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가 패배한 8가지 이유

등록 2004.11.09 08:10수정 2004.11.0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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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이 끝난 지금 미국 언론 매체들은 이른바 전문가들을 등장시켜 승산이 상당히 많다고 보았던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참패한 이유를 분석하고 있다.

필자는 선거 후 5일간 미국 신문들과 방송을 읽고 본 것을 토대로 케리가 실패한 이유를 대체로 다음 8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1. 미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안보문제였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완전히 달라졌다.

독립 초기에 있던 영국군과의 소규모 전투 이후 처음으로 미국 본토가 적의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에 미국민은 경악하고 있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라크 전쟁도 수행하고 있다고 미국민은 믿고 있다.

특히 전국의 어머니들이 사커 맘(soccer mom 자녀들의 축구 경기에 따라 다니는 엄마)에서 시큐러티 맘(security mom 자녀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엄마)로 바뀌어가고 있는 판국에 케리가 눈치도 없이 이라크 전쟁을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장소에서 벌인 잘못된 전쟁"이라고 비난한 것은 치명적 실수였다.

그렇지 않아도 강을 건너다가 말을 바꾸어 탈 수는 없다는 속담처럼 부시가 시작한 전쟁은 부시가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미국민들이 하고 있던 참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이 투표일 직전 미국과 부시 대통령을 맹렬히 비난하는 녹화 테이프를 방영한 것도 부시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게 미국 언론의 일치된 의견이다.

2. 테러에 대한 공포 다음으로 중요한 미국민들의 관심사는 '도덕적 가치'였다.

미국은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미국은 기독교 국가다. 전 국민의 60% 이상이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간다.

a 유세 도중 지지자들에게 화답하는 존 케리 민주당 후보

유세 도중 지지자들에게 화답하는 존 케리 민주당 후보 ⓒ AP/연합

기독교인들은 몇 달 전 매사추세츠 주 대법원이 동성간의 결혼을 합법화한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기독교로 보면 동성애는 죄악이며 동성간의 결혼이란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로 보고 있다.


하필이면 케리 후보의 출신 주인 매사추세츠 주에서 이런 판결이 나와 케리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했다. 매사추세츠주 법원 판결에 놀란 기독교인들은 11개주에서 동성애 결혼을 금지하는 개헌 찬성안을 내놓았다. '죄를 회개하고 거듭난 기도교인'을 자처하는 부시는 이것을 호재 삼아 동성결혼금지 개헌추진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그것은 보수 기독교 층에 먹혀 들어갔다.

부시를 지지한 보수층이 중시하는 도덕 가치에는 생명을 죽이는 낙태 반대, 난치병 치료 연구에 태아 줄기세포 이용하는 것 반대, 국가에 대한 충성의 맹세에서 '신의 가호 아래'란 구절을 삭제하는 것 반대 들이 포함된다. 이 모두 부시가 주장하는 것들이었다.


3. 케리 진영은 미국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라고 오판했다.

케리는 부시 정권 아래서 미국의 일자리가 임금이 싼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른바 아웃소싱(outsourcing) 때문에 미국에 실업자가 늘었으며, 막대한 재정 적자에도 부시 정권은 부자들에게만 유리한 감세 정책을 강행해서 중산층의 세부담만 늘렸다고 맹공격하고, 연간 20만달러 이상 고소득자에게 무거운 세금을 매기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그러나 웬만한 자영업자들은 대부분 연간 소득이 20만 달러를 넘기 때문에 이 공약은 상위권 중산층의 반발을 샀다. 케리는 미국 경제가 클린턴의 민주당 정권 때보다 훨씬 더 나빠졌다고 공격했으나 실제는 미국의 경제가 케리가 말하는 것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이고, 미국민들도 그렇게 피부로 느끼고 있다.

유류 가격이 오른 것이 부시에게 좀 불리하게 작용하긴 했어도 유가 상승이 전적으로 부시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것이 미국 소비자들의 생각인 것 같다.

4. 케리는 미국에 의료보험이 없는 가구가 450만이나 된다면서 자기가 집권하면 의료보험 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도록 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재원 마련 방안을 위한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한편 부시는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이 많은 것은 보험료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며, 보험료를 인하하기 위해서는 의료 사고에 대한 환자들의 소송을 줄이고, 피해보상금액에 일정한 한도를 둬야만 의료보험료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의료보험제도의 개혁을 약속했다. 이로 인해 엄청난 의료사고보험료 때문에 폐업까지 할 지경이 된 많은 의사들과 의료 종사자들이 부시를 지지했다.

케리는 또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가 혜택을 받지 못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으나 역시 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해결책이 없기는 부시 진영도 마찬가지였다.

5. 케리가 자신을 월남참전 영웅으로 부각한 것이 큰 실수였다.

케리는 부시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부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라크를 침공해 후세인 정권을 붕괴한 데는 성공했지만 저항세력의 봉기를 예상하지 못해 이라크에서 고전하고 있다" 며 부시가 군 통수권자 자격이 없다고 공격했다.

이와 함께 케리는 월남전에 참전한 자신이야말로 새 군 통수권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하러 올라오자마자 군대식 거수 경례를 하고 "나는 존 케리입니다. 복무차 왔음을 신고합니다"하고 외쳤다.

그러자, 옛날부터 케리를 증오하고 있던 일부 월남참전용사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옛 군대 동료들은 "케리가 월남전에서 4개월 만에 돌아온 후 월남전 반대운동을 벌이면서 월남에서 미군이 민간인을 학살한다는 과장된 주장으로 반역 언동을 했다"고 주장하며 케리가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베스트셀러 책을 출판하고 또 TV 광고를 연거푸 내보냈다.

이들 반 케리 참전용사들은 케리가 대단한 전공을 세운 것도 없는데 무공훈장을 2개나 받았고 또 가벼운 부상을 당했을 뿐인데도 상이 훈장을 3개나 받은 것에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케리측은 이들 참전용사들이 부시 진영의 사주를 받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했지만 유권자들의 일부는 케리의 정직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들 참전 용사들은 케리가 선거전략의 하나로 자기를 월남전 영웅으로 만들려 하지만 않았어도 자기들이 반 케리 운동을 전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케리는 자기 칼로 자기를 찌르는 실수를 범한 꼴이 되고 말았다.

한편 부시 진영은 케리가 걸프전을 반대했고, 이번 이라크 전쟁도 초기에는 찬성했다가 나중에는 반대하는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였다며 그에게 '변덕장이'란 별명을 붙였다. 이 별명은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a 당선 확정 후 전화를 받으며 활짝 웃는 부시 미 대통령

당선 확정 후 전화를 받으며 활짝 웃는 부시 미 대통령 ⓒ AP/연합

6. 케리를 지원하는 소위 진보주의자들의 지나친 부시 공격이 역효과를 나타냈다.

<화씨 9/11>이라는 반 부시 기록 영화를 만든 마이클 모어, 부시의 예비군 복무 태만을 폭로하는 문서가 조작된 것인 줄도 모르고 입수하여 '특종보도'한 CBS와 댄 래더 앵커, 지나치게 부시를 공격하고 케리를 편든 <뉴욕타임스> 그리고 부시 대통령의 이름을 가지고 음담패설까지 한 흑인 여배우(커미디언) 우피 골드버그. 이들의 도를 넘은 행동은 일반 국민 특히 보수층의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7. 케리 진영은 징병제 부활을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이 대부분 케리 지지자라고 판단해 주로 젊은 층을 대상으로 신규 유권자 등록운동을 전개, 많은 젊은이들이 유권자 등록을 하도록 유도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막상 그들을 전부 투표소로 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반대로 부시 진영은 이미 유권자 등록을 몇 년 전에 하고도 귀찮아서 투표하러 나오지 않던 전통적 공화당 지지층의 명단을 확보해 이들 중 상당수를 투표소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8. 부시 대통령이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현모양처 형 부인과 두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데 비해 케리는 두 딸을 낳은 조강지처와 이혼하고 죽은 재벌 친구의 부인과 재혼해 일반 국민들에게는 그렇게 썩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케리는 워싱턴에서 수 백 만 달러짜리 호화저택에 살고 있는데 이것 말고도 집 여섯 채가 도처에 더 있다고 알려져 서민들의 반감을 샀다. 게다가 대선 기간 중 그가 서민들은 꿈도 못 꾸는 윈드서핑 같은 귀족적 오락을 즐기는 것이 보도되어 '저런 부자가 우리 같은 서민 사정을 알아줄까' 하는 의구심을 일으켰다.

또 억만장자답게 좀 오만한 인상을 주는 케리의 부인 테레사 하인즈(하인즈 케첩 재벌 미망인)가 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 기자에게 육두문자를 써서 말썽이 된 것, 또 나중에 사과는 했지만, 테레사가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는 평생 제대로 된 직업 한번 가진 적이 없다고 발언한 것도 케리 후보에게는 감표로 작용했다. 케리 참모들이 터레사의 입을 막으려고 애를 썼다는 후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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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후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 중 대한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흉일"당선. 미국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대학원 역사학과 연구조교로 유학, 한국과 미국 관계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사 연구 후 미국에 정착, "미국생활영어" 전10권을 출판. 중국, 일본서도 번역출간됨. 소설집 "전쟁과 사랑" 등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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