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민들의 애환이 서린 40계단을 아시나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촬영 장소로 사용된 그 40계단

등록 2005.03.06 23:52수정 2005.03.0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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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의 중앙동(부산 중구 중앙동 4가와 그 일대), 여느 때 같았으면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볐겠지만 - 중앙동 일대는 해상운송업, 금융업, 육상운송업 등의 회사가 대부분이다 - 정부가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하고부터는 쉬는 회사가 많아 거리는 한산했다.

중앙동에서 해상 운송업에 종사한 스무 세 해 동안 내 몸을 부려 나와 가족을 먹여 살려 왔으니 대단하기도 하고 가슴 뿌듯한 일이기도 하다. 하늘은 쪽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경칩인 3월 5일이었지만 날은 아직도 차갑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산 중구청은 부산시 중구 중앙동 일대에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애환과 향수가 젖어 있는 거리를 ‘40계단문화관광테마거리’로 지정했는데, 이곳은 국민은행 중앙동 지점에서 40계단을 거쳐 팔성관광에 이르는 일대의 거리를 말한다.

a 여기가 40계단 테마의 거리라고 일러주네요.

여기가 40계단 테마의 거리라고 일러주네요. ⓒ 김병기

1950년대 6·25 전쟁 당시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어린 식구들을 거느리고 전쟁을 피해 고향을 버리고 남으로, 남으로 피난길에 올랐던 것이며 그 많은 피난민들이 부산으로도 오게 된 것이며 이 중앙동과 동광동, 영주동 일대에서도 터를 잡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 당시 대부분 동광동, 영주동 산비탈에 판자촌을 이루고 이 40계단을 통하여 삶의 여정을 펼쳐나갔던 것이다. 부두의 노역자로,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의 잡부로 밥벌이를 하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이 40계단을 오르내렸던 것이며 영도다리와 북항의 배들을 바라보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도 했던 것이다.

a 여기가 바로 40계단입니다.

여기가 바로 40계단입니다. ⓒ 김병기

안성기, 장동건, 박중훈, 최지우가 열연한 이명세 감독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의 살인사건 장면이 나오는데 그 촬영 장소가 바로 이 40계단이기도 하다. 지금도 윗동네 동광동, 영주동과 아랫동네 중앙동을 연결시켜주는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그 당시를 살았던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이 영화를 보았다면 당시의 피난시절을 돌이켜보고 향수에 가득 젖었으리라.

이 테마 거리에는 피난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 조형물들이 여럿 설치되어 있는데 조형물의 면면이 그 당시의 가난하고 힘들었던 삶을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a 어머니의 마음이 이렇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이렇습니다. ⓒ 김병기

a 뻥튀기를 구경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재미있네요.

뻥튀기를 구경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재미있네요. ⓒ 김병기

a 전봇대와 까치의 조형물이네요.

전봇대와 까치의 조형물이네요. ⓒ 김병기

a 아버지의 휴식입니다.

아버지의 휴식입니다. ⓒ 김병기


사실 중앙동 일대가 옛날에는 바다였는데 1908년경에 매립이 되고(매립 후에 <새마당>이라 불림), 부두가 조성되었으며 이 일대가 부두와 관련된 일을 하는 중요한 장소로 지금까지 발전하여 왔다. 지금은 이곳에 국내외 유수한 선박회사들의 사무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으며, 그 외에 이와 관련된 하역 운송 등의 업을 영위하는 사무실도 마찬가지로 들어서 있다.

그런가 하면 부산과 경남의 수출입 화물과 그 부대업무를 관장하는 부산 본부 세관도 있고, 한국과 일본을 잇고 경남 일대 도서지역을 연결하는 국제, 국내여객부두도 이곳에 있다. 이렇게 발전돼온 중앙동 일대가 각 자치단체들의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하기 시작한 지역의 특성을 살리는 작업을 중구청이 발 벗고 나서서 1950년대 피난민의 애환이 서린 40계단을 문화적 테마로 삼아 이 거리를 2004년에 조성을 한 것이다.


a 그 당시에는 이렇게 물을 져 날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물을 져 날랐습니다. ⓒ 김병기

40계단 중간쯤에는 ‘아코디언 켜는 사람’의 조형물이 있다. 이 조형물은 이현우라는 작가(일대에 설치된 조형물의 대부분은 그의 작품)가 만든 작품인데 이 작품 앞에 서면 피란시절 당시의 애환이 서린 1950~60년대에 유행하던 노래가 구슬프게 흘러나온다. 목포 유달산에 가면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오고가는 이들의 발목을 잡지만.

a 이 앞에 서면 옛유행가가 흘러 나옵니다.

이 앞에 서면 옛유행가가 흘러 나옵니다. ⓒ 김병기

이 40계단문화관광테마거리를 조성한 부산 중구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40계단문화사업회의 ‘경상도아가씨’, ‘용두산 엘레지’ 등 그 당시에 유행했던 노래를 부르는 가요 콩쿠르를 필두로 하는 40계단문화축제가 매년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이 일대 주위로는 민족 독립 운동가이셨던 ‘백산 안희제’ 선생의 백산기념관과 용두산 공원, 보수동 책방골목, PIFF 광장 등의 명소가 또한 자리를 잡고 있어 타지의 관광객들이 쉽게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일기예보는 오늘 부산에도 눈이 내릴 것이라 한다. 이 거리를 취재하는 동안 눈이라도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집으로 돌아와 취재 기사를 쓰는 동안 눈이 내린다. 그것도 함박눈이.

a 아코디언 켜는 사람.

아코디언 켜는 사람.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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