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친구를 찾습니다

등록 2004.12.31 11:42수정 2004.12.3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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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감인가'

전에 없이 한 친구가 보고 싶다. 그러면서도 나이 탓으로 돌리기엔 어쩐지 거북스런 마음에, 그냥 한 해를 보내기가 아쉬워서라고 할까?

어쨌든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면서 그동안 잊고 지낸 게 신기하리만치 30년 세월 뒤편에 꼭꼭 숨어있던 한 친구가 떠오른다.

긴 시간을 건너뛰고 마치 얼마 전 일인양 생생하게 다가오면서 만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한창 꿈이 많던 중학교 3학년, 천진스런 웃음이 유난히 밝아보였던 그 애가 자신의 집에 대해 말한 것은 등하교를 함께 하고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난 꼭 엄마를 찾을 거야.”
“….”
“지금의 엄마는 남동생 둘을 낳은 엄마거든”

자신과 언니의 생모는 따로 있다며 그동안의 서러움과 그리움을 길게 털어놓고 난 다음 한 말이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같으면서 엄마가 다른 경우가 많기도 하고 이상할 것도 없으련만 그 때는 그게 왜 그리도 크고 심각한 문제로 생각되었는지 어린 마음에 그 애가 안쓰러웠다.

어쨌든 그 친구와 나는 서로만 아는 비밀이 있다는 생각에 한결 더 가까워졌다. 고구마 같은 군것질 거리를 싸들고 노래를 부르며 함께 뒷산을 오르기도 했고, 그 애의 엄마 혹은 독립한 언니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이왕 말을 시작하고 나니 더 숨길 것 없이 모든 걸 솔직히 털어 놓을 수 있어 홀가분한 것 같았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지원 학교가 달랐던 우리는 각자 다른 학교의 여고생이 되었고 친구는 그때쯤 엄마와의 갈등이 더 커져서 만날 때마다 그 문제로 많이 힘들어했다. 그런 가운데 서로의 진로 방향이 다르다보니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었고 한동안 소식이 끊겨 버렸다. 그래도 보고 싶다는 생각만 할 뿐 찾지는 못하고 있던 내게 참으로 오랜만에 친구가 찾아왔다.

“….”
“….”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결혼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내게 이미 두 딸의 엄마가 된 친구의 모습이 너무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 역시 애들 같은 나 사이에 주춤거렸다. 하지만 그건 잠시, 우리는 금세 옛날로 돌아가서 재잘거렸다. 자식을 키워서인지 엄마와의 갈등도 많이 털어낸 그녀의 모습은 한결 여유롭고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얼마 후, 어찌어찌 하다보니 다시 연락이 끊어졌다. 나는 나대로의 진로 문제로, 아마 친구 역시 아이 둘을 키우느라 바빠서였을 게다. 하지만 이번엔 그 시간이 오늘까지 이어져 20년이 넘었다. 오래 전 동창이나 가까운 친구들에게 수소문도 해 보았고 동창을 찾아주는 사이트에도 들어가 보았지만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얼핏 듣기로는 '괌'으로 이민을 갔다던가.

그 사이 나도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바쁜 틈을 비집고 친구의 얼굴이 자주 떠오른다. 가끔씩 보고 싶다는 생각은 고즈넉한 가을 밤, 혹은 해가 가는 이때쯤에 더욱 간절하다. 맑은 웃음에 보조개가 들어가던 아이. 따뜻한 어른이 되어 어디선가 주변을 밝히며 살고 있을 아이.

"우리 이제, 네 얘기 이렇게 공개하고 이름 불러 찾아도 될 나이지? 강혜선,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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