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식하려 해도 수술비가 없어

위독한 아버지 앞에서 발 동동 구르는 아들... 병원 "수술 늦으면 위험"

등록 2004.07.05 16:30수정 2004.07.05 20:18
0
원고료로 응원
a 갑작스런 불행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 고석봉, 황명자 부부

갑작스런 불행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 고석봉, 황명자 부부 ⓒ 엄선주

아침 6시. 이 시각이면 어김없이 일어나는 고석봉(52·전북 익산시 남중동)씨. 학교통학버스와 교회버스 운전으로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는 부인 황명자(48)씨와 함께 연탄배달을 한다. 또 한 차례 학교버스 운행을 끝내고 나면 밤 11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두 아들이 있기에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젊은이들이 일하기에도 버거운 긴 시간을 힘든 줄 모르고 버텼다. 너무 피곤하거나, 가끔 절망이 찾아오려고 하면 술 한 잔으로 달래기도 했는데 그것이 피로로 손상된 간에 더욱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셈이 되었다.

작년 5월 13일 간경화로 쓰러져 원광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두 곳에서 몇 개월 넘기기 힘들다는 사형선고를 받고도 계속 일을 해야만 했던 고석봉씨.

중병에 걸려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방치하는 서글픈 인생이 더 많은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어려운 형편에 더 어려운 이웃 돕는 천사 같은 아내

"그동안 풍요롭게 살지는 못했어도 남을 돕고만 살았지, 이렇게 도움을 받을 처지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죠."

남편이 죽어 가는데 손 놓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며 부인 황명자씨는 눈물을 흘렸다. 남편 앞에서도 두 아들 앞에서도 참았던 눈물이었다.


당사자인 남편 고석봉씨에게는 이식수술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말을 전하지 못한 상태고 간이식 기증을 마음먹고 있는 군복무 중인 아들에게도 수술비가 마련되기 전까지 긴급한 상황임은 숨기고 있는 상태다. 알린다 해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에 황명자씨 혼자서만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것.

남편 고석봉씨가 지난 달 6월 13일 또 한 번 병원으로 실려 가고 나서야 수술비 마련에 부랴부랴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신청, 선정을 받게 되었다. 전에도 먹고 살기 빠듯한 형편이었지만 황명자씨는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살았다.


남편과 함께 십 수 년 연탄배달을 하며 알게 된 이웃이기에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이들이었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십일조를 한다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 왔다는 황씨는 "도울 게 뭐 있어야죠. 연탄이나 쌀을 갖다 주고 가끔 돈 생기면 고기도 사다주고. 그것도 힘들 때는 말벗이나 해드리고"하며 겸손해했다.

갑작스런 불행에 생활비조차 형제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상태. 1억 가까이 드는 수술비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그녀다.

아들 "목숨을 준 아버지에게 간이식할 수만 있다면"

막연하게나마 그도 알고 있다. 될 수 있는 한 수술을 빨리 해야 한다는 것을. 공수부대 일병, 앞으로 사회에 나가려면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경제력도 없고 곁에서 위로도 되지 못하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다는 아들 고원제(21·숭실대 전자공학과 휴학·현 군복무중)씨는 "그래도 간을 이식해 드릴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효성 지극한 아들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둘째아들 덕제(19·광운대 건축공학과)씨도 고관절우혈성괴사를 앓고 있어 올 10월에 수술을 앞둔 상태다.

현재 서울아산병원에 입원치료 중인 고석봉씨는 언제 혼수상태에 빠질지 모르는 긴급한 상태며 쇼크가 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간이식수술을 해야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수술을 하려면 당장 8천 8백만원의 큰 돈이 필요하다. 선입금해야 수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역 내 어려운 이웃의 대변인인 이해석 목사는 "고석봉씨를 보면 자식을 위해 힘겹게 살아온 우리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하루라도 빠른 수술만이 그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2. 2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3. 3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4. 4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5. 5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