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한 편의 코미디를 감상하다

울산지법의 조승수 의원 선거법위반 판결을 보고

등록 2004.12.30 17:04수정 2004.12.3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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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선거운동이라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울산 북구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에게 1심 재판부인 울산지법은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세밑 한 편의 '법의 코미디'를 보는 심정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사실 확인부터 해보자. 2004년 총선 당시 조승수 후보는 지역의 현안인 음식물자원화시설 설치문제와 관련하여 국회의원 예비후보로서 입장을 밝히고 자필서명을 했다는 이유로 선거법 위반으로 지난 9월 24일 기소된 바 있다.

음식물자원화시설 설치문제는 당시 지역의 오래된 현안이었고 주민들 역시 출마가 예상되는 모든 예비 후보에게 이 문제에 대한 입장표명을 요구한 사안이었다. 이에 당시 조승수 예비 후보는 다른 예비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바가 있다.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요구가 정책결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이를 집단적이고 명시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을 대표하려는 후보자들에게 요구하고, 후보자들은 이러한 요구에 적극 따르는 것, 주민들과 정치인들의 이러한 '상호작용'은 있어서가 문제가 아니라 없어서가 문제인 지극히 상식적인 정치행위이자 정당활동이 아닐까?

그것도 가장 공개적이고 전면적이며, 또한 압축적인 정치행사인 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선관위에 등록된 예비 후보자에게는 이러한 상호작용이 더 더욱 일상적인 정치행위이자 정당활동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준엄한' 법의 논리는 다음과 같은 판결로 이어진다.

"피고인이 선거를 앞두고 주민들의 음식물자원화시설 반대 집회에 참석해 시설 건립을 막겠다고 약속한 것은 통상적인 정당활동으로 볼 수 없고 당선을 목적으로 하는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

"피고인이 (민주노동당의) 드문 지역구 당선자로 상징성이 크지만 집회에서 유인물을 낭독하고 서명해 주민의 지지도가 반전되는 등 결과적으로 선거에 미친 영향이 크다."

특정 정당의 후보가 선거를 맞이하여 지역 현안에 대하여 입장을 밝히는 것이 '통상적인 정당활동'이 아니라면, 또한 그 후보가 이러한 정당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지지도를 반전하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행위가 불법적인 행위라면, 우리같은 힘없는 민초들은 과연 어디서 '정치라는 것'을 대면할 수 있을까? 또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서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을까?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진지한 사람의 행동이 의외의 '코미디'를 연출하기도 한다. 당시 선관위나 경찰조차도 문제제기하지 않던 사안에 대해서 도가 지나친 진지함으로 임하는 울산지법의 판결도 이와 같지 않을까?

2004년 느즈막 멀리 동남아의 비극과 가까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회적 타살'은 작아진 우리를 더욱 작아지게 한다. 요새 우리의 '실용주의 대통령'은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고도 말하고 '우선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겠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군은 돌아올 기약이 없고, 어느 재개발지구 모퉁이에는 쓰러진 보금자리 앞에서 슬픈 눈물을 쏟아내는 어린 자매의 쓰리도록 추운 모습이 렌즈에 잡힌다.

진지하신 법이여! 당신이 준엄해야 할 곳은 바로 저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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