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복 보도' 조작의혹 제기는 무죄"

법원 "의혹 제기는 공익성 인정하지만 <조선> 보도는 사실기초"

등록 2004.10.28 14:19수정 2004.10.2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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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허위조작' 논란의 대상이 된 조선일보 68년 12월 11일자 <"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항거 입 찢어”> 기사.

'허위조작' 논란의 대상이 된 조선일보 68년 12월 11일자 <"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항거 입 찢어”> 기사. ⓒ 조선일보 PDF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강형주 부장판사)는 28일 조선일보의 1968년 12월 11일자 「"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항거 입 찢어"」 기사를 허위·조작이라고 주장해 기소된 김주언 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에게 징역 6월이 선고된 원심을 깨고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이와 관련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월이 선고된 김종배 전 <미디어오늘> 편집장에게는 "진실이라고 믿었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공익성이 인정된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종배 전 편집장에 대해 "해당 기사를 쓴 조선일보 기자 인터뷰를 시도하고, 다른 방법으로 사건 관계자 인터뷰를 한 것으로 볼 때 조선일보 기자가 현장취재 없이 기사를 작성했다고 믿었을 만한 상당한 이유와 공익성이 인정된다"며 "허위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인정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김주언 전 사무총장에 대해 "충분한 확인없이 김 전 편집장 기고 하나만으로 '오보 전시회' 등을 통해 이승복군 보도가 허위라고 주장한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전 사무총장의 의혹 제기는 언론계에서 꾸준히 있던 것으로 전혀 근거 없지 않다"며 "그 취지도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으로 인정되므로 감형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사무총장은 재판 뒤 상고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측 상고 의사는 28일 오후 현재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조선> 허위보도 여부는 뜨뜻미지근한 판결 되풀이

한편 재판부는 조선일보의 이승복군 보도 허위여부와 관련해서는 민사소송과 마찬가지로 뚜렷한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법원은 지난 6월 조선일보가 두 사람을 상대로 제기한 2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도 "사건은 사실로 인정되나 의혹제기을 할 만한 상당한 이유와 공익성이 인정된다"며 원고측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28일에도 역시 "조선일보가 제출한 이승복 일가 학살사건 현장사진과, 이승복의 형 이학관씨 증언, 이승복 사체 사진에서 입이 찢어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당시 조선일보 기자가 현장에 없었다고 볼 수도, 이승복이 무장공비들에게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사건현장에 있던 증인이 언론 인터뷰와 검찰조사 등에서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고 여러 증거에 비춰 이 진술이 허위라고 보기는 어려워 이승복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는 보도는 사실에 기초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언론계 관행상 조선일보가 특종인 현장사진을 다른 언론사로부터 받았다고 보기 어렵고 취재기자가 이승복군 가족에 대한 측은한 마음에 시신을 직접 들춰보지 않았다는 진술이 거짓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면 조선일보 기자들도 현장에 직접 갔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재판장 김상균 부장판사)는 이보다 앞서 지난 6월 16일 판결에서 "이승복 사건은 진실일 가능성이 매우 크고 당시 조선일보 기자들이 현장취재를 한 것은 사실로 인정된다"고 밝혔으나 "그러나 이승복 사건이 의혹조차 제기할 수 없는 절대적 대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규정했다.

재판부는 당시 "설령 피고들이 이승복 사건의 실체와 성격을 희석시키기 위해 조작 의혹을 제기하였다고 해도 언론·표현의 자유에서 용인되는 범위의 '있을 수 있는' 의혹제기"라며 "조선일보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후 조선일보는 항소했다.

조선일보와 이승복 사건 진실 논란
<조선> "현장취재했다"...목격자 "군경과 주민 증언토대로 작성"

'이승복 사건'은 68년 12월 9일 울진·삼척을 통해 침투했던 북한측 남파공작원 5명이 강원도 평창군의 한 시골 오지마을에 숨어 들어갔다가 어머니 주대하(당시 33세), 차남 승복(당시 10세), 3남 승수(당시 7세), 4녀 승녀(당시 4세) 등 4명을 살해한 뒤 아버지 이석우(당시 35세)씨와 장남 승권(당시 15세, 호적상 이름은 '학관')군 등 2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도주한 사건이다.

조선일보는 이와 관련, 68년 12월 11일 3면 머릿기사 「공비, 일가 4명을 참살/"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항거 입찢어」를 통해 이틀 전 남파공작원에게 살해당한 승복군이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며 유일하게 항거하다가 죽임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또 "장남 승원 군에 의하면 강냉이를 먹은 공비들은 가족 5명을 안방에 몰아넣은 다음 북괴의 선전을 했다. 열 살 난 2남 승복 어린이가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얼굴을 찡그리자 그 중 1명이 승복 군을 끌고 밖으로 나갔으며 계속해서 주 여인을 비롯한 나머지 세 자녀를 모두 끌고 나가 10여m 떨어진 퇴비더미까지 갔다. 공비들은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벽돌만한 돌멩이로 어머니 주 여인의 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쳐 현장에서 숨지게 했으며 승복 어린이에게는 '입버릇을 고쳐 주겠다'면서 양손가락을 입속에 넣어 찢은 다음 돌로 내리쳐 죽였다"고 상세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증언자들에 따르면 사건 발생 뒤 당시 중앙·지방신문사 기자들은 10일 낮쯤 현장에 도착했고, 이미 출동해 있던 군·경에 의해 사체들은 수습됐고 중상자들은 혼수상태에 빠져 인근 병원으로 실려간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자들은 군·경과 인근 주민들의 증언 및 참사 현장 등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해 송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92년 김 전 국장은 사건의 유일한 현장 목격자인 장남 승권씨 증언을 토대로 "조선일보 기자를 만난 적이 없다"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저널리즘> 가을호에 기고했다. 승권씨는 동생 승복 군이 살해된 뒤부터 원주에 위치한 병원에 후송되기까지 사건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전 국장은 이를 근거로 조선일보의 68년 기사의 취재원이 승권씨였다는 점에서 당시 보도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이와 관련, 나중에 "승권 씨를 '승원 군'으로 표기한 것은 오기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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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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