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잔 하자'의 참의미는 이렇습니다

한국어 교과서 이야기<2> 한국어 교과서 왜곡

등록 2004.10.13 08:21수정 2004.10.1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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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의 교과서에 한국에 대한 왜곡된 내용을 찾고 고치는 운동이 있다고 들었다. 이 일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과서'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외국인들이 한국어 교과서로 한국 문화와 한국 사회에 대해서 인상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했던 한국어 교과서에 왜곡된 내용을 적어볼까 한다.

#1

a Namgui Chang, Yong-chol Kim [Functional Korean (Hollym, 1989)]

Namgui Chang, Yong-chol Kim [Functional Korean (Hollym, 1989)] ⓒ 현빈


베이커: 이 넥타이 얼마여요?
점원: 만 이천 원입니다.
베이커: 저 넥타이는 얼마여요?
점원: 그건 이만 팔천 원입니다.
베이커: 왜 그렇게 비싸요?
점원: 그건 외국산입니다. 한국산은 좀 쌉니다. 품질은 거의 같습니다.
베이커: 한국산 주세요.
점원: 네.


베이커씨가 넥타이를 사러 간 일이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베이커씨가 어느 넥타이를 살까 생각 중이고, 점원이 더 싼 국내산 것을 추천한다. 점원은 가득한 애국심으로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서 자기 몫을 다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 백화점에 가면 이런 일이 아예 없을 것 같다(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점원들이 무조건 더 비싼 것을 추천할 것이다.

내가 안경을 사러 시장에 갔을 때 경험한 것은 베이커씨가 넥타이를 사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외국산 명품 안경이 있었고, 똑같이 생긴 국내산 안경도 있었다.


외국산 안경이 15만원이었고, 국내산 안경은 4만원이었다. 둘 다 써 봤더니 별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점원에게 국내산 안경을 사겠다고 했다. 하지만 점원이 외국산 안경을 가리키시면서 "손님, 다시 한 번 써 보세요. 이거 (외국산) 확실히 다르거든요"라고 설명했다.

내가 다시 써 보았다. 외국산 안경이 유명한 브랜드 라벨이었지만 착용감도 그렇고 거울에 비친 모습도 국내산 안경과 거의 똑같았다.


나는 점원에게 "제가 보기에는 똑같은데 그냥 싼 걸 주세요"라고 했다. 점원은 "싼 걸 끼고 다니시면 손님 이미지도 싸게 보일 수도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괜찮아요. 제가 원래 싼 사람이거든요"라고 대답하자 점원은 아무 말 없이 안경을 내게 주었다. 나는 영수증을 받고 한 시간 후 안경을 찾았다. 난 지금도 그 안경을 끼고 있다.

#2
a Namgui Chang, Yong-chol Kim [Functional Korean (Hollym, 1989)]

Namgui Chang, Yong-chol Kim [Functional Korean (Hollym, 1989)] ⓒ 현빈



여종업원: 뭐 하시겠어요?
베이커: 글쎄요, 저는 불고기백반 하지요.
윤: 저는 갈비 시키지요.
조: 저는 냉면 하겠어요.
여종업원: 불고기백반 하나, 갈비 하나, 냉면 하나요. 음료수는요?
베이커: 맥주 좀 하실까요?
조: 좋습니다.
여종업원: 맥주 한 병이오. 감사합니다.


일행은 세 명인데 맥주를 한 병밖에 안 시켰다. 이것은 한국에서 비현실적인 상황이다. 소주 한 병이라면 이해되지만 세 명이 있는데, 맥주 한 병만 시킨다는 것은 매우 왜곡된 내용이다.

이것을 보고 한국에 가서 '한잔 하자'를 문자 그대로 파악하는 외국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외국인은 불쌍하다. 내가 한국에 온 지 며칠 안 돼서 '한잔 하자'의 참의미를 깨달았다.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한국 사람은 한잔 하자고 하면 원래 '삼겹살 먹으면서 소주를 마시고, 소주를 마시다가 호프집에 가서 맥주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다가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부르다가 포장마차에 가서 닭똥집을 먹으면서 소주를 또 마시고, 소주를 마시다가 너무 늦어서 택시를 못 잡고 집까지 걸어가면서 노래를 또 부르고, 걸어가다가 너무 피곤해서 길거리에서 푹 자다가 사우나에 가서 해장하고…'하자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 말이 너무 길어서 '한잔 하자'로 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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