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돌파구 '민중'에서 찾다

민중신학·민중교회 연구서 잇따른 출간

등록 2004.12.31 16:36수정 2004.12.3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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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한국 교회가 한 마디로 죽을 쑤고 있는 형편이다. 시청 앞 친미기도회, 교회세습, 미션스쿨 내 종교자유, 한 대형 교회의 재정비리 폭로, 포항시 성시화 발언… 일반에 널리 회자되는 소식들이 대부분 어둡고 암울한 한국 교회의 지금 실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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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민중신학> 8호 표지

일찍이 함석헌 선생은 "종교는 믿는 자만의 종교가 아니다. 시대 전체 사회 전체의 종교이다. 종교로써 구원얻는 것은 신자가 아니오, 그 전체요. 종교로써 망하는 것도 교회가 아니오, 그 전체다"라고 갈파한 바 있다.

그의 지적처럼 지금 한국 교회의 문제는 비단 한국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 사회 전체의 문제다. 따라서 지금의 교회에 대해 비난하는 데 그치는 것은 심히 무책임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올바른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는 목소리들을 발굴하여 널리 소개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점에서 제3시대 그리스도연구소의 무크지 <시대와 민중신학>과 민중교회 본격 연구논문집인 <한국민중교회 선교역사와 민중 선교론>의 잇따른 출간은 주목할 만하다.

이제는 인기가 없는 종목이 되어버린 '민중'이라는 표제를 외롭지만 꿋꿋하게 고수하면서 낮은 자들의 입장에서 신학과 교회 현장을 이끌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여서 더 없이 값지고 소중한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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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홍렬의 책 <한국 민중교회...민중선교론>

다시 함석헌 선생의 시를 빌어 말하자면, '제 아무리 세상이 거친 바다라도 그 위에 비치는 별이 떠 있으며, 역사가 썩어진 흙탕이라도 그 밑에 기름진 맛이 들어 있는 법'이다.

오늘의 한국신학과 교회를 이나마 지탱하고 있는 것은 이미 수구보수 기득권 세력의 진지가 되어버린 몇몇 대형교회들이 결코 아니다. 역사적 예수의 길을 따라, 이 시대의 가난하고 강도 만난 자들을 섬기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불철주야 애쓰는 이들이 있기에 그나마 아직 희망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무크지 <시대와 민중신학>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매달 진행하고 있는 월례포럼에 발표된 민중신학 논문들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신학적 반성을 시도한 평화포럼, 대안교회포럼, 기독교사회포럼, 맑스코뮤날레에서 발표된 논문 등 매우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교회의 위기와 관련하여, 최형묵은 '위계적인 교회의 신앙 문화'라는 논문에서 한국교회의 위기가 교회 내의 비민주적 서열구조와 교회생활에서 배태되고 있음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또한 <소년의 눈물>로 잘 알려진 서경식(동경경제대학) 교수는 한국민중신학 진영을 향하여 재일조선인의 민중성을 묻는 도전적 논문으로 앞으로 민중신학의 지평이 어디까지 넓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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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예수회의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 일하는예수회

황홍렬의 <한국 민중교회 선교역사(1983-1997)와 민중 선교론>은 한국 민중교회 선교 역사를 처음으로 정리해낸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번역 출간한 것이다. 주제도 주제이니 만큼 본래 한국에서 학위를 하고자 했으나, 보수적인 풍토가 지배적인 국내 신학대에서 민중교회 연구 자체를 꺼려함에 따라 불가피하게 영국에 건너가 학위 논문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빈민지역이던 서울 봉천동에 민중교회를 직접 개척하여 목회자로 섬기기도 했던 경험이 있기에 민중교회 내부에서 나온 연구 결실이라 할 만하다. 여기에는 격랑의 시대를 헤쳐 온 한국 민중교회가 어떠한 고민을 안고 시대적 소임을 감당해 왔으며,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과 반성이 집약되어 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은 예장 민중교회 단체인 '일하는 예수회'가 20주년을 맞아 각 교회 현장과 선교사역을 소개하고 노동, 생명, 민중복지, 여성민중, 이주노동자, 실직 노숙인 선교 등 시대 변화에 따라 매우 다양해진 민중선교 사역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비록 예장(예수교 장로회)에 국한되긴 하지만 오늘 민중교회의 관심과 현주소를 알려주는 책이다. 혹자는 '민중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하지만, 이 책은 민중선교가 되레 지금 더욱 중요해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리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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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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