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라는 원고지에 적는 역사의 그림자

<내 추억속의 그 이름 200> 연재기사 200회를 되돌아보며

등록 2004.10.25 14:12수정 2004.10.2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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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내 어릴 적 추억처럼 발갛게 매달린 감

내 어릴 적 추억처럼 발갛게 매달린 감 ⓒ 이종찬

<내 추억속의 그 이름>이 어느덧 200회가 되었다. 내 어린 날의 아름답고도 슬픈 기억의 순간들을 글로 남기고자 시작한 <내 추억속의 그 이름>은 지난 2002년 6월 25일 '희망을 물고 날아오르던 그 새-물총새'를 첫 기사로, 그동안 무슨 일이 생기는 날을 빼고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반드시 한 꼭지씩 썼다.


그동안 나는 <내 추억속의 그 이름>이란 제목을 달고 참으로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름대로 솔직하게 끄집어내려 애썼다. 사실, 툭하면 나오는 탱자나무 울타리집 그 가시나와의 이야기(첫사랑인지 짝사랑인지는 잘 모르지만)는 어쩌면 나 혼자서만 가슴 깊숙이 꼭꼭 묻어두고 있었어야 할 그런 아름다운 기억일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봉림삣쭉'이나 '앵금통'으로 불리던 내 고향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 조심스러웠다. 왜냐하면 그 분들 모두 창원공단 조성으로 고향을 잃어버렸지만, 지금도 엄연히 살아계시고 그 자식들 또한 이제는 그 분들 나이가 되어 간혹 나와 만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설령 그 분들과 그 분들 자식들에게 해코지를 당한다 하더라도 그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 세월이 계속 흘러가다보면 자칫 그 아름답고도 가슴 아팠던 이야기들, 1960~70년대 창원 동산마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그 쓰라린 기억들이 영원히 묻혀버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 독특한 말씨, 그 아름다운 풍경, 그 처절하고도 고된 삶…. 그러한 옛 창원의 역사적 사실들이 그대로 고스란히 사라진다면 이 또한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겠는가.

내가 태어나 자란 동산마을의 이야기는 대부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가물거리는 기억을 되새김질한 글이다. 그런 까닭에 그 기억의 흔적들이 하도 오래 묵은 것이어서 실제 있었던 일과 조금 다르게 씌여진 글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그 동무들이 그 글을 읽으면서 '흥'하면서 콧방귀를 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때 그 동무들도 나와 간혹 만나기라도 하면 그때 그 이야기부터 먼저 내뱉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 동무들도 - 비록 똥구녕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지만 - 서로 이웃사촌하며 살갑게 살았던 그때가 몹시 그리웠던 것이다. 지금처럼 돈 몇 푼 때문에 아옹다옹하지 않고 정구지전(부추전) 몇 장을 구워도 나눠먹었던 그 넉넉함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 말이다.

2003년 7월 10일부터 지난 7월 22일까지, 모두 44꼭지의 글로 마무리 한 <공장일기>는 이와는 조금 다르다. <공장일기>는 제법 머리가 굵어진 스무 살 시절, 내가 창원공단에 취직을 하여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생생한 체험담이다. 그때 나는 현장 노동자들의 시커먼 삶과 식∙의∙주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만 본 것이 아니었다. 내가 태어나 자란 동산마을이 포크레인과 불도저의 삽날 아래 가차 없이 무너지는 그 현장도 함께 지켜보았다.

<공장일기>에 이어 지난 7월 28일부터 새롭게 연재를 시작한 <서울일기>는 내가 문학에의 꿈을 품고 8년 남짓 다녔던 공장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가 겪었던 이야기들이다. 이제 10꼭지를 쓴 <서울일기>는 아직까지 내가 서울생활에 갓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다. 그러나 <서울일기>는 곧 1987년 유월항쟁을 기점으로 내가 <민족문학작가회의>에 들어가 겪었던, 문학동네의 알토란같은 이야기들로 꼭꼭 채워질 것이다.


그 당시 문인들의 삶은 어떠했으며 국가보안법이란 괴물이 문인들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말살했는지, 그 국가보안법이란 괴물 때문에 옥중에 갇힌 문인들이 겪은 고통과 수난 그리고 옥중문인의 석방과 군부독재정권의 청산,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서 문인들이 어떻게 싸웠는가에 대한 그런 이야기.

"인제, 연재기사 제목을 다른 이름으로 한번 바꿔보지 그래. 같은 이름으로 너무 오래 가면 독자들이 식상할 수도 있지 않겠어?"
"글쎄요. 독자들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 나름대로는 더 좋고 맛난 양념으로 나물을 무치고 더 질 좋은 햅쌀로 밥을 지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긴 매일 밥을 먹지만 결코 물리는 법은 없지."

간혹 나를 아끼는 주변사람들은 내게 <내 추억속의 그 이름>이라는 연재 기사의 제목을 한번쯤 바꾸어보라는 따뜻한 충고를 잊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햇수로 삼년째 노리개처럼 소중하게 달고 다니는 <내 추억속의 그 이름>이란 제목을 결코 바꾸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아직도 내가 불러주어야 할 잊혀진 이름들이 너무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 추억속의 그 이름>은 300회, 400회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매주 월요일에는 지금도 흑백필름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의 한 순간들이, 매주 목요일에는 내가 만난 문인들의 숨은 뒷얘기들이 실루엣처럼 아스라이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들은 <오마이뉴스>라는 원고지에 역사의 그림자로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오마이뉴스>라는 원고지가 내 앞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오마이뉴스>라는 원고지가 없었더라면 나는 <내 추억속의 그 이름>이란 제목으로 200꼭지나 되는 엄청난 추억의 그림자를 남기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기록들을 통해 다시 한번 나 자신의 모습을 차분히 비추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내 추억속의 그 이름>이여, <오마이뉴스>와 함께 영원히 빛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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