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도진순의 <백범일지>

등록 2004.12.30 18:51수정 2004.12.3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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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치고 백범 김구 선생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가슴이 끓어오름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백범 김구, 구한 말에는 동학의 아기 접주로, 일제 36년간은 민족해방의 지도자로, 해방공간에서는 민족통합의 통일론자로 치열한 삶을 살았습니다.

<백범일지>는 김구 선생이 쓴 독립 운동의 기록입니다. 서문에서 밝히듯 그는 두 아들을 위해 이 일지를 썼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이기에 이 일지를 남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지는 그렇게 단순한 일지가 아닙니다. 이 일지는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했지만 기실 그 내용은 민족의 국권 회복을 위해 씌어졌음이 틀림없습니다.

백범은 '백정 범부'라는 뜻입니다. 백범은 스스로 자기를 백정이라 낮추어 불렀고 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행세하려 했습니다. 그의 이런 면모는 상해임시정부에서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그는 상해임정의 문지기를 자청했고 굳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이승만 등의 분파 행위에 분개하며 민족의 대동단결을 외치기도 했습니다. 백범은 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한인애국단을 결성하여 일본군에 대항했고 이봉창과 윤봉길로 하여금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국 땅에서의 독립운동은 지난한 행군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노숙상찬은 그의 일상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는 민족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탄압이 거세어질 수록 그의 민족해방운동은 더 가열차게 전개되었습니다. 백범의 위대함을 우리는 여기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백범일지>는 분명 살아있는 역사서입니다. 우리 민족의 바이블이기도 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백범일지>를 권합니다. 애국을 먼 데서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백범일지>에서 애국을 찾으면 됩니다. 벌써 해방 59년입니다. 강산이 변했으면 벌써 여섯번을 변했을 그런 세월입니다.

자, 우리 모두 주위를 둘러봅시다. 아직도 친일파와 그들 후손들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음을 발견할 겁니다. 청산되어야 할 친일잔재들이 오히려 더 큰 세력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음도 목도할 겁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백범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일제 36년이었노라고 말입니다. 다시 역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백범에게 가장 불행했던 시절은 해방 공간이었노라고 말입니다. 통탄할 노릇입니다. 어찌 백범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국내에는 여러 종류의 <백범일지>가 나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돌베개에서 출간된 도진순의 <백범일지>가 단연 주목을 끕니다. 가장 원문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정확한 주해와 풍부한 사진들이 이 책의 가치를 더해줍니다.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에게 일독(一讀)을 권합니다.

백범일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백범 김구 자서전

김구 지음, 도진순 주해,
돌베개,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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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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