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조선 군대가 해산당했다

도심 속의 공원을 찾아 - 종로 을지로의 '훈련원공원'

등록 2005.02.07 00:46수정 2005.02.0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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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원터'를 아시나요? 오늘날에 불리는 명칭은 '훈련원공원주차장', 행정구역상 서울시 중구 을지로 5가에 위치한 훈련원공원주차장은 주말이면 젊은이들로 시끌벅적해진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익스트림 자전거를 연습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삼성동의 한국전력 앞과 평촌의 중앙공원과 함께 꽤 알려진 연습 공간 중 한 곳이다. 이곳 공원의 이름 그대로 자신들의 실력을 높이기 위한 '훈련'을 위한 공간인 셈이다.

a 중구 을지로 5가에 위치한 '훈련원공원'. 전경 멀리 동대문패션타운이 보인다.

중구 을지로 5가에 위치한 '훈련원공원'. 전경 멀리 동대문패션타운이 보인다. ⓒ 이인우

훈련원 공원주차장 바로 옆에 미군부대가 있는 관계로 의경들의 삼엄한 경비가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일반 다른 공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화강석으로 마감된 5천여평의 공간에 적당한 높이의 계단과 인공 분수를 위한 수로 그리고 휠체어를 위한 길이 만들어져 있다. 또 스케이트 보드 등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젊은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의 공간이다.


이곳 훈련원 터는 조선 태조 원년(1392)에 병사의 무술훈련과 병서·전투대형 등의 강습을 맡았던 훈련원이 있던 자리다. 처음에는 훈련관으로 불리다가 태종 때 이곳으로 옮겨 청사 남쪽에 활쏘기 등 무예를 연습하고 무과시험을 보는 대청인 사청을 지었으며 세조 12년(1466)에 훈련원으로 고쳤다.

a 훈련원공원 지하에는 주차장과 서울패션벤처타운이 들어서 있다.

훈련원공원 지하에는 주차장과 서울패션벤처타운이 들어서 있다. ⓒ 이인우

조선의 많은 무장들이 이 훈련원에서 오랜 기간 동안 시험과 봉직의 과정을 거쳤다. 요즘 TV 역사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주인공인 충무공이 별과 시험에서 말을 달리다가 실수로 떨어져 왼쪽 다리에 부상을 입은 곳도 이 훈련원이고, 조선 군사의 봉사·참군 등의 하위관직이 복무하던 곳도 훈련원이었다.

이와 함께 중종반정(1506)때 박원종 등이 훈련원에 모여서 장사들을 나누어 배치하고 밤중에 창덕궁 진입로에 진을 치기도 했다. 그러나 5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하며 조선의 군사 관계의 중심에 있던 훈련원도 나라의 대세가 기울어짐과 함께 막을 내리게 되었다. 바로 일제와 1907년 8월에 체결된 한일신협약(일명 정미7조약)에 의해 훈련원에서 조선의 군대 해산식이 거행되고 조선 군인들의 무장 해제가 이루어지는 아픈 역사가 그것이다.

이후 이 훈련원터에는 경성사범학교 및 부속소학교(1921. 7 ~ 1945. 12), 서울대학교 사범대학(1946. 3 ~ 1950. 6), 부속중학교(1946. 9 ~ 1947. 10), 부속고등학교(1946. 9 ~ 1947. 10, 1954. 12 ~ 1967. 6) 부속국민학교(1947. 10 ~ 1950. 6, 1953. 9 ~1975. 6), 농업협동조합중앙회(1975. 7 ~ 1988. 11), 헌법재판소(1988. 12 ~ 1993. 6),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주차장(1993. 7 ~ 1994. 7)으로 사용되다가 민자유치사업으로 현재의 '훈련원공원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a 공원 한쪽에 설치된 공원 안내판(우측) 과 경성사범학교 터 기념비(좌측)

공원 한쪽에 설치된 공원 안내판(우측) 과 경성사범학교 터 기념비(좌측) ⓒ 이인우

공원 한쪽에는 이곳 훈련원의 이력을 말해 주는 목재로 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여기에 사용된 목재는 이곳이 주차장으로 사용되기 이전에 있던 건물을 철거하면서 나온 것으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이 목재는 백두산에서 벌목되어 압록강을 따라 황해로 운반된 육송이라고 안내 표지판은 적고 있다. 훈련원 안내판 왼쪽에는 경성사범학교 터를 기념하는 안내표석이 이 학교 동문들에 의해 설치되어 있다.


이곳 훈련원공원에 모여 젊음을 만끽하는 삼삼오오 젊은이들의 모습을 한번 지켜 보았다. 지난 날 우리의 조상들이 나라를 위한 병사가 되기 위해서 또 후학을 기르기 위한 교육장으로 사용하던 이곳이 오늘에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 장소로 이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자신들 스스로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하는 형태로 이전과는 다르지만 그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같지 않나 생각해 본다.

a 생동감 넘치는 젊은이들의 스케이트보드 연습 모습

생동감 넘치는 젊은이들의 스케이트보드 연습 모습 ⓒ 이인우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은 주로 스케이트 보드를 즐기거나 배우기 위한 학생들과 흥겨운 음악에 맞춰 댄스를 연습하는 여학생들, 그리고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옷을 만들어 입고 그들의 몸짓을 따라하는 코스튬 플레이어 등 다양하다. 또 익스트림 자전거를 타며 묘기 연습을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이고 근처 이태원 등지에서 오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a 친구들과 함께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연습을 하는 댄스그룹

친구들과 함께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연습을 하는 댄스그룹 ⓒ 이인우

추위 때문에 공원의 분수대에는 물이 흐르지 않고 나무들 역시 앙상해 보여 조금은 삭막해 보이지만 젊은이들의 활기찬 움직임과 음악 소리가 있어 생동감이 느껴진다. 상계동에서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한 여학생은 "날씨가 따뜻할 때(봄, 여름, 가을)에는 자신들이 음악을 틀어 놓고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을 만큼 여기저기서 많이 모인다"며 이곳을 찾는 이유에 대해 "주변에 동대문 패션 타운과 종로도 가깝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곳 훈련원 공원은 동대문 패션 타운에서 약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청계천 평화시장과도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또 근처에 대학로와 종로 역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도보로 불과 2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학생들의 음악을 들어 보니 우리 귀에는 낯선 일본의 음악이었다. 또 일본의 애니메이션 대사 내용과 효과음을 배경으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친구들에게 이곳이 예전 어떤 곳이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니 그저 공원 지하에 주차장이 있다고 하는 사실 이외에는 잘 모르는 눈치였다. 우리 나라가 일제에 의한 강제 군대 해산을 당했던 치욕적인 역사적 현장임을 젊은이들은 잘 모르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물론 일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을 따라하는 코스튬 플레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이 즐기고 있는 이곳 훈련원공원의 옛터는 일제에 의해 우리 조상들과 이 나라가 무참히도 짓밟혔던 가슴 아픈 과거를 간직하고 있기에 조심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그들이 즐기는 이곳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있는 표지판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조금 더 자세한 내용으로 표기된다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공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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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그리고 조선중후기 시대사를 관심있어하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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