자체가 신경줄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데일리포커스>나 <데일리 줌> 등 독자적인 무료신문업체의 경우 배포망 확보를 놓고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

최죠셉 <데일리 줌> 전무이사는 21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판매업자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미 두 개 무료신문 배포대행권을 확보한 상태에서 더 달라는 것은 수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즉 무료신문 배포대행을 하지 않는 사람이나 장애자 등에게 주는 것은 괜찮지만, 한꺼번에 배포대행권을 다 달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 이사는 "우리로서는 안정된 배달망 구축이 가장 중요한데 한 사람에게 배포권을 맡긴다는 것은 자칫 물리게 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또 최 이사는 "자체 조사를 해보니 현재 두 개 무료신문 배포도 책임있게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 믿음이 생기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더욱이 "일선 가판업자의 생계보다 일부 업자의 이해관계가 작용한 듯하다"고 풀이한 최 이사는 "하지만 협상의 여지는 언제든 열려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판매업자는 수익추구를 노린 자본의 무차별적 시장진출로 신문판매 종사자는 물론 신문산업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그동안 무료신문이 1개 창간될 때마다 가판 판매율이 15∼20%씩 잠식당했다"면서 "그래도 가판업자들이 울분을 참아가며 버텨왔는데 이젠 한계선을 넘었다"고 규탄했다.

그는 "문화일보 < AM7>과 스포츠서울 <굿모닝서울> 등도 무료신문 시장에 진출하면서 보상차원에서라도 가판업자에게 배포대행권을 주며 공생관계를 유지했다"고 전제한 뒤 "지난 5월부터 수 차례 협상을 했지만 <데일리 줌>이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무료신문 시장이 지금처럼 커진 상황에서 무료신문 배포대행권을 공유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궁극적으로는 무료신문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가판업자와 판매업자들은 현실적 여건을 감안, 5개 무료신문사의 '공동배포 대행' 실시를 제안하고 있다. 즉 이를 통해 과다경쟁으로 인한 출혈을 막고 독자들의 신문선택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업계의 공존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a 신문 가판대가 21일 굳게 문을 닫아버렸다.

신문 가판대가 21일 굳게 문을 닫아버렸다. ⓒ 오마이뉴스 신미희


시민들도 주목..."신문업계 공존방안 찾아야"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만난 시민 이항수(직장인, 34, 서울 성동구 행당동)씨는 가판대에 부착된 호소문을 유심히 읽고 있었다. 이씨는 "독자는 한정돼 있는데 무료신문이 5∼6개까지 늘어나다 보니 '낭비'라는 생각도 든다"며 "무료신문 시장이 어느 정도 팽창하면 그에 대한 규제도 있어야 가판업자들의 기본 생활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출퇴근시 무료신문을 보고 있다는 이씨는 "하루에 보통 1∼2개의 무료신문을 20∼30분 정도씩 읽고 있는데 최근 광고량이 많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무료신문 급증으로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선정적인 기사도 느는 것 같다"면서 "만화무료신문까지 등장했으니 걱정되긴 한다"고 말했다.

시민 김봉촌(사업, 58, 서울 강서구 화곡동)씨도 닫힌 가판대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 김씨는 "보기 편하고, 볼거리도 있는 무료신문의 출현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며 "큰 (유료)신문의 경우 지면내용이 성실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데다 광고 위주로 제작되니 독자들이 무료신문을 찾는 경향도 있다"고 평했다.

"사실 (유료)신문도 결국 '신문장사'가 아니라 '광고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표현한 김씨는 "그래도 수익을 거두는 큰 신문사들이 기초생활자가 대부분인 가판업자의 생계 정도는 가능하도록 지원책을 강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제안했다.

한국은 '무료신문 전시장'... 200만부 시대
2년새 전국배포망 갖춘 신문 4개...지역에도 속속 등장

무료신문 시장은 2002년 5월 <메트로신문>을 시작으로 지난해 6월 <더데일리포커스>와 같은 해 10월 문화일보 < AM7>, 지난 2월 스포츠서울 <굿모닝서울>, 4월 <메가스포츠>, 6월 <데일리줌> 등으로 창간이 잇따랐다.

또한 세계일보와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등 대부분의 일간지가 각각의 이유로 무료신문 창간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 5월말 발행이 중단된 <메가스포츠>와 지역 무료신문을 제외하더라도 전국 배달망을 갖춘 무료신문만 해도 4개사에 이르고, 그 발행부수만 200만부를 넘은지 오래다.

불과 2년만에 한국의 신문시장은 '무료신문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무료신문에 점령당한 셈이다. 그러나 창간을 준비 중인 무료신문이 아직 있어 앞으로 1∼2개사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의 발행규모는 모두 합해 250만부를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자사 발표를 기준으로 보면 <메트로신문> 50만부, <더 데일리포커스> 70만부, 문화일보 < AM7> 70만부, 스포츠서울 <굿모닝서울> 50만부 <데일리줌> 50만부 등으로 250만부가 넘는다.

이중 <메트로신문>과 <더 데일리포커스>는 발행부수공사인 한국ABC협회에 가입해 정기적으로 발행부수를 보고, 인증받고 있다. 올해 4월 발간된 ABC협회 발행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메트로신문>은 48만 4651부, <더 데일리포커스>는 66만2352부를 발행했다. 그러나 나머지 신문사는 아직 ABC협회에 가입해 있지 않다.

무료신문 범람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곳은 가판 비중이 큰 스포츠신문과 신문판매업계. 스포츠신문은 최근 판매감소를 이기지 못해 지면축소와 발행부수 감소, 구조조정까지 단행할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 가판의 경우 스포츠신문의 경우 판매율이 50%로 떨어졌고, 종합일간지 판매는 거의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집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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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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