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연속...'거룩한 성과' 만들었다"

[인터뷰] '끝장단식단' 해단한 박석운 국민연대 공동운영위원장

등록 2004.12.31 23:08수정 2005.01.01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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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국민연대)는 31일 '끝장단식'(국보법 연내폐지를 위한 무기한 국민단식농성)을 정리했다. 국민연대는 이날 밤 9시 임시운영간담회를 갖고 끝장단식단의 해단을 최종 결정했다.

그런데 이날 밤 만난 박석운 국민연대 공동운영위원장의 입에선 "기적의 연속이었다"라는 말이 나왔다. 국가보안법 폐지안의 연내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는데도 그는 그간의 농성을 '거룩한 성과'라고 표현하며 '마지막 기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라고 '희망'을 얘기했다.

300명으로 시작한 농성단 2주만에 1000명으로 불어...이것은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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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운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공동운영위원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가 얘기하는 기적이란 이런 것이다. 지난 6일 애초 300명으로 시작했던 끝장단식단이 일주일만에 560명으로 늘어난 것, 그러더니 또다시 일주일 뒤 1000명을 넘어선 것 등이다. 그는 "기적이 아니고선 이럴 수 없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단식을 하는 이들의 '염력'이 정치권도 움직였다고 말했다.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의 '간첩암약 주장'으로 오히려 국보법 폐지가 대세가 되지 않았습니까? 예전같으면 '색깔론'이 먹혔을텐데, 이번엔 되받아치지 않았습니까. 4자회담 이후 대체입법론이 합의되는 듯했지만 그것도 제대로 되지 않고…이런 것들도 다 기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연대로 속속 성금이 모여들어온 것도 박 위원장이 말하는 '기적'이다.

박 위원장은 "사실 처음에 단식단 살림살이에 돈은 별로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밥도 안 먹는데 유인물 값만 있으면 되겠다 했다"며 "그런데 막상 운영해보니 하루에 드는 물값만 20만원이더라. 단식단이 1000명으로 늘었을 때는 천막으로 들어가는 난방비가 하루 100만원이 들어갔고, 천막도 5동에서 18동으로 늘어났는데 하나씩 세울 때마다 60~70만원이 소요됐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그런데도 돈이 떨어지면 성금이 들어오고 지인들이 와서 50만원, 100만원씩 놓고 갔다"며 "그런 기적으로 빚 없이 단식단을 이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난방비만 하루 100만원..그러나 빚 없이 운영

박 위원장은 국민연대의 공동운영위원장이면서 끝장단식단의 최고령 단식자였다. 올해로 쉰 살인 그가 26일간 단식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다. 그는 지난 여름에도 이라크파병 반대를 외치며 12일간 단식을 했다.

하지만 그는 "여름단식의 두배 이상 단식을 했는데도 몸은 덜 힘들었다"며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 힘들지 않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단식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몸이 아니라 오히려 '언론의 무관심'이었다고 강조했다.

"'조중동'은 그렇다 쳐도 방송3사도 정규 뉴스시간에조차 제대로 다루지 않거나 진보적인 종이신문도 농성 초기에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어요. 농성 초기에는 이것 때문에 힘들었지요. 진보적인 종이신문조차 새로운 방식의 사회운동에 적응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어 박 위원장은 "다행히 <오마이뉴스>와 KBS의 <시사투나잇>에서는 집중적으로 심층보도를 해 국민들에게 우리 농성이 알려지게 됐다"며 "그밖의 언론이 국보법 문제에 대해 경마중계식 보도로 일관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끝장단식농성'을 진행하면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분노와 실망도 커졌다. 박 위원장은 국보법 연내폐지가 무산된 것을 두고 "한나라당의 '깡패짓'에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무기력하게, 무소신으로 철저하게 백기투항한 결과"라고 표현했다.

박 위원장은 "야당과의 타협 과정에서 이른바 열린우리당의 중진 그룹이라는 사람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실망스런 행보를 보여 유감스러웠다"며 "열린우리당 지도부나 중진그룹의 정치적 식견과 능력의 한계를 철저하게 드러낸 과정이었다"고 성토했다.

"한나라당 '깡패짓'에 열린우리당 지도부 무기력하게 백기투항"

박 위원장은 그간의 농성에 한계도 있었노라고 밝혔다. 좀더 많은 국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지 못한 게 가장 큰 아쉬움이다. 그래서 국민연대는 올해를 정리하기보다 새해의 운동 계획을 세우고, 올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에 분주하다.

박 위원장은 "올해는 사실 국보법 폐지운동을 대중운동으로 만드는 데 미진했다"며 "새해 1월 24일경부터 전국순회 촛불집회에 들어가 대중선전에 집중하고 2월 초부터 다시 서울에서 중앙 집중투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다음은 이날 밤 9시30분께 여의도 민주노동당사에 차려진 국민연대 상황실에서 박석운 위원장과 나눈 인터뷰를 간추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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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연내 완전폐지를 주장하며 물과 소금까지 끊은 채 단식농성을 벌이다 쓰러진 국민단식단 10여명이 지난 30일 오후 여의도 공원에 자리한 천막숙소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이들의 단식농성은 26일만인 31일, 모두 마무리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지난 26일간 단식농성을 정리하는 심정이 어떤가?
"단식농성을 하는 과정에서 수천의 염력이 모여서 수많은 기적을 창조했다고 생각한다. 기적을 연이어서 만들었다. 마지막 기적 하나만 남겨놓은 상황이다.

금년 내에 국보법을 폐지하고 해방 60년이 되는 내년을 인권과 통일의 원년으로 삼아 찬란한 새 출발을 하고자 하는 민족적 염원을 이루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국보법 폐지나 인권과 통일의 가치를 일반화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 내년 전망은 어떻게 보는가?
"우리는 내년 2월에라도 꼭 국보법을 폐지시킬 것이다. 그러기 위해 1월 24일경부터 다시 본격적인 전국순회 촛불집회와 함께 실천단을 조직해서 농성에 들어갈 것이다. 그런 뒤 2월에는 중앙집중 투쟁을 시작할 예정이다. 아직은 정리보다 내년 계획을 잡기에 바쁘다."

- 그간 시민사회진영에서는 한나라당보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는데.
"한마디로 얘기하면 한나라당의 '깡패짓'에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무기력하게, 무소신으로 철저하게 백기투항했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이른바 열린우리당의 중진그룹이라는 사람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실망스런 행보를 보인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나 중진그룹의 정치적 식견과 능력의 한계를 철저하게 드러냈다. 무능력, 무소신이 그대로 나타났다."

- 단식을 시작할 때 어떤 결심이었나.
"수많은 후배들이 단식을 시작하는 것을 보며 나이 먹은 나도 솔선 수범하자는 차원에서 하게 됐다.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국보법 때문에 감옥 가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의 정성을 모아야 한다. 지극정성을 모으는데 한 힘 보태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 그간의 농성을 정리한다면.
"수많은 기적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기적이 거룩한 성과를 이뤄냈다. 애초 300명으로 시작한 단식단에 1주일 사이에 560명으로 늘어나고 다시 1000명으로 늘어났다. 그것 자체가 기적이다.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의 '간첩암약' 주장으로 오히려 국보법 폐지가 대세로 된 것도 기적이다. 예전 같으면 '색깔론'이 먹혔을 텐데, 이번엔 되받아치지 않았나. 4자회담 이후 대체입법론이 합의되는 듯했지만 그것도 제대로 되지 않고…. 국민연대가 빚 안지고 재정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된 것도 기적같은 일이다. 처음엔 단식단 살림살이에 돈이 별로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밥도 안 먹는데 유인물 값만 있으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막상 운영해보니 하루 물값만 20만원이더라. 단식단이 1000명으로 늘었을 때는 난방비가 하루 100만원이 들어갔고, 18동으로 늘어난 천막을 하나씩 세울 때마다 60~70만원이 소요됐다. 그런데 돈이 떨어지면 성금이 들어오고 지인들이 와서 50만원, 100만원씩 놓고 갔다."

- 그간 가장 힘들었던 일은.
"초기 언론에서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을 때 힘들었다. 다행히 <오마이뉴스>에서 집중, 심층보도를 해서 그나마 국민들에게 알려지게 됐지만 '조중동'은 차치하고라도 진보적 종이신문조차 약동하는 대중 투쟁이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메커니즘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는 태도를 보였다. 아쉬움이 크다.

방송3사도 정규 뉴스시간에조차 제대로 다루지 않고 국보법 문제를 정쟁 위주의 경마중계식 보도로 일관했다. 다만 KBS의 <시사투나잇>만 심층보도를 했다. 오죽했으면 KBS 시청자위원인 내가 시청자위원회에서 <시사투나잇>하고 9시뉴스하고 시간대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를 했겠는가."

- 그간 활동의 한계도 있을 텐데.
"좀더 많은 대중들에게 홍보선전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더 큰 대중운동으로 만드는데 미진했다. 언론 홍보도 미흡했다. 내년에는 그런 점들을 보완해 새롭게 투쟁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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