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교실 아이들은 서로 비교 안해요"

익산YMCA, 결식아동에게 저녁무료급식·다양한 교육기회 제공

등록 2004.10.15 13:48수정 2004.10.2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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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저녁식사 전 감사기도를 하고 있는 아이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묻어난다.

저녁식사 전 감사기도를 하고 있는 아이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묻어난다. ⓒ 모형숙

아침 8시 10분 등교한 보영이(가명·초등 5년)는 점심을 학교 급식으로 해결하고 오후 2시가 되면 익산YMCA 파파교실로 발길을 돌린다.

예전에는 학교가 끝나면 운동장에서 놀기도 하고 집에 가서 멍하니 있기가 일쑤였으며 엄마가 늦게 오는 날에는 밤 9시에 저녁밥을 먹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배가 고파 대형 마트 시식코너에서 저녁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보영이는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에 갈 수 없고 제때 저녁밥 먹기가 힘든 집의 상황을 원망하기도 했다.

보영이는 '파파교실'이 좋다. 비슷한 또래 아이들과 공부를 하고 있다보면 '비교'라는 단어를 금방 잊을 수가 있고 다른 아이들이 하고 있는 수영부터 종이 접기, 노래 부르기 등을 배울 수 있어서이다.


한부모(편모 혹은 편부) 저소득 가정 아이들이 모인 전북 익산YMCA 파파교실은 현재 어린이 35명이 꿈을 키워 가는 곳이다. 지난 2001년 10월 만들어진 파파교실은 'IMF 경제난'과 맞물리며 결손아동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생겨난 공부방이다.

파파교실이라고 하면 으레 아빠교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파란 꿈 파란 마음 방과후 교실'을 줄인 말이다. 'IMF'라는 현실 속에서 한창 꿈 많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파란 생각만큼 시원하고 긍정적인 사고라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a 파파교실 아이들은 오후 5시 30분부터 저녁식사를 한다.

파파교실 아이들은 오후 5시 30분부터 저녁식사를 한다. ⓒ 모형숙

파파교실은 환경이 열악한 한부모 저소득가정 초등학생 자녀들이 방치되고 유해 환경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방과후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학교 교육을 보완, 학습능력을 향상시키며 사교육비 절감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또한 결식아동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저녁무료급식을 실시하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올바른 마음으로 밝은 생활을 해 나가도록 돕는 교육의 장이다.


특히 전문상담을 통해 빈곤아동의 자존감을 높이고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자원봉사를 통해 나눔의 마음을 키우는 야외활동과 캠프활동으로 공동체 정신을 함양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한번 식구가 된 아이들을 경제적 여건이 어렵다는 이유로 나오지 말라고 할 수 없지요."


파파교실 실무를 맡고 있는 양경이 간사는 파파교실을 만들 때 망설임이 많았다고 한다. 뜻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예산문제로 중간에 그만둘까봐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양 간사는 "아이들을 선발할 때 동사무소와 교사들의 추천을 받고 직접 방문해 부모님과 상의하는 형식으로 모집하고 있다"며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고루 혜택을 줬으면 좋겠지만 경제적인 여건이 어렵다 보니 그럴 수 없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a 방과후 학습시간에는 선생님들과 종이접기, 음악, 체육, 미술 등 다양한 교육을 하고 있다.

방과후 학습시간에는 선생님들과 종이접기, 음악, 체육, 미술 등 다양한 교육을 하고 있다. ⓒ 익산YMCA

파파교실은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제일 중요한 교육 과제로 하고 있으며, 가족처럼 지내는 통합 교육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대체로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루어지는 교육은 숙제 지도 및 학습지 지도부터 영어, 종이접기, 독서지도, 미술지도, 생활지도 등 특별활동이 있으며, 매월 자원봉사활동과 자치회의, 자연학습(야외활동)이 진행되고 1년에 2번씩 캠프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파파교실 아이들은 공동체를 배워가면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자치회의를 개최한다. 주제는 너무 교실에서 떠들기 때문에 조용히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 등 다양하다.

또 받는 것에만 익숙하다 보면 자립심이 결여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해, 종이 접기한 내용물을 지체장애인과 나누기도 하고 공원이며 엘리베이터, 화장실을 손수 청소하기도 한다.

a 익산YMCA 앞에 위치한 공원에서 체육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익산YMCA 앞에 위치한 공원에서 체육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 익산YMCA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다보니 어려움이 많아 지난해 11월 후원회를 결성, 현재 후원회원 240여명과 후원운영위원 15명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교사들 인건비를 제외하고 한 아이당 순수한 급식비와 재료비로만 월 5만원 정도가 소요돼 한 달에 최소 175만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지켜주는 회원들이 있지만 아직도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관심과 따스한 손길이 절실한 형편이다.

이영숙 후원운영위원장은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는 초기에 제대로 잡아주어야 커서도 제대로 잘 큰다"며 "아이들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가져야 어른이 되어서도 제대로 사회를 이끌어 간다"고 말했다.

'사랑 나눔 일일행사' 15일 오후 1시부터 열려

익산YMCA 파파교실에서는 15일 오후 1시부터 익산 모현동에 위치한 러브스토리(구 보건소 앞) 레스토랑에서 한부모 저소득 가정 자녀를 위한 '사랑 나눔 일일행사'를 전개한다.

익산YMCA 파란 꿈 파란 마음 교실 운영위원회의 주최로 마련된 이날 행사는 차와 함께 하는 자리로 북한의 특산품도 선보인다.

또한 이날의 수익금은 경제적으로 열악한 한부모 저소득 가정 초등학생 자녀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과 함께 저녁 무료급식을 하는 데 쓰여진다.

다음은 파란 꿈 파란 마음 후원운영위원회 이영숙 위원장 일문일답.

a 익산YMCA파란꿈 파란마음의 후원운영위원회 이영숙 위원장

익산YMCA파란꿈 파란마음의 후원운영위원회 이영숙 위원장 ⓒ 모형숙

- 오늘(15일) 사랑 나눔 일일행사가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행사를 마련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한부모 저소득 가정에서 어쩌지 못하고 힘들게 자라는 아이들이 있다. 대체로 이곳에는 엄마와 지내는 아이들이 많다. 일이 늦게 끝나 늦을 때면 아이들이 저녁을 거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마련한 것이 파란 꿈 파란 마음이다. 오늘 수익금은 전액 빈곤아동의 저녁무료급식과 교육에 사용하게 된다."

- 파파교실을 어떻게 하면 이용할 수 있는가.
"아직은 경제적 여건이 부족해서 오고 싶은 사람들을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일단 동사무소와 교사들의 추천을 최우선으로 하고 파파교실의 실무자가 가정방문을 통해 상담을 하게 된다. 한부모 저소득 가정 자녀이면 가능하다. 도움 없이 순수하게 자체적으로 운영하다보니 예산 부분에서 어려운 점이 많다."

- 후원회원들은 어떤 사람들로 꾸려지고 있으며 언제가 가장 보람되는가.
"일단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구성됐다. 관심이 있기 때문에 참여했겠지만 작은 뜻이 모여 아이들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아이들이 파파교실을 통해 사랑을 나누는 것을 배우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터득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아이들이 자원봉사 하는 모습, 누구보다도 씩씩하고 밝은 모습을 볼 때가 좋다."

[취재후기] 결손가정 아이들을 방치해선 안돼

몇 달 전에 자식 셋과 엄마가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은 사건이 있었다. 죽지 않겠다고 매달리는 자식을 외면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 돈 때문이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급기야 선택한 길이 죽음이었다.

그 사건 이후 아이의 엄마가 너무 매몰찼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모진 엄마라는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 가슴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기도 했다.

만약 사회복지가 제대로만 운영되고 있었더라면 이런 모진 경우가 있었을까 반문해 본다. 사실 나라에서 운영하는 복지단체들은 관심을 가지고 눈을 돌려야 알아볼 수 있고 설사 이런 단체들을 알아냈다 한들 이용하기도 참 어렵다. 서류준비며 갖추어야할 조건이 까다롭다는 얘기이다.

갈수록 세상은 각박해지고 있다. 결손가정이 늘어가고 생활고에 자살을 선택하는 이웃도 있다. 그래도 GDP 2만달러시대란다.

취재 간 날 아이들은 참 밝고 씩씩해 보였다. 기자 언니가 왔다는 소리에 한데 모여 서로 인터뷰하겠다는 의욕을 보이며 해맑은 웃음을 던졌다. 예뻤다. 어른이 되어 나라를 지키는 여군장교가 되겠다는 아이, 선생님이 되겠다는 소박한 희망들.

한 그루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는 초기에 제대로 잡아주어야 커서도 제대로 잘 큰다는 이영숙 후원위원장의 조언. 어릴 때 올바른 심성을 심어주면 커서는 누구의 도움 없이도 바르게 자랄 수 있다는 얘기이다.

경제가 어렵고 각박해지는 현실은 아이들의 책임이 아니다. 앞으로 좀더 나은 세상을, 좀더 희망찬 미래를 꾸려나갈 원동력이 아이들이다. 사교육비만 가중시키고 입시 위주의 교육체제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회 현실에 경종을 울려야 할 때다.

아이들에게 거는 투자, 돈이 없어 여건이 허락하지 못해 거리에서 방황하는 일은 제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아직 순수해야할 아이들이 잘못된 사회 구조 속에서 방치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 모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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