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담임, 그 풋풋함과 설렘

'시작하는 마음'으로 만나는 1학년 아이들

등록 2005.03.08 14:50수정 2005.03.0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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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학년 신입생 아이들의 환한 웃음. 이 웃음이 10년, 20년 후에도 이어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1학년 신입생 아이들의 환한 웃음. 이 웃음이 10년, 20년 후에도 이어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 한준명

3월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세상이 양지바른 곳부터 새 움을 틔우기 시작한다. 나른한 오후와 함께 까까머리 아이들 어깨 위에도 봄 햇살이 나려 톡톡 잠 깨운다.

진정한 스승의 길을 가보겠다는 결심을 서른이 다 되어서야 간신히 펼쳐 놓았는데, 벌써 7년의 세월이 지난다. 오랜만에 맡은 1학년 담임. 아이들의 눈빛은 온통 막연한 기대와 설렘이다.

1학년 담임을 맡을 때면, 학교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아이들과, 아이들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교사가 만나 한동안 어정쩡한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그 어정쩡한 자리에 봄햇살만 한 가득이다.

며칠 전이다. 새 학년 준비로 분주한 교무실에 젊은 청년이 말쑥한 여자와 함께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는 들어온다. 졸업생이라 했다. 결혼을 하고 인사를 드리러 왔단다. 선생님들께 반갑게 인사하고, 예전에는 이곳에 혼날 일이 있을 때에만 왔는데, 이렇게 좋은 소식을 알리러 들어오는 날도 있다며 머쓱해 하면서도 스스로 감격해 하는 표정이다.

그랬는지도 모른다. 학생들이 교무실에 들어오는 순간, 그 자유롭던 태도가 뻣뻣이 굳어지는 것도, 우리가 그들을 권위적으로 대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 아이들 중 몇몇이 우리의 좋은 모습만을 기억해 찾아오고, 안부를 전하고,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한다. 역시 아이들은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가르치고 남음이 있다.

나의 학창 시절보다는 많은 것이 변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산화한 문서 처리와, 멀티 미디어를 이용한 다채로운 수업도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하지만 학생들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사랑의 깊이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내게서 가르침을 받은 제자가 세상에 나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살 만한 세상을 꿈꾸며 또 다른 2세들에게 그런 세상을 물려주게 하기 위하여, 아이들의 눈빛과 손짓 하나에까지 세세한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눈빛 무서운 줄 안다면, 그들의 미래 앞에 떳떳할 수 있다면, 이런 두려움과 설렘이 교단에 서서 내 생을 일구어나갈 가장 확실한 방편이 될 것임을 믿는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1학년 아이들의 기대 어린 눈 속에 행복과 만족이 가득 찰 수 있게 올 한 해도 그들의 몸과 머리와 마음을 정성스럽게 가꾸어 가야겠다.

교단에 서는 동안 바꾸지 않으리라 결심한 '시작하는 마음'이라는 급훈 액자를 올해도 아이들의 우렁찬 환호와 박수 위에 올려 두고 자리에 앉는다. 햇살 한 줌 교무실 한 켠을 기웃거리다, 꽃소식 듣고 함께 놀러나간 봄날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용인시민신문> 교단일기에도 함께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용인시민신문> 교단일기에도 함께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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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차 국어교사.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고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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