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딸이 아빠에서 딸부자 됐어요!

10년만의 늦둥이 태어나는 날, 난생 처음 탯줄을 잘랐습니다

등록 2004.08.12 10:31수정 2004.08.12 15:5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태어난 지 5시간만에 처음으로 찍은 늦둥이 얼굴.

태어난 지 5시간만에 처음으로 찍은 늦둥이 얼굴. ⓒ 이종락

나이 44세에 보는 늦둥이, 근 10년만에 보는, 계획에 없던 아기의 출산이었다. 위로 딸만 둘이니 아들을 바라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이미 병원에선 무언의 신호로 딸임을 예고했다. 10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아들임을 암시하는 말이 없었으니 우리 부부는 아들에 대한 기대를 접은 상태였다.


장남으로서 가끔씩 아쉬운 생각도 들었으나 아들, 딸은 하나님이 정해주는 것이고, 늦둥이를 보면 인생이 바뀐다는 소리도 있어 그저 아기가 건강하게만 태어나기를 바랐다.

그런데 출산예정일을 보름 남겨 놓은 어느 날, 의사가 "자궁 밑으로 자리를 잘 잡고 있었던 아기가 거꾸로 서 있다"며 나이 40세인 산모, 즉 아내에게 위험할 수도 있으니 제왕절개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나는 속으로 '자연분만 해도 될 것을 괜히 제왕절개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고, 불쾌하기까지 했다.

가까운 경험자들에게 자문도 구해봤지만 누구도 확신있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고 답변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아내의 노산 등 여러 점을 고려해 고심 끝에 의사의 말대로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난생 처음 직접 탯줄을 자르며 느낀 감동

10년만에 찾아왔다는 폭염에 시달리던 8월 10일, 밤잠을 설쳤다는 아내는 피로와 긴장이 교차된 표정으로 나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나 역시 10개월 동안 잘 커준 늦둥이가 세상에 나온다는 사실에 은근히 설레면서 흥분감마저 느껴졌다.

병원에서 아빠인 내게 아기의 탯줄을 직접 잘라보라고 권하자, 아내는 "이번 아니면 언제 탯줄을 잘라 보겠느냐"며 의사의 말에 따라줄 것으로 제안했다. 내심 긴장이 되면서도 자식 탯줄을 부모가 직접 잘라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수락했다. 모자, 마스크, 가운 그리고 장갑까지 착용한 뒤 분만실 밖에서 호출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아내가 분만실에 들어간지 10분 정도 됐을까?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분만실 밖으로 새어나왔다. 그 직후 난생 처음으로 분만실로 들어갔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는 말을 들었기에, 나는 가위를 받아 의사가 가리키는 탯줄 부위에 가위를 갖다 댔다. 떨렸다. 세상에 나온 아기와 아내는 탯줄 하나로 연결돼 있었다. 피와 양수로 범벅이 된 아기는 웅크린 채 가냘픈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가슴이 쿵쿵 뛰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두 번의 가위질로 탯줄을 끊자 아기는 10개월간 놀던 엄마의 자궁에서 세상 밖으로 완전히 나올 수 있었다. 가위가 시원찮은지 탯줄은 생각보다 쉽게 잘라지지 않았다.

바로 분만실 밖으로 나오니 장인, 장모님, 교회 목사님과 지인들이 모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후 간호사들이 아기를 안고 나오면서 보호자를 찾았다. 세상에 나와 아빠에게 첫 번째 인사를 하는 순간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답지 않게 아기는 제법 매끈한 얼굴이었다. 간호사들은 손가락, 발가락 다섯 개 아무 이상이 없음과 딸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내가 멍하니 보고만 있자 간호사는 “아빠가 한 번 안아 주세요”라며 아기를 내게 건넸다.

3.3킬로그램 핏덩이를 품에 안고 얼굴을 보니 첫째, 둘째를 낳았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깊고도 묘한 감동이 가슴 속에서부터 밀려왔다.

‘그래, 아기야. 내가 아빠다. 그 동안 엄마 뱃속에서 잘 놀았지? 아빠가 잘 키워줄께.’

아내는 누운 채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기는 바로 신생아실로 보내졌고, 대기실로 돌아오자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 아들이야? 딸이야?”
“ 딸이던데요.”

혹시나 하며 내심 아들을 기대했던 장모님은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목사님도 담담하게 딸아이가 더 좋은 점을 강조하면서 나를 위로 하려고 애썼다.

내 머릿속은 온통 쭈글쭈글한 얼굴을 한 늦둥이 생각뿐인데 주변에선 아들이 아니라고 몹시 서운해 했다. 나이 드신 부모님들이 손자를 바라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고 남지만, 이미 태어난 생명을 놓고 실망하면 그것처럼 우매한 짓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아기를 낳기 전, 아내는 태몽으로 귀한 자식을 본다는 '곰' 꿈을 꾸었고, 시어머니는 나를 낳을 때와 거의 같은 복숭아 꿈을 꾸었다고 해서 혹시나 귀한 아들이 나올까 기대했건만, 요즘은 태몽도 과학문명에 밀려 갈수록 확률이 떨어지나 보다.

아내가 아기를 낳은 동안 기도원에 들어가신 본가 어머니는 전화로 딸아이임을 확인하고는 전화상으로도 그 실망이 느껴질 만큼 기운없이 서둘러 전화를 끊으셨다.

그러다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수술 후 1시간 정도 지나 아내가 침대에 누운 채로 분만실을 나오는데, 딸을 낳았다고 계속 우는 것이 아닌가! 이왕 딸이니, 아들은 기대하지 말라고 은근히 나를 압박하며 무던함을 보이던 아내도 혹시나 했었는가 보다.

그 아픈 몸으로 계속 눈물을 흘리니 장모님도 따라서 울었다. 옆에 있던 교회 지인들은 모녀를 위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10년만에 건강한 늦둥이 딸을 봤으면 그걸로 행복해야 될 처지인데,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부드럽게 위로라도 해주라는 말에 나는 "어허, 이 사람 왜 이래? 딸인거 몰랐어? 새삼스럽게…."라며 마음과 달리 다소 퉁박스럽게 한마디 했다.

처음 아내는 수유하라고 신생아실에서 데려온 아기의 얼굴조차 안 보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장손집에 시집와서 아들 때문에 내심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에 없던 늦둥이였지만, 10달 동안 뱃속에서 아기를 키운 산모보다 더 아들을 바란 사람은 없으리라.

그것도 잠시, 억지로 젖을 물리자 아내는 점점 평안함을 되찾았다. 그러면서 하는 한마디가 "에그 고추나 하나 달고 나오지…."였다.

아내가 당분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하루가 무척 바쁘게 생겼다. 그런데도 마냥 즐겁다. 매일 눈앞에 어른거리는 아기 얼굴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른다. 십년만에 찾아온 무더위도 잊을 만큼.

이제 남은 것은 이 험한 세상속에서 딸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나와 아내가 흘려야 할 기쁨의 땀과 수고뿐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내년에 귀농해 하루 종일 흘리고 집에 돌아와 늦둥이와 함께 놀 생각을 하니 행복이 훨씬 더 가까이 와 있는 듯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2. 2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3. 3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4. 4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5. 5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